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물상, 본디아 32

by 정우임

옆집에서 결혼식 피로연으로 요란하다. 국교가 가톨릭인 동티에서는 성당에서 결혼식을 올리고 집에서 친지와 동네 사람들이 모여 잔치를 거하게 한다. 이 또한 형편이 나은 집에서나 가능하다. 먼저 동거를 하면서 아이를 낳고 살다가 결혼식 자금이 모이면 식을 올리고 축하 파티를 하는 게 다반사다. 우리 학교의 운전사 두 명도 아이가 있음에도 아직 식을 올리지 못했다. 밤새도록 이어지던 파티는 새벽녘이 되어서야 마무리가 되었다. 오랜 시간 동안 어렵게 준비한 잔치다 보니 시끌벅적하고 동네가 떠들썩해도 누구 하나 민원을 하지 않는다. 기쁘게 함께 즐기는 모습이다.

다음 날 아침 동네 꼬마들이 포대 자루를 들고 와서 열심히 옆집 마당에서 맥주 캔을 담고 있다. 동티는 재활용이라는 개념이 없는데 그 모습이 낯설어서 물어봤다.

“왜 빈 캔을 모으니?”

“돈으로 바꿀 수 있어요.”

중국 상인들에게 가져다주면 무게를 재어서 돈을 받는다고 한다. 아마 캔 같은 고철을 모아서 제3 국에서 제련하는 작업을 하는 거 같다. 옆집은 이 동네에서 꽤 잘 사는 축에 드는 집이어서 수거할 만한 캔이 있었다. 부지런한 아이들이 잽싸게 널브러진 피로연 자리를 휩쓸고 갔다.


우리도 어렸을 적에 집안의 고물을 엿장수에게 팔았다. 엄마는 구멍 난 양은 냄비도 헛으로 버리지 않고 모아놨다가 고물 장수가 오면 물물교환을 하셨다. 지금이야 물자가 넘쳐서 귀한 줄 모르지만 불과 몇 십 년 전의 한국도 지금의 동티처럼 어려웠다. 풍요의 시대를 살면서 가끔 뭐든 부족한 이곳에서 나는 또 한 가지를 배운다. 내가 누려왔고 누리고 있고 앞으로 누릴 것들에 대해 감사함을 되새겨본다.


서랍장에서 옷을 몇 벌 꺼내 바느질을 했다. 구멍이 나거나 실이 뜯어져서 손이 안 갔던 옷들이다. 한국이었다면 벌써 버렸을 옷이다. 서툰 손바느질이지만 해놓고 보니 일 년은 입을 수 있겠다. 기숙사에서 나오는 캔을 모아다가 다음에 동네 꼬마들에게 줘야겠다.

유년 시절 동네에서 들었던 엿장수 아저씨의 큰 가위를 치는 소리가 귓가에 맴돈다. 그때 먹었던 큼직한 엿도 참 달고 맛났었다.

작가의 이전글한마당 세 그루 나무, 본디아 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