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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권. 전기인 이야기 - 23

[8. 전주 생활 이야기]

by 종구라기

8-5. 생애 첫 해외여행


2007년 5월 19일.

내 인생에서 절대 잊을 수 없는 날입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해외로 나가는 날이었기 때문입니다.

회사에서 마련한 7박 8일의 단기 해외 연수 프로그램에 참여해, 호주와 뉴질랜드를 다녀왔습니다.


인천공항에서 대한항공 비행기에 몸을 실은 시간은 오후 7시 30분. 약 10시간을 날아 호주 시드니 공항에 도착했습니다. 입국 심사는 생각보다 까다로워 1시간이나 걸렸습니다. 낯선 나라의 첫 관문부터 긴장을 안겨주었지만, 곧 이어진 일정은 그 모든 긴장을 잊게 만들었습니다.

넬슨 베이에서는 사막투어와 모래 썰매를 즐겼고, 시드니에서는 오페라 하우스와 크루즈를 타며 남반구의 여유를 만끽했습니다.


다음 행선지는 뉴질랜드 로토루아. 짧은 비행 끝에 마오리족이 살아가는 테푸이아 유황 마을에 도착했습니다. 그곳에서 처음 본 간헐천은 마치 대지의 숨결처럼 땅을 뚫고 하늘로 솟아올랐습니다. 신기하게도 뜨거운 온천수에 계란을 담갔더니, 금세 삶은 계란이 되었습니다. 자연이 곧 삶이고, 삶이 곧 자연인 그런 땅에서 새로운 세상을 느꼈습니다.


해외여행이 처음이다 보니 면세 한도 같은 것은 전혀 몰랐습니다. 가족과 친척들에게 줄 선물을 한가득 샀습니다. 치약, 힐밤 크림, 프로폴리스 치약, 심혈관 약, 화장품까지. 인천공항에 도착해 캐리어를 찾았을 때, 내 캐리어에는 내가 모르는 밴드가 묶여 있었습니다. 곧 공항 직원이 다가와 나를 따라오라고 했습니다. 캐리어는 별도 심사대에 올려졌고, 직원이 조심스럽게 캐리어를 열었습니다.

그 순간, 캐리어 맨 위에 놓인 성경책이 그의 눈에 띄었습니다. 호텔에서 아침저녁으로 읽었던 성경책이었습니다. 직원은 캐리어를 다시 덮고 아무 말 없이 “가세요”라고 했습니다. 그땐 별것 아니라고 생각했지만, 나중에 알고 보니 내 짐은 면세 한도를 초과할 가능성이 큰 캐리어였습니다. 성경 한 권 덕분에 무사히 공항을 빠져나왔고, 그 후로는 해외여행을 갈 때마다 면세 한도를 꼼꼼히 확인하는 습관이 생겼습니다.


이후 가족, 친척, 친구들과 베트남, 태국, 홍콩 등 동남아를 여행하였습니다. 그곳에서도 직업은 속일 수 없다는 걸 실감했습니다. 도로에 심어진 전주와 전선을 보며, 자연스레 눈이 가던 곳은 기술자만이 볼 수 있는 세부적인 장면들이었습니다. 우리나라의 튼튼한 콘크리트 전주와 달리, 이곳은 나무로 된 목주에 전선이 어지럽게 얽혀 있었습니다. 고층 건물의 외벽에 설치된 비계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우리가 흔히 쓰는 알루미늄 비계가 아닌, 대나무로 엮은 비계였기 때문입니다. 과연 저게 안전할까 싶었지만, 그들만의 방식으로 버티고 있는 모습에서 묘한 감탄이 일었습니다.


여행은 새로운 풍경을 보는 것이 아니라, 익숙한 나를 낯선 곳에 데려가 보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 말처럼, 나는 호주와 뉴질랜드에서 처음으로 새로운 세계를 만났고,

낯선 전봇대와 대나무 비계 앞에서 내 직업을 다시 떠올렸습니다.

그리고, 공항에서 성경책 덕분에 무사히 통과한 날 이후로

나는 세상 어디에서든, 나를 지켜주는 작은 우연들을 믿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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