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전주 생활 이야기]
12-6. 4번 도전 끝에 승진
회사 생활 중,
나는 몇 차례 승진제도의 변화를 겪었습니다.
입사 초기에는 시험제도였습니다.
그러다 어는 순간 심사 제도로 바뀌었고, 다시 2004년, 내가 승진에 도전할 즈음엔 다시 시험제도로 회귀했습니다.
심사 제도였던 시절,
나는 서울본부 주무 부서인 공무부의 주무로 근무 중이었습니다.
전기, 정보통신, 옥외 전기공사 등 100여 개 협력업체와 관련한
설계변경, 물가 연동, 자금계획, 각종 인허가, 소송 대응 등
업무는 산처럼 쌓였습니다.
주무와 보조, 단 둘이서 감당하기에는 엄청나게 많은 양이었습니다.
출근은 새벽, 퇴근은 밤 10시.
6년 가까이 그런 나날을 버텼습니다.
전임 주무들이 모두 심사 제도로 승진했던 만큼,
내가 승진 1순위라는 기대도 자연스러웠습니다.
하지만 2004년, 승진 제도가 다시 시험제로 바뀌었습니다.
그리고 나는 그 해 승진 시험에서 낙방했습니다.
6년간 치열했던 서울 생활을 접고, 고향 전북으로 내려갔습니다.
2006년, 2007년에도 시험에 도전했지만 결과는 똑같았습니다.
총 세 번의 낙방.
2004년에는 아내의 병간호라는 핑계를 댈 수 있었지만, 그 이후는 핑계조차 없었습니다.
공부량도 부족하지 않았습니다.
하루 15시간씩 책상 앞에 앉아 반복 또 반복했습니다.
그럼에도 결과는 냉혹했습니다.
경쟁률 5:1.
그다지 높지 않은 경쟁률에도 계속 떨어지니 믿기지 않았습니다. 자신감도 무너졌습니다.
고등학교 입시, 대학 입시, 전기기사, 자동차 운전 1종 보통과 대형면허,
공군 학사장교, 주택공사 입사시험, 소방설비기사까지...
단 한 번의 실패도 없었던 내가 이 승진 시험 앞에서는 무력했습니다.
결국, 승진을 포기했습니다.
그 후 승진제도는 다시 심사제로 바뀌었지만 나는 이미 고참이 되어 있었고,
승진을 기대하지도, 원하지도 않았습니다.
2019년 인천본부 근무 중,
“이번엔 승진 인원이 많다. 다시 도전해 봐” 주변의 권유도 있었지만
"이제 그만 됐다. 승진보다는 일이나 하자"라는 마음뿐이었습니다.
그렇게, 승진이라는 단어는 나와 무관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2020년 말,
입사 연차와 직종별로 승진 TO가 대폭 확대되었습니다.
그때 뜻밖에도, 많은 동기들이 내게 말했습니다.
“이번엔 진짜 기회야. 한 번만 더 도전해 봐.”
동기들의 권유와 응원, 잊고 지낸 동료들까지 응원해 주었습니다.
마침내, 2021년 1월 1일 자로 초급 간부로 승진을 했습니다.
네 번째 도전 끝에 얻은 결과였습니다.
승진 발표가 난 그날, 나는 몹시 쑥스러웠습니다.
이미 50대 중반이었고,
나보다 훨씬 전에 간부가 된 동기들도 있었고,
지금도 기회를 기다리는 누군가가 있다는 걸 알기에 한편으론 미안한 마음도 들었습니다.
돌이켜보면
그 길은 실패와 좌절, 포기와 회복,
그리고 사람들과의 인연이 만들어낸 길이었습니다.
내가 승진의 꽃을 달기까지 걸어온 그 오랜 길을
나는 기꺼이 ‘나의 아름다운 시간’이라 부르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