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전주 생활 이야기]
10-4. 작은방 스위치에서 물이 나와요
어느 날, 혁신도시의 한 아파트에서 이상한 민원이 접수되었습니다.
‘작은방 스위치 배관에서 계속해서 물이 나온다’는 내용이었습니다.
20년 넘게 아파트 전기 업무를 해온 제게는 도무지 믿기 어려운 이야기였습니다.
의심 반, 걱정 반으로 관리소 직원과 함께 민원 세대를 방문하였습니다.
그리고 저는 말문이 막히고 말았습니다.
정말로, 스위치 아래로 물이 똑, 똑, 똑 떨어지고 있었습니다.
방 한쪽에는 물받이용으로 커다란 양동이가 놓여 있었고, 이미 바닥과 가구 일부가 젖어 있었습니다.
입주자는 지역 공공기관에 근무 중인 분으로, 주중에는 이곳에서 지내고 주말에는 수도권 집으로 이동해 생활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윗집을 찾아가 욕실과 주방, 배관을 확인해 보았지만 이상은 없었습니다. 물을 쓰지도 않았는데, 아래층 스위치에서는 여전히 물방울이 떨어지고 있었습니다. 기이하고도 신기한 상황이었습니다.
며칠 동안 전기업체와 설비업체 담당자들이 머리를 맞대어 고민한 끝에 문제는 해결되었지만, 입주자는 그동안 큰 불편을 감내해야 했습니다. 젖은 가구와 옷, 습기로 가득 찼던 방, 그리고 양동이에 의지한 며칠의 삶. 그럼에도 불구하고 입주자는 단 한 번도 목소리를 높이지 않았고, 우리를 믿고 기다려 주었습니다.
그 너그러움과 배려 깊은 태도에 우리는 깊이 감사했습니다.
현장 경험이 오래된 저에게도 처음 있는 일이었고, 그만큼 당황스러운 일이었지만, 이해해 주는 한 사람의 따뜻한 마음 덕분에 끝까지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습니다.
윗집 욕실 누수로 인하여, 외벽부위 균열로 인하여, 옥상 방수 문제로 인하여, 전선관 내부 결로 등으로 인하여 스위치 박스에 물이 발생합니다.
그래서 주택건설 공사 시에 방수공사를 철저히 하고 있으며, 특히 전선관 내부의 결로 방지를 위하여 외기와 직접 접하는 외벽 부위에는 스위치나 콘센트 박스를 가급적 시공하지 않습니다.
상대의 사소한 잘못을 빌미로 갑질하며 큰소리치는 사람이 있는 반면,
상대의 명백한 잘못을 알고도 배려하고 이해해 주는 고마운 분이 더 많이 계시기에,
아직은 따뜻하고 살만한 세상입니다.
저도 따뜻한 세상이 되도록 마음속에 항상 작은 촛불을 켜놓습니다.
전기와 물처럼
서로 상극이어서 절대 같이할 수 없을 것 같지만
세상을 살다 보면
여러 모양으로 함께하게 되는 경우를 마주하게 됩니다.
그런경우 서로를 인정해 주고, 거리 두기로 안전을 확보하는 지혜가 필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