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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권. 전기인 이야기 - 26

[10. 전주 생활 이야기]

by 종구라기

10-2. 새벽에 출근하는 남자


비가 오는 날이면, 나는 긴장을 합니다.

하늘에서 떨어지는 빗방울이 전해주는 건 단순한 날씨 변화가 아니라

현장에서는 ‘긴급상황’이기 때문입니다.

건설 현장은 자연 앞에 늘 긴장합니다.

특히 장맛비나 태풍이 예고되면, 비상근무조가 즉각 편성됩니다.

호우주의보나 태풍주의보 등 기상 특보가 발령되면 핸드폰에 문자가 오고,

우리는 새벽이든 심야든 빗속을 뚫고 현장으로 달려갑니다.


물론 짜증이 날 때도 있습니다.

편하게 자던 잠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대충 세수하고 옷을 주섬주섬 입고

어둠 속을 운전해 현장으로 가는 일은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아빠가 열심히 산다”는 것을 아이들에게 보여주고 싶기에,

나는 비를 뚫는 이 출근길에 마음을 얹습니다.

그게 누군가에게는 평범한 하루일지 몰라도, 나에겐 책임감의 증표입니다.

습관처럼 여름철이면 핸드폰 알람 소리를 크게 설정해 두고,

머리맡에 두고 잡니다.

자다 깨어 기상 특보 문자를 받으면 곧장 출발합니다.

때로는 도착하기도 전에 기상 특보가 해제되어 다시 집으로 돌아오기도 했고,

초창기에 매뉴얼을 숙지하지 못해 보고를 누락해 경위서를 쓴 적도 있었습니다.

여름 장마철에 2~3일씩 기상 특보가 발령되면, 현장 사무소당 상주 직원이 2~3명 밖에 없기에 주간 야간으로 맞교대하며 비상근무한 경험도 많이 있었습니다.

비상근무는 수급업체와 긴밀하게 협조하여 현장에 피해가 없는지 확인하고, 상급 기관에 절차에 따라 보고합니다.

기상 특보가 해제될 때까지는 단 한순간도 마음을 놓을 수 없습니다.


밤을 새우며 지키는 일은 고된 일이었지만, 서로를 의지하며 버틸 수 있었습니다. 특히 가족이 타 시도에 사는 직원들은 현장 근처 회사 숙소에서 생활을 했습니다.

주중엔 숙소 직원이 비상근무를, 주말이나 공휴일에는 지역 거주 직원이 맡는 식으로 협의하여 비상근무를 했습니다.

서로의 사정을 이해하고 조율하는 문화는 어떤 규정이나 지침보다도 든든한 팀워크였습니다.


예전에는 이런 비상근무가 당연한 일로 여겨졌습니다.

밤을 새워도, 휴일을 반납해도 별다른 보상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다행히 보상휴가 와 비상근무수당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조금은 숨이 트이고, 그래도 누군가 알아준다는 느낌이 들기에

지친 어깨에 작은 위로가 됩니다.


폭우와 태풍은 언제든 옵니다.
하지만 우리는 책임과 연대라는 이름으로 묵묵히, 현장을 지켜왔고 지금도 지키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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