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 굴뚝 위의 피뢰침 그리고 객기)
세상에는 수많은 위험이 도사리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위험을 피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안전장치들도 곳곳에 존재합니다.
강추위는 두꺼운 방한복으로 이겨낼 수 있고,
수영을 못하는 사람도 구명조끼와 산소통으로 물에 뜰 수 있고 생명을 유지합니다.
감기나 질병은 약과 수술로 치료할 수 있고,
자동차의 과속 위험은 브레이크가 막아줍니다.
하늘에서 내리치는 번개는 피뢰침이 막아줍니다.
학교를 졸업한 후, 나는 주택 건설 회사에 입사하게 되었습니다.
첫 배치는 군산의 어느 아파트 신축 현장이었고,
담당 업무는 전기공사 감리(감독)였습니다.
1990년 당시, 아파트 난방은 벙커 C유를 사용하는 중앙난방 방식이었습니다.
배출가스는 50미터 높이의 굴뚝을 통해 내보냈고,
굴뚝 꼭대기에는 번개를 막기 위한 피뢰침이 설치되었습니다.
전기 감리의 중요한 임무 중 하나는,
이 피뢰침이 제대로 시공되었는지 직접 확인하는 일이었습니다.
문제는...
그 50미터 굴뚝을 직접 올라가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당시 현장에선 안전장치라고 해봐야 사다리 하나가 전부였습니다.
위태롭게 흔들리는 굴뚝 아래에서 나는 한참을 망설였습니다.
그때, 같이 근무하던 기계 감리 선배님이 한마디 하셨습니다.
“심 감독, 무서워서 굴뚝 못 올라가지?”
군대를 갓 제대한 나에게 그 말은 도전장처럼 들렸습니다.
쇠라도 씹어 먹을 기세였던 시절.
‘그깟 굴뚝인들 못 올라갈까’ 하는 객기 반, 책임감 반의 마음으로
나는 굴뚝을 올랐고, 피뢰침 시공을 직접 확인했습니다.
그 일이 있은 후,
그 선배는 나를 달리 보기 시작했고,
현장에서도 어느 정도 인정을 받게 되었습니다.
돌이켜보면,
그때의 나는 ‘용기’를 낸 것이 아니라
‘객기’를 부린 것이었습니다.
그때 실수라도 했다면,
혹은 바람이 세계 불기라도 했다면
지금 이 글을 쓰고 있지 못했을 수도 있었겠지요.
책임감은 귀하지만, 객기는 위험합니다.
진짜 용기란, 두려움을 느끼면서도 옳다고 믿는 일을 선택하고 행동하는 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