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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우임 Feb 15. 2022

생일선물

내가 이 선물을 앞으로 몇 년 더 받을 수 있을까

아침부터 친구들 단톡 방이 요란하다. 동영상이 하나 올라왔다. 케이크가 중앙에 놓여있고 축하송이 흘려 나왔다. ‘오늘 누구 생일인가 보네’ 생각하며 영상을 유심히 봤다. 주인공은 다름 아닌 한 동창 친구가 키우는 애완견이었다. 애지중지 키우는 강아지 일곱 번째 생일 축하 영상을 찍었단다. 고깔모자 쓴 강아지가 케이크 앞에서 음악소리에 맞춰 짖고 있었다. 개 팔자가 상팔자라더니, 영상을 보면서 내 팔자는 개보다 못한 거 같아 씁쓸했다.      

 결혼 후 제대로 된 생일상을 받아보질 못하고 살아왔다. 시댁 어른들 생신에는 1박 2일 생일상과 외식이었다. 남편과 애들 생일엔 미역국과 생선으로 상을 차리고 선물이나 용돈으로 대신했다. 워킹맘으로 살면서 출근 준비로 바쁜 아침에 끼니 챙겨 먹기도 힘든데, 나의 생일 미역국 차리는 게 쉽지 않았다. 그게 반복되다 보니 으레 내 생일은 묻혀만 갔다. 가족들이 챙겨주지 않는다고 크게 서운하지도 않았다. 심지어 나 자신조차 잊어먹고 넘어갔다.     

 SNS 발달로 생일 축하를 받았다. 부지런한 카톡이 알아서 척척 날짜 공지해 주고 지인들은 축하 이모티콘이나 기프티콘을 쏴주었다. 매년 잊지 않고 챙겨주는 카톡 알림이 대견하다. 서프라이즈 생일파티나 소박한 선물이라도 챙겨주는 걸 싫어하는 사람은 없다. 결혼 한 여자들은 표현은 안 하지만 내심 기대를 한다. 기대가 해를 거듭하며 깨질 때마다 면역이 생겨 서운함은 사라지고 무디어 간다. 친구들이 생일선물과 결혼기념일 선물 사진을 프로필 사진에 올리면, ‘계집애들 어지간히 자랑 질 하고 싶은가 보네’ 묘한 질투심이 일어났다. 그놈의 생일선물이 뭐라고... 우리네 정서상 남들은 다 받고 사는데, 미역국조차 얻어먹지 못하는 나는 패배자가 되어 갔다. 옛날처럼 못 먹는 시대도 아니다. 먹고 싶은 거 맘대로 먹고살면, 일 년 365일 내내 생일이다 하며 스스로를 위로했다.     

 3년 전 그날은 흥분되었다. 내 생일을 내가 준비하고 즐기고 싶었다. 챙겨 주기를 바라고, 챙겨주지 않음에 김 빠지는 에너지 소모가 싫었다. 일찍이 기상해서 친구 단톡 방에 먼저 글을 올렸다. “오늘은 제 생일입니다. 특별하고 재밌게 바쁘게 보낼 겁니다. 매년 여러분들의 축하 인사 감사했습니다. 오늘도 변함없이 축하해 주실 거 압니다. 감사의 인사를 미리 보냅니다. 친구들도 행복한 하루 보내세요.” 시간을 방해받지 않기 위해 폰 소리를 무음으로 해 놨다. 차를 몰고 친정집으로 달렸다. 친정 부모님을 모시고 미리 예약해 둔 영화관으로 갔다. 셋이서 조조영화를 봤다. 팝콘과 콜라도 샀다. 옥수수 강냉이에 익숙한 엄마가 부드러운 버터향이 솔솔 풍기는 팝콘을 의외로 좋아하셨다. “요거 참 고소하고 맛나다. 손이 자꾸 가네.” 하시며 맛나게 드셨다. 최신 영화관의 시설에 어리둥절 둘러보시면서 “참, 좋구나.” 감탄하셨다. 폰으로 인증 숏도 찍어 드렸다. 영화를 보고 나와, 미리 블로그에서 봐 둔 식당에서 근사한 점심을 했다. 오늘은 계산서에 적힌 숫자를 무시하기로 했다. 식사를 마친 후에 나는 부모님께 오늘이 내 생일이라고 말했다. “아이고 맞네. 이맘때가 너 생일이지. 우리가 나이가 들다 보니 자식들 생일도 까먹고 챙기지도 못하네. 아침에 미역국은 먹었니?” 하고 물으셨다. 오늘 같은 날에는 나를 이 세상 밖으로 낳으시고 키우신 부모님과 함께 맛난 밥을 먹고 싶었다. 근처에 있는 백화점에 들어가서 구경도 했다. 스카프를 유독 좋아하시는 엄마가 두 장을 사시더니 하나를 나에게 주시며 “우리 딸 생일선물이다. 젊은 사람들 요새 이 색상 많이들 하더라.” 하신다. 엄마 눈에 나는 아직 젊은이다. 목에 두르고 거울을 봤다. 엄마의 마음이 그대로 전해졌다. 카페에 가서 차와 디저트를 먹었다. 아빠가 카페 안을 훑어보시더니

 “늙은이는 우리뿐이네.” 

 “엄마 아빠 아직 정정하시거든요. 요즘은 어르신들도 카페 자주 오세요. 저랑 자주 다녀요.”     

 그 후로 나는 매년 생일날에 특별한 선물을 받는다. 친정 부모님과 오붓하게 하루를 보내는 시간이 바로 그 선물이다. 맞벌이한답시고 시간에 쫓겨 살아온 터라 착한 딸도 못 되었다. 시간이 내 나이에 비례하여 속도를 낼 때에 부모님은 그분들의 시간을 우리들에게 고스란히 내어 주시고 이젠 하얀 백발이 되셨다. 나에게는 영원히 큰 산처럼 느껴졌던 부모님이 언제부턴가 유치원생처럼 작아 보였다. 그날 이후 며칠 동안, 영화관에서 즐거워하시는 두 분의 모습이 계속 떠올랐다. 가슴이 따스하면서도 짠하게 저며 들어 자꾸만 눈물이 난다. 그래도 행복하다. 부모님이 아직 건강히 옆에 계시고, 같이 시간을 보낼 수 있다는 것이 이 세상에서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선물이다. 친구들의 명품 백이 하나도 부럽지 않았다.     

 팔순을 바라보는 친정아버지는 청력이 떨어지셔서 보청기를 껴야 하고, 엄마는 척추신경 손상으로 장시간 보행이 힘드시다. 큰 딸인 내가 차 몰고 드라이브 가자고 하면, “귀찮게 뭐 하러 늙은이들 데리고 다니고 그러냐?” 하면서도 아이처럼 좋아하신다. 약속시간보다 일찍 대문 앞에 나와서 기다리신다. 내가 앞으로 몇 년을 더 이런 특별한 선물을 생일날에 받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      

 나는 올해에도 행복한 생일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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