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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권. 전기인 이야기 - 20

[8. 전주 생활 이야기]

by 종구라기

8-2. 금강산 연수


2005년 7월 6일.

내 인생애 처음으로 대한민국 영토를 벗어난 날입니다.

해외여행도, 출장도 아닌, 금강산으로 연수를 떠난 날입니다.

회사에서 선발된 전북본부 4명 중 한 명으로, 이 특별한 일정에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오전 7시 30분, 전주에서 버스를 탔고, 강원도 주문진에서 점심을 먹은 뒤, 오후 1시 30분 금강산 콘도에 집결했습니다.

출입국 수속을 밟고, 관광증을 받고,

드디어 군사분계선을 넘어 북한 땅을 밟았습니다.


북한 군인들을 처음 마주했습니다.

얼굴에 솜털이 남은 듯한 앳된 표정들.

소학교 4년, 고등학교 6년, 총 10년의 의무교육을 마치면

18세부터 군인으로 사회에 진출한다고 했습니다.

남측 관광객 전용 포장도로 옆,

북한 주민들이 바지를 걷고 물을 건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같은 하늘 아래지만, 너무 다른 삶의 풍경이 왠지 낯설고 안쓰러웠습니다.


금강산 온천으로 피로를 풀고 야채 위주 15찬의 저녁 식사를 마친 뒤,

12층 스카이라운지에서 북한 여성 접대원들의 공연을 보았습니다.

“반갑습니다, 휘파람, 새타령, 밀양아리랑...”

익숙한 노래들이 낯선 감정으로 다가왔습니다.


그날 밤, ‘리옥’이라는 이름의 여성 접대원과 대화를 나눴습니다.

스물여덟.

새벽 1시까지 일하고, 1주일에 하루 쉬고, 월급은 없고 배급만 받는 삶.

결혼은 중매가 많고, 아이는 돌이 지나면 젖을 떼고 탁아소에 보내고

엄마는 다시 직장으로 돌아간다 했습니다.

무겁고, 복잡한 이야기였지만 리옥은 담담했습니다.

나는 그 담담함이 더 안타까웠습니다.

숙소는 ‘해금강 호텔’.

하지만 그것은 정박된 배를 개조한 호텔이었습니다.

파도에 따라 좌우로 흔들리는 배 위에서 북한에서의 첫 밤을 보냈습니다.


이튿날, 아침 7시 기상.

‘구룡연 코스’로 등산을 시작했습니다.

금강문을 지나 구룡 폭포, 상팔담까지 올랐습니다.

경사도 심하고 계단도 많아 힘들었지만,

정상에서 내려다본 절경은 말 그대로 ‘금강산’이었습니다.

점심은 목란관 냉면.

‘평양냉면’이니 잔뜩 기대했건만, 맛은 기대에 못 미쳤습니다.

정직하게 말하자면, 국내 냉면집이 더 맛있었습니다.

오후에는 평양 모란봉 교예단의 공연을 관람했습니다.

사람이 맞나 싶을 만큼의 유연성과 집중력. 신기에 가까운 교예였습니다.

감탄만으로는 부족해 19달러짜리 비디오테이프를 샀습니다.


마지막 날, ‘만물상 코스’ 등산.

‘만상정 - 삼선암 - 절부암 - 하늘문 - 천선대 - 망양대’로 이어지는

3km 코스를 3시간에 걸쳐 걸었습니다.

기암괴석 사이로 불어오는 바람이 한반도에 아직 닿지 못한 평화를 속삭이는 듯했습니다.

하산 후, 들쭉술(18달러), 단삼술(15달러), 목걸이를 기념 삼아 사고,

군사분계선을 넘어 다시 대한민국으로 돌아왔습니다.


이번 여행은 내게 북한의 실체를 가장 가깝고도 조심스럽게 알려준 경험이었습니다.

숙소는 흔들렸고, 음식은 기대에 못 미쳤으며, 길은 낯설고 풍경은 이질적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속에는 사람이 있었고, 삶이 있었고, 이야기들이 있었습니다.

금강산은 내 기억 속에서 살아 숨 쉬는 ‘어떤 밤의 이야기’로 남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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