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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권. 전기인 이야기 - 38

[12. 전주 생활 이야기]

by 종구라기

12-5. 코로나 시국에서의 직장 생활


2019년 겨울,

중국 우한에서 시작된 바이러스가 순식간에 전 세계를 멈춰 세웠습니다.

그 이름은 코로나 19,

단순한 전염병이 아니었습니다.

세상의 모든 시곗바늘을 멈추게 한 재난이었습니다.

타인과 1미터 이상 떨어져야 했고, 악수는 금기어가 되었습니다.

회식도, 여행도, 심지어 결혼식과 장례식마저

‘미루거나 손님 없이 진행’되어야 했습니다.

식당과 영화관은 텅 비었고, 프로 스포츠는 연기되거나 무관중으로 치러졌습니다.

학교도 열리지 않았습니다.

입학식과 졸업식이 사라졌고, 개학은 수차례 미뤄져 고3이 처음 교실에 들어간 날은 5월 20일이었습니다.

교회의 문도 닫혔습니다.

예배는 영상으로 대체되었고, 성도들은 말없이 집에서 화면 앞에 앉았습니다.

소중했던 일상이 조용히 무너지고 있었습니다.

마스크 한 장이 생존의 기준이 되었습니다.

특히 KF94 마스크는 구하기조차 힘들었습니다.

가격은 열 배가 뛰었고, 줄을 서도 살 수 없던 날이 많았습니다.

정부는 전 국민에게 1인당 25만 원씩 재난지원금을 지급했고, 소상공인 자영업자는 수백만 원씩 긴급 지원을 받았습니다.

차도, 비행기도 멈췄습니다.

이동이 사라지니 원유 수요는 급감했고,

2020년 4월 21일, 서부 텍사스산 원유의 5월 선물 가격이 무려 -37달러 까지 떨어졌습니다.

기름을 주고도 돈을 더 얹어줘야 하는 믿기 힘든 기현상이었습니다.

그 와중에 입사 30년 만에 처음으로 재택근무를 하게 되었습니다.

처음엔 신기했고 편리했습니다.

컴퓨터 앞에 앉아 출근 등록을 하고, 메일을 확인하고 업무를 보았습니다.

하지만 모두가 성실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일부 직원은 재택근무 시간에 쇼핑을 하거나 운동을 하다 적발되었고,

코로나 확진 진단 없이 유급휴가를 쓰다 징계를 받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나 역시 코로나에 감염되어 호흡곤란으로 응급실과 일반 병실을 오가며

3일간 입원 치료를 받아야 했습니다.

그 짧은 시간 동안에도, ‘숨 쉬는 것’의 소중함을 절절히 깨달았습니다.

사무실 출근도 제한되었습니다.

거리 두기를 위해 인원을 나눴고, 원하지 않게 휴가를 쓰거나, 재택근무와 출장을 번갈아 가며 업무를 이어갔습니다.

모두가 각자의 자리에서 조용히 버티는 시간이었습니다.

다행히 백신과 치료제가 개발되었고, 사람들의 면역력도 높아지면서

팬데믹은 서서히 해제되었습니다.

지금은 그 시기를 웃으며 이야기할 수 있게 되었지만,

그때는 정말이지, 매일매일 낯설고 두려운 날 들이었습니다.

전 세계가 동시에 겪은 고립과 불안, 절망은

우리 모두의 삶 속에 스며 있었습니다.

마스크 너머로, 격리된 병실 안에서, 재택근무의 조용한 방 안에서,

우리는 모두가 새로운 세상을 마주했고, 끝내 이겨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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