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나도 갈 테니 물 내리지 마요.”
오늘 아침도 민여사는 주방에서 열일하신다. 아버지는 재활용 분리수거며 쓰레기통 정리를 하신다. 이 집에서 아버지는 환경부 장관이며 재정 장관이시다. 민여사가 아무렇게나 버린 쓰레기를 아버지는 분리해서 말끔하게 정리하신다. 고지서 한 장을 유심히 보시더니 아버지가 혀를 차셨다. “이번 달 가스요금이 12만 원이나 나왔네.”
에너지 가격 폭등으로 뉴스가 시끄럽더니 현실로 들이닥쳤다. 가스비 아끼려고 오롯이 방 2칸만 보일러 트는데도 예전 대비 몇만 원이 더 나왔다. 추위 많이 타는 나 때문에 계속 보일러 틀어서 더 나온 것도 있다.
“그래봤자 겨울 한 철 많이 나오는 거요. 봄 되면 보일러 틀 일도 없어요.”
엄마는 아버지가 별 뜻 없이 한 말임에도, 내 눈치를 보시면서 퉁명스레 말했다. 노인이 되면 없던 습관이 생기듯이 아버지에게도 예외는 아니었다. 아껴야 한다는 애국심을 내세워서 시도 때도 없이 전등을 꼈다. 거실이 어두워서 불을 켜려고 하면, 사람도 없는데 왜 불을 쓰냐면서 발 빠르게 소등하신다. 70~80년대 새마을 절약 운동의 실천을 보는 듯하다.
반면에 민여사는 물을 아낀다. 설거지할 때도 헛으로 물을 못 버리게 한다. 내가 제일 난처한 것은 변기 물이다. 내가 화장실을 가려고 하면
“나도 볼 일 볼 테니 물 내리지 마라.”
소변 조절이 가능한지 민여사는 나의 뒤를 이어 화장실 사용을 한다. 새벽 중간에 화장실 가려고 살금살금 표시 안 나게 일어나도 잠귀 밝은 민여사에게 딱 걸린다.
“물 내리지 마라. 나도 화장실 가련다.”
민여사 논리에 의하면 변기 한 번 사용량의 물의 낭비가 심하니 두 번 정도는 모아서 버려도 된단다.
아버지가 화장실 볼 일을 보시고 일어서려는데 또 엄마가 제지하신다.
“큰 거 봤다.”
“괜찮네요.” 하시며 민여사 바로 소변을 보시고 물을 내리신다. 오 마이 갓! 내가 소리치며 수선을 피우자
“부부끼리는 아무렇지도 않다.” 민여사 태연스레 말했다.
나도 우리 애들 먹다 남은 밥을 먹은 적은 있으나, 화장실 변기물 공동 사용은 안 해봤다.
평생 근검절약하며 사신 생활습관이 안 바뀌나 보다. 이렇게 사셨으니 우리 삼 남매 공부 다 시키셨고, 남에게 아쉬운 소리 안 하시고, 자식들에게 폐 안 주려고 노후준비도 다 하셨구나. 부모 자식 간의 관계를 떠나서 존경스러운 분들이다.
민여사가 화장실을 간다.
“엄마, 나도 갈 테니 물 내리지 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