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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우임 Sep 26. 2022

불편한 진실

오히려 우리들이 무임승차하는 건 아닐까?

 춥지도 덥지도 않은 가을 날씨에 흥분이 되어 외출을 했다. 거리는 오랜만에 활기로 넘쳤다. 침체되었던 상가들도 불을 밝혔다. 주말 늦은 오후임에도 지하철 객석은 붐볐다. 편리한 대중교통의 시스템으로 이동의 편리함을 따져본다면 한국은 참 살기 좋은 나라의 요소를 두루 갖추었다.    

 

 3호선 지하철을 탑승했다. 몇 정거장 지나자 한 노인이 끌고 온 수레 바구니를 객차 칸의 중앙에 세워두고는 돗자리를 꺼내서 판매하셨다. 홍보 멘트 몇 구절 하시는데 어디선가 갑자기 나타난 청년이 노인의 장사를 제지했다. 처음에는 지하철 공사 직원인 줄 알았다. 자세히 보니 직원 명찰이 없는 걸로 봐서 일반 시민이었다. 청년과 노인의 조용한 실랑이가 이어졌다. 

“안내방송에서 영업하지 말라고 하면 하지 마세요.”

“너는 법을 잘 지키고 사나?”

“저는 지키려고 노력하며 살고 있습니다.”

노인이 자리를 옮겨서 짐을 풀려고 하면 청년이 뒤쫓아서 방해했다. 구경하던 다른 어르신께서 청년에게 그만하라고 일침을 뱉었지만 소용이 없었다. 결국 돗자리 판매상 노인은 짐을 챙겨 하차했다. 지켜보는 내내 맘이 불편했다.  

   

 버스나 지하철을 타면 간혹 잡화 물건을 팔거나 심신장애를 내세워 손을 벌리기도 한다. 승객들 입장에서는 탑승이 편치 않아서 불평 등을 전달했을 것이다. 지하철 공사 측에서도 대대적으로 객차 내 영업행위를 단속한다. 우리 정서의 인지상정이 법의 구멍처럼 묵인해 온 것들도 많았다. 친정동네에 난전상이 많았다. 시장 초입이다 보니 유동인구가 많아 장사가 쏠쏠하게 되었다. 기존 상가 세입자들의 투서로 구청에서 살벌한 단속으로 여러 차례 곤혹을 치른 뒤, 지금은 난전이 없어졌다. 소비자 입장에서는 조금 아쉬웠다. 채소 푸성귀들을 손쉽고 저렴하게 구입했었다. 쫓고 쫓기는 알고리즘이 머릿속으로는 이해가 되지만 가슴으로는 답답하다. 옥신각신하는 노인과 청년의 모습에서 새삼스레 세대갈등이 비쳤다.  

   

 몇 년 전에 지하철 경로우대 요금 면제가 이슈로 떠올라 갑론을박이 한창이었다. 사무실에는 나를 제외한 모든 직원들이 20대였다. 대부분 요금 면제를 철폐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내가 그 이유를 물어보니 돌아오는 대답은 간결했다.

“저희들이 내는 세금으로 노인들이 공짜로 지하철 타는 거잖아요. 저희 세대들은 앞으로 국민연금도 고갈이라는데 걱정이에요.” 본인들이 내는 세금보다 국가의 혜택을 더 누리는 연봉의 근로자들은 당당했다. 나와는 생각이 다른 젊은 직원들에게 ‘니들은 안 늙니?’ 속으로만 구시렁거렸다.     


 나이 오십이 되고 보니, 끼인 세대 인양 신구 세대의 입장이 모두 이해가 된다. 나의 부모님이고 나의 자녀들이다. 한국이 이만큼 잘 살 수 있었던 밑바탕에는 평생 고생만 하다가신 우리들의 조부모님, 부모님 세대 때문이다. 지금의 풍요로움이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게 아니다. 주 5일제가 아닌 365일 밤낮으로 일한 그분들의 노고를 인지하면서 살아야 한다. 청년들의 고충 또한 만만치 않다. 점점 기회가 줄어드는 시대의 흐름 속에 취업난과 기성세대가 마구 올려놓은 부동산 가격으로 내 집 마련의 꿈은 좌절된다. 주거가 해결 안 되니 결혼이 늦어지거나 비혼이 증가한다. 인구절벽이 재앙처럼 다가온다. 이래저래 편치 않은 세상이다.     

 <국제시장> 영화를 보면, 70년대 외화벌이를 위해 생사를 넘는 환경에서 고군분투하는 젊은이들의 모습이 나온다. 집안 가구조사를 해보면 베트남 전선이나 중동 사막에 일하러 다녀오신 분들이 꼭 계신다. 그분들이 이제는 하얀 백발이 되어 지하철을 무료로 타신다. 그분들의 목숨 값으로 돈을 끌어다가, 그분들의 피땀 노동으로 지하철을 만들었다. 지하철 건축 공사에 벽돌 하나 옮기지 않은 우리는 단돈 1300원으로 환승까지 해가며 온 도시를 활보한다. 오히려 우리들이 무임승차하는 건 아닐까?    

  

  “너는 법을 잘 지키고 사나?” 노인의 말이 귀에 맴돈다. 늘 마주하는 생활의 테두리 안팎에서 수많은 법규와 질서에 부딪힌다. 양심까지 보태어지면 나 또한 허투 성이다. 요즘 뉴스를 보면 탈탈 털리는 정치인이 구설수에 오르내린다. 털어서 먼지 없는 사람이 어디 있으랴. 도덕 윤리 책대로 세상을 살 수만 있다면야 아무런 문제가 없겠지만, 이 세상은 호락하지도 내 맘 같지도 않다. 진실은 참과 거짓의 기준으로 명확한데, 이를 마주하는 우리들이 불편할 때가 많다. 

“저는 지키려고 노력하며 살고 있습니다.” 할아버지뻘 되는 어른에게 원리원칙만을 내세우는 젊은 세대의 상징처럼, 지하철에서 청년의 태도가 잘못이 아님에도 나를 비롯하여 승객들은 불편했다. 

     

 영락없이 꼰대 소리를 듣는 나이가 되다 보니 생각이 많아진다. 불편과 진실 사이에서 끊임없이 고민하게 된다. 진실 앞에서 불편함이 조금은 줄어들기를 바란다. 지하철 역사를 빠져나와 가을 공기를 크게 마셨다. 찜찜했던 마음을 씻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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