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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우임 Aug 18. 2024

물건 사재기,    본디아 22

 몇 년 전 코로나가 한창 기승을 부릴 때 딸이 사진을 서너 장 보내왔다. 마트 내부 모습을 찍은 사진이었는데 좀 이상했다. 진열대에 물건이 없고 텅 비어있다. 무슨 일이냐고 물으니 코로나의 불안감으로 호주 시민들이 생필품 사재기를 한 모양이다. 아니, 전쟁이 일어난 것도 아닌데 너무 오두방정 떤다고 웃었다.  

    

 한인회와 대사관에서 알림이 왔다. 9월에 교황 방문으로 인해 수도인 딜리에 상상을 초월하는 인파가 몰릴 것으로 예상되며 그로 인한 생필품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니 미리 비축하라는 문자였다. 미국 대사관 측에서는 자국민에게 교황 방문 주간에는 가급적 제3 국에 체류하라는 메시지도 보냈다고 한다. 도대체 이게 무슨 일이지?   

  

 작은 나라 동티는 거의 모든 물건을 수입에 의존한다. 휴지조차도 자국에서 생산하지 못한다. 외국에서 화물선으로 컨테이너가 들어와야 시중에 물건이 깔린다. 동티에서는 사고 싶은 물건이 있고 보이면 바로 구매하라는 말이 있다. 살까 말까 망설이다 내일 상점에 들르면 이미 없다는 것이다. 물자가 풍부하고 마트에 물건들이 산더미처럼 재여 있는 한국에서 거주하는 한국인은 이해하기 힘들 것이다.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사태에 기숙사 선생님들은 어찌 되었든 간에 우선 준비 차원에서 마트 순례를 다녔다. 생수와 화장지, 라면 등을 먼저 구비하고 부수적인 것들을 채웠다. 내 방 한구석이 식료품 창고가 되어갔다. 어린 시절 70년대 후반에 어머니께서 월동 준비로 연탄을 쌓아두고 김치를 몇 항아리 담그고 나서 “이젠 전쟁이 나도 끄덕 없다.” 하셨는데 내가 지금 2024년 8월 적도 근방의 이곳에서 그대로 답습하고 있다. 전기 부족으로 정전 사태도 빈번할 거라 하는데 전기는 내가 어찌할 방법이 없다. 부채로 견디어야 한다.     


 엄마에게 안부 전화를 드렸다. 유독 여름을 많이 타서 해마다 이맘때쯤이면 입맛을 잃어 고생을 하신다. 어찌 지내고, 식사는 잘하시냐는 질문에 “아이고, 내 걱정하지 마라. 먹을 것이 철철 넘쳐서 뭘 먹어야 할지 모른다. 더위도 한풀 꺾여 괜찮다.”     

 부모님 세대의 어렵고 힘든 시절을 우리가 다 알 수는 없지만 그분들이 참고 잘 버텼듯이, 우리도 동티에서 그러길 바란다. 


 70년대 혹한의 겨울을 무사히 넘겼듯이 우리도 이 비상사태를 무사히 조용히 치를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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