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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권. 전기인 이야기 - 21

[8. 전주 생활 이야기]

by 종구라기

8-3. 건물주가 되다


2004년부터 내 집 없이 시작한 전주 생활은, 7년 동안 네 번의 이사로 이어졌습니다.

송학 아파트, 주공 아파트, 자이 아파트 34평과 47평.

짐을 싸고, 짐을 푸는 일이 어느덧 일상이 되었습니다.

결혼 후 정읍, 제주, 서울, 전주로 이어진 열 번의 이사. 무주택자의 설움은 이삿짐만큼이나 무겁고 번거로웠습니다.

'이젠 정말 내 집이 필요하다'는 절박함이 생겼고, 인근 아파트를 알아보던 어느 날, 눈을 의심했습니다.

"이 돈이면 단독주택도 지을 수 있겠는데?"

그렇게 시작된 새로운 계획.

97평의 대지를 구매했고, 2011년, 드디어 나만의 집을 짓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엔 우리 가족만 살 집을 생각했지만, 장인, 장모님이 5층 아파트의 4층에 사셨는데 4층까지 계단을 오르내리기 힘들어하시는 모습을 보고 건축 계획을 바꾸었습니다.

1층에는 부모님을 위한 주택과 판매시설,

2층은 우리 가족의 보금자리,

옥상 층 반은 경사 지붕의 다락방, 반은 평지붕으로 건축하였습니다.


실용적인 면도 잊지 않았습니다.

1층 판매시설의 전기 계약전력은 5kW가 아닌 일반용 최저 전력인 4kW로 신청하여

매달 기본요금을 6,776원씩 절약하고 있습니다.

작은 절약이지만 평생으로 따지면 꽤 큰 금액입니다.

이런 디테일한 선택들이 내 집을 더욱 애착 있게 만들었습니다.

안전도 놓치지 않았습니다.

방범 방충망을 튼튼하게 설치하였고, 창틀에는 나사로 직접 고정하고, 문 열림 방지 고리까지 설치해 밖에서는 절대 창을 열 수 없도록 했습니다.


하지만 현실은 언제나 설계대로만 흘러가지 않았습니다.

건축은 예상보다 늦어졌고, 우리는 전세 계약 만료일에 맞춰 집을 비웠지만

새 집은 아직 완공되지 않았습니다.

임시로 짐을 보관할 곳이 필요했고, 이사업체의 소개로 컨테이너를 빌려 짐 대부분을 보관하고, 꼭 필요한 짐만 챙겨 부모님 댁에서 2개월을 지내야만 했습니다.

컨테이너 창고로 이삿짐을 나르는 날, 일기예보는 하루 종일 비였습니다.

“컨테이너 안에서 2개월을 있어야 하는데 만약 이삿짐이 비에 젖으면 어쩌지?”

분명히 썩고 곰팡이 날 것 같아 걱정이 밀려왔습니다.

그런데 기적처럼,

집안에서 짐을 쌀 때만 비가 내리고 짐을 옮기고, 컨테이너에 넣을 때는 비가 오지 않았습니다.

모든 짐을 무사히 옮긴 바로 그때,

하늘에서 양동이로 퍼붓듯 굵은 빗줄기가 쏟아졌습니다.

조금만 늦었더라면, 모든 책과 가구, 옷이 곰팡이로 뒤덮였을 것이었습니다.

그날 하늘이 절묘하게 허락한 짧은 틈, 그 순간에 깊은 감사를 느꼈습니다.


내 집을 짓는다는 건,

단순히 콘크리트 벽을 세우는 일이 아니라 그 안에 마음과 사랑을 함께 쌓는 과정입니다.

열 번의 이사는 이 집을 더 소중히 여길 수 있게 만들어준 시간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날,

잠시 하늘이 멈춘 덕분에 우리는 젖지 않은 삶의 한 페이지를, 무사히 넘길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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