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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우임 Feb 15. 2022

바다의 포로

바다는 우리에게 돈을 요구하지 않는다

아침 6시가 되면 알람이 울린다. 집 앞 강변 산책로를 걸은 지가 일 년 하고도 반년이 되어간다. 학원이나 스포츠 센터의 운동을 꾸준히 못 하는 내가 걷기에 푹 빠졌다. 각 구의 지자체에서는 경쟁이라도 하듯 지역 시민을 위해 산책로 꾸미기에 열성이다. 해가 갈수록 좋아지는 시설을 보면 세금이 아깝지가 않다. 코로나로 활동반경이 축소되어 무료했던 나는 아침저녁으로 걷는다. 가속이 붙어 이제는 일상이 되었고 그 속에서 즐거움을 찾는다. 컨디션이 좋은 날에는 수영 강변로를 거슬러 내려가 민락동 수변공원까지 가기도 한다. 센텀 근처에 다다르면 코끝에서 짭조름한 바다 냄새가 난다. 수영강과 바다가 만나는 지점이다.      

 부산 도시의 토박이인 나는 꽃, 나무, 새, 물고기 등 생물체에 대한 지식이 얕다. 길 가다가 이건 무슨 꽃이네 라든가, 새의 이름을 맞추든가, 심지어 횟집 모둠회 세트의 생선이름을 구분하는 사람을 보면 그저 신기하다. 내 눈에 꽃은 그냥 꽃이요. 물고기도 다 똑같다. 강변을 걸으면서 무식하기 짝이 없는 나의 눈이 뜨였다. 알록달록 꽃이 눈에 들어오고, 하늘을 날다가 강에 유유히 착지하는 새도 자세히 보았다. 귀하다는 수달을 보면서 감탄했다. 학창 시절 지루했던 생물 공부를 이제야 재미 붙여한다. 썰물과 밀물 때에 따라 강물의 수위가 달라짐도 눈으로 보면서 배운다. 바다 향이 나는 지점에서는 갈매기를 본다. 여기부터는 확실히 바다라는 신호이다. 바다가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직장 생활을 정리하고 시간적 여유가 있어서, 노후를 위해 부동산 자격증을 땄다. 일도 배울 겸 실습 차원에서 육 개월 가량 부동산 사무실에서 일을 할 때였다. 신도시 입주시기여서 발에 땀이 나도록 손님을 안내했다. 바다를 볼 수 있는 지리적 위치의 아파트 단지라서 수도권 지역의 고객 문의가 제법 많았다. 그런 고객들의 대부분 첫마디가 “바다 볼 수 있나요?”이다. 바다 전망 뷰에 따라 웃돈이 천차만별이다. 심지어 수억을 호가했다. 동과 동 사의의 손바닥 한 뼘 되는 사이 속에 보이는 바다전망에도 수 천만 원의 프리미엄이 저울질한다. 바다전망을 쟁탈하기 위한 그들만의 리그를 보면서 나는 의아했다. 바다를 늘 가까이에서 볼 수 있는 해운대구에 40여 년 넘게 살아와서 그런가. 타지의 사람들은 내가 부산의 해운대구에 거주한다고 하면 이구동성으로 부러워한다. 우리 집은 사실 해운대 바닷가에서 한 참 떨어졌고, 잘 나가는 센텀도 아니다. 옛날에는 서울 사는 사람들은 일 년 용돈 모아서 해운대로 휴가 온다는 말에 나는 적잖이 놀랬다. 나는 바다에 그다지 매력을 느끼지 못하고 살아왔다. 속창 시가 뒤집어질 정도로 배 멀미를 해서 바다의 비릿한 냄새를 좋아하지 않는다. 바라보면 눈의 피로가 맑아지는 초록의 숲에 끌리었다. 가격에 연연하지 않고 바다만 고집하는 손님을 보면서 맘속으로 구시렁댔다. ‘그 돈으로 차라리 집을 두 채 사겠네. 하루 온종일 바다만 쳐다보면 우울증 걸린다던데.’ 아파트 생활 많이 해 본 경험에 의하면 베란다에 나갈 일이 그리 많지가 않다. 거실에 앉아 티브이 보는 시간이 많지, 한가로이 베란다 밖을 보는 이가 몇이나 될까? 층간소음 고통이 없게 윗집 이웃을 잘 만나길 비는 게 우선순위 일지 모른다. 누군가에겐 매력 없던 바다가 이렇게 높은 가치에 떠밀리어 몸값이 올라간다는 걸 알게 된 경험이었다.     

 올 초에 제주도 여행을 다녀왔다. 겨울에 제주도에 뭐 볼 것이 있을까 하며 길을 나섰다. 눈이 내려 사려니 숲길과 비자림 같은 명소에는 출입이 제한되었다. 오름을 등반해서도, 산 중턱을 드라이브할 때도 어김없이 눈에 바다가 들어왔다. 지도를 보니 한가운데를 한라산이 자리 잡은 제주도는 바다를 피할 수가 없는 지형이다. 해안도로를 따라 달리고 또 달렸다. 해가 질 때 즈음, 발갛게 물든 바다가 가슴에 와닿았다. 나이 들면 눈물만 많아진다더니 이유 없이 눈물이 찡했다. 별 것이 아닌 게 아니라 그 바다는 감동이었다. 지척에 이리도 멋진 곳을 두고도 외국의 관광지를 탐한 내가 바보 같았다. 숲길을 걸으면 평정심을 갖는 나는 바다보다는 산을 가까이했다. 그러했던 내가 바다를 본다. 속이 뻥 뚫린다. 체한 듯 불편한 위장을 바닷물이 씻겨주고 소독까지 해준다. 그 자리를 바다의 내음으로 채워준다. 나는 서서히 바다의 포로가 되어가고 있다.     

 연일 뉴스에서는 부동산 폭등으로 시끄럽다. 한때 서울 한강 뷰가 떠들썩하더니 부산도 만만치 않다. 해운대나 센텀은 바다를 붙잡고 매일 신고 가를 쓰고, 첫 삽도 안 뜬 북항 개발도 난리다. 우습고 아이러니하다. 바다는 우리에게 바다 보는 가격을 요구한 적이 없다. 왜 우리 사람들이 자기 멋대로 가격을 올려다 붙일까? 베란다에 서서 볼 수 있는 바다가 마치 전용 소유인 거 마냥 말이다. 매일 아침저녁으로 산책하면서 강과 바다를 보는 나는 어쩌면 돈을 버는 셈이다. 비싼 강과 바다 뷰를 공짜로 맘껏 즐기고 있으니 횡재다. 뉴욕의 센트럴파크까지는 아니지만 수영 강변 산책로 또한 어디 하나 빠지지 않는다. 성실한 납세자가 되리라 다짐한다.      

 이번 겨울에 일 년간 모은 저축으로 제주도 한 달 살기와 동해선 무궁화호를 타고 부산에서 강릉까지 겨울바다 여행을 계획하고 있다. 시간에 쫓기지 않으면서 천천히 느긋하게 쉬어 감을 실천해 보고자 한다. 올 한 해도 열심히 살아온 나에게 주는 휴가다. 배 멀미로 미루었던 울릉도 찍기도 도전해 볼 참이다. 이번 여행을 통해 바다와 친해지려 한다. 아니, 어쩌면 벌써 친해졌는지도 모른다. 바다라는 도화지 위에 나는 내 연도의 인생 그림을 그리고 싶다. 귓가에 파도 소리가 들린다. 가슴이 콩닥콩닥 뛴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나는 바다의 포로의 되어가고 있다.     

                                                         2021.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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