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서로 각자의 외로움을 채워주는 식구가 되어가고 있다.
선생님들과 함께 기숙사 생활을 하고 있다. 아침잠이 없는 나는 아침 6시 알람에 맞춰 기숙사 현관문을 연다. 출퇴근하는 기숙사 내 직원들의 출입은 내 손안에 있었다. 내가 깜빡하고 문을 못 열게 되면 그들은 꼼짝없이 밖에서 기다려야 한다.
오늘도 정해진 시간에 문을 열였다. 긴 복도를 따라 걷는 내 발자국 소리를 듣고 반갑게 맞아주는 이가 있다. 10개월 된 고양이 큐티다. 선임 선생님께서 새끼 고양이를 주워다 길렸는데, 이제는 어엿한 가족이 되어 귀여움을 한 몸에 받고 있다. 길고양이 답지 않게 순하고 애교만점이다.
“굿모닝 큐티.” 인사를 건네며 현관문 잠금장치를 푸는 동안 큐티는 나의 종아리에 몸을 바짝 붙인 뒤 부비부비한다. 바닥에 뒹구르기도 하고, 스트레칭을 하면서 큐티도 아침을 준비한다. 아직 어둠이 깔린 고요한 새벽에 나의 존재를 인지하고 따라 나와준 큐티가 새삼 고마웠다.
동티라는 낯선 타국에 있다 보니 향수병 비슷한 것이 왔다 갔다 한다. 다람쥐 마냥 학교와 숙소만 돌다 보니 갑갑하다. 친구들과 수다도 못 나누니 속도 답답하다. 무엇보다도 가족이 보고 싶다. 이 또한 극복해야 하는 나의 몫이라고 인정을 하지만 기습해 오는 외로움은 어쩔 도리가 없다.
살갑게 나에게 애교 피우는 큐티가 오늘 아침은 더 반가웠다. 식사시간에 큐티는 자주 탁자 위로 올라와서 궁둥이를 흔들며 한 바퀴 순회를 한다. “큐티, 선생님들 밥을 먹는데 마구 엉덩이를 보이고”
알고 보니 고양이는 아주 좋아하는 이에게 엉덩이를 보인다고 한다. 처음 알았다. 이제는 밥 먹으면서 큐티의 똥꼬를 불편함 없이 편히 보게 되었다.
어느 책에서 식구란 같이 밥을 먹는 사람들이라고 정의했다. 이곳에서 나는 선생님들과 함께 밥을 먹는다. 이러면서 우리는 서로 각자의 외로움을 채워주는 식구가 되어가고 있다. 오늘도 큐티는 식탁에 올라와 행진을 한다.
“큐티, 너도 우리 식구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