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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우임 Oct 07. 2022

전화기

오늘은 나도 기다려지는 전화가 있다.

 나의 휴대폰이 최근 들어 잠을 자곤 한다. 예고도 없이 상대방 소리가 안 들리거나 화면 터치가 먹통이다. 삼 년 넘게 사용했는데 이제 이 기기의 수명이 다한 것일까? 사용법이 손에 익숙해지면 그새 고물이 되어 버리는 듯하다.     

 전자제품의 사용수명이 점점 짧아진다. 이유도 제각각이다. 유행에 따른 디자인의 변신, 부품의 절판, 비합리적인 수리비용 등으로 어쩔 수 없이 바꾼다. 기계치에다가 새 제품의 성능 익히기에 알레르기가 있는 나는 교체 시기가 도래하면 은근히 스트레스가 밀려온다. 한 번 사면 십 년을 약속하던 가전제품의 광고 멘트는 추억 속의 한 페이지일 뿐이다.      

 휴대폰의 필수로 유선 전화기의 활용도는 떨어지고 가정에서조차 점점 찾아보기 어려워진다. 내가 초등학교 1학년 무렵에 우리 집에 전화기가 들어왔다. 뽀얀 흰색의 광택이 도는 전화기는 우리 동네에서 우리 집이 1호였다. 학교에서 담임 선생님이 하시는 가정 조사 항목에 전화기는 상위 리스트였다. 전화기 있는 사람 손을 들어보라고 할 때는 당당하게 뽐내듯 손을 번쩍 들었다. 전화기를 신청하면 수년씩 기다려야 했던 시절이었다. 전화벨이 울리면 서로 받으려고 동생과 앞다퉈 달려들었고, 전화기만큼이나 전화벨 울리는 횟수도 귀해서, 전화기 앞에 턱 개이고 마냥 벨이 울리기를 기다린 적도 있었다. 친구들이 놀자고 불러도 전화 울리면 받을 모양으로 거절했다. 그 간절한 기다림 속에 울리는 전화벨의 절반은 울 동네 골목 사람들 몫이었다.

“봄이네 가서 전화받으라고 해라.” 엄마의 지시에 나는 이웃집을 종횡무진했다. 창문 너머로 “혜란아, 전화 왔다.” 목청이 쉬도록 불렸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나는 동네 사람들 전화 심부름이 귀찮고 꾀가 났다. 하루에도 몇 통씩 오는 동네 이웃들의 전화가 싫었다.

“엄마, 동네 사람들한테 전화비 받아라.”

“걸려오는 전화는 공짜다.” 발신 전화는 요금이 없다는 것을 철없는 아이는 몰랐다. 그날은 새벽 동이 틀 무렵에 전화벨이 요란스럽게 울었다. 식구들의 단잠을 깬 전화는 이웃집 진숙이네 시골집 이장 집에서 걸러 왔다. 간밤에 진숙이 외할머니가 돌아가셨다는 부고의 소식이었다. 엄마는 옷을 주섬주섬 입으시고 골목을 나가셨고, 호기심이 많은 나는 엄마 뒤를 따랐다. 

“진숙아, 진숙아, 일어났나?” 엄마는 대문을 두드리며 진숙이 엄마를 불렀다. 잠옷 바람으로 나온 진숙이 엄마는 엄마가 전하는 소식에 그 자리에 주저앉아 목놓아 흐느꼈다. 갓난아이 진숙이도 덩달아 자지러지게 울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면서 나도 슬퍼졌고, 우리 집으로 오는 이웃 사람들의 전화를 짜증 내지 말자고 다짐했다. 우리 집 전화기는 그렇게 마을의 연락망 역할을 하면서 공유물처럼 취급되었다.     

 위풍당당하던 유선 전화기는 자리를 내어주고 무선 전화기로 세대교체하더니 손전화기, 즉 휴대폰의 등장과 함께 편리함을 더해주었다. 똘똘하다는 스마트 폰의 출연으로 세상은 너무나도 빠르게 변하고 있다. 손바닥만 한 기계가 하는 일이 어마어마하다. 이 기계만 있으면 은행업무, 메일, 쇼핑, 검색, 티켓 예약, 게임, 티브이 등 동영상 보기가 자유롭다. 신통방통하다. 부피 큰 컴퓨터나 텔레비전을 대신하고 비서를 한 명 데리고 다니는 착각에 빠진다. 시간에 쫓겨 우편으로 보내던 서류나 사진을 폰 카메라로 찍어 깔끔하게 실시간 전송한다. 본인인증 시스템으로 신분증이나 인감증명서를 대신하여 휴대폰의 역할은 크다. 수만 가지 기능을 가졌는데 아날로그인 내가 제대로 활용을 못한다. 개인정보는 어디까지 퍼졌는지 하루에도 스팸전화나 문자가 여러 통 온다. 꾀가 늘어서 모르는 번호나 뻔한 광고성 발신 번호가 뜨면 아예 무시한다. 전화벨 소리가 귀찮기까지 하다. 잠금장치 패턴이나 비밀번호를 저장하여 전화기를 타인과의 공유는 어림도 없다. 본인의 것임에도 불구하고 스크린 터치 오류를 범하면 사용 불가하다. 편리함 속에 냉정함이 내포한다.     

 그 옛날 하루 종일 전화기 앞에 엎드려 앉아 전화벨이 울리기를 하염없이 기다린 적이 떠오른다. 언제 울릴지도, 누구에게서 걸러 올지도 모르는 상황 속에서 무작정 기다렸다. 수화기 너머로 들리는 소리가 좋았다. 마치 제비가 물고 오는 기쁜 소식처럼 기다려졌고 이웃집에 전하러 가는 길도 신났었다.      

 나의 폰을 열어본다. 오늘 수신, 발신된 통화기록과 문자 메시지를 보았다. 기쁨과 설렘을 가지고 받은 통화가 많지 않다. 풍요와 편리함으로 귀함이 줄어들어 감성이 메말라간다. 누구에게나 기다리는 전화가 있을 것이다. 가끔 친정엄마가 하시는 말씀이 있다.

“ㅇㅇ에게서 연락이 올 때가 되었는데 소식이 없네.” 궁금하면 먼저 해 볼 만도 할 터인데 기다리셨다.      

 오늘은 나도 기다려지는 전화가 있다. 기다리는 행복감을 느끼는 중이다. 벨이 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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