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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권. 전기인의 생각 (38. 강제된 충성)

(38. 강제된 충성, 되찾은 자유)

by 종구라기

1980년, 고등학교에 입학한 해였습니다.

그해 가을, 전주에서 전국체전이 열린다는 소식에,

우리 고등학교 1학년 남학생들은 모두 '국가 행사'에 강제 동원되었습니다.


오전 수업만 받고 오후에는 전주 상업고등학교에 모여 매스게임, 카드 섹션 연습을 했습니다.

방학에도 학교에 나가야 했습니다.

연습 중간엔 1인당 빵 하나와 우유 한 팩이 주어졌습니다.

고픈 배를 그걸로 달래며 하루 몇 시간씩 훈련을 반복했고,

집에 돌아오면 몸은 녹초가 되어 잠들기 일쑤였습니다.

학업은 뒷전이었고, 타 지역 학생들에 비해 성적이 떨어지는 건 지극히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지금 그런 일이 벌어진다면 부모들이 들고일어났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 시절은 군사정권 시대였고,

어떤 불합리도, 억지도 “나라를 위하여”라는 명분 앞에서 침묵해야 했습니다.


당시 우리는 초등학교, 중학교를 거치며 박정희 대통령의 위대함만을 배웠습니다.

그래서 1979년 10월, 김재규 중앙 정보부장에게 박 대통령이 암살당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마치 부모님이 돌아가신 것처럼 슬펐고, 곧 전쟁이 일어나는 건 아닐까 두려움에 떨었습니다.

그만큼 철저하게 길들여진 세대였습니다.

하지만 성인이 되어 세상을 제대로 바라보고, 역사를 공부하면서 조금씩 진실의 얼굴을 보기 시작했습니다.

박정희의 ‘공(功)’보다 ‘과(過)’가 너무 크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경제 성장의 이면에는 유신 독재, 인권 탄압, 언론 통제, 반대자 숙청이 있었습니다.

이후 등장한 전두환, 노태우도 민주주의를 유린한 군사 쿠데타 세력이었습니다.

12·12 군사 쿠데타로 권력을 찬탈하고, 1980년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총칼과 군홧발로 짓밟은 정권이었습니다.

어떤 성과로도 학살과 억압은 정당화될 수 없습니다.


이제는 시대가 바뀌었습니다.

하지만 일부이지만, 그 시절을 그리워하는 목소리도 들립니다.

"그래도 그때는 살기 좋았지"라는 말속에는

누군가의 억울한 침묵과 눈물이 담겨 있었습니다.

그 시절은 어떤 이들에겐 성장의 시대였지만

또 어떤 이들에게 억압과 고통의 시대였습니다.

우리는 그 진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다시는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같은 대통령이 이 나라에 나오지 않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독재보다 자유!

그것이 우리가 지켜야 할 대한민국의 미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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