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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권 (2. 그날의 초록 불)

by 종구라기

나는 운전하는 걸 참 좋아합니다.

그 시작은 아주 어릴 때였습니다.

나무 자동차 모형 하나만 있어도 나는 혼자서 이리저리 굴리고 돌리고 운전 흉내를 내며 몇 시간이고 놀았습니다.

자전거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직진, 후진, 정지, 핸들 돌리기. 스스로 교통 흐름을 상상하며 나는 스스로 운전자였습니다.

그래서인지 자동차 운전면허도 일찍 따고 싶었습니다.


1984년, 대학 2학년 여름방학.

나는 매일 전주시 팔복동에서 운전면허학원이 있는 대성동까지

편도 15km 거리, 왕복 30km를 자전거를 타고 즐거운 마음으로 달렸습니다.

그 당시 1종 보통 면허 학원비는 한 달 기준 5만 원이었습니다.

학원에서는 눈 감고도 운전면허 코스를 돌 수 있을 만큼 열심히 운전을 익혔습니다.


그리고, 1984년 8월 28일.

전주 대성리 운전면허 시험장.

1종 보통 면허 시험 응시자는 약 130 명이었으며 1차 필기시험에 60명 정도 합격하였습니다.

1차 합격자 중 2차 코스 시험을 통과한 사람은 20여 명이었습니다.

최종 3차 장거리 시험에서 나의 순서는 11번째인데 앞의 10명이 줄줄이 불합격됐습니다.

모두 빨간불.

“오늘은 안 되는 날인가 보다…”

나도 모르게 마음이 쪼그라들었습니다.

하지만 나는 학원에서 연습한 대로 침착하고 정확하게, 방향 지시등을 켜고, 기어를 넣고, 핸들을 돌리고, 돌발 상황과 언덕을 넘어 바르게 운전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드디어 도착지에서 초록불이 켜졌습니다.

나는 기쁘고, 안도한 나머지 두 손을 번쩍 들고 만세를 외쳤습니다.

시험장 주변의 다른 수험생들이 마치 자기 일처럼 박수와 환호를 보냈습니다.

내 뒤로도 장거리 응시생들이 줄줄이 불합격하였습니다.

그날, 1종 보통 운전면허 최종 합격자는 나 혼자 단 한 명이었습니다.

그 순간은 지금도 생생합니다.

조금도 과장이 아니라 내 인생의 몇 안 되는 완벽한 장면 중 하나였습니다.


면허를 따고 나자 운전을 하고 싶어서 견딜 수 없었지만, 당시엔 자동차가 귀했습니다.

다행히 동네 형이 연탄차를 몰고 있었고, 연탄을 싣고 배달할 땐 형이 운전하고

빈 차로 돌아올 때는 내가 핸들을 잡았습니다.

그때 내 꿈은 택시 드라이버였습니다.

내가 좋아하는 운전을 하면서 세상 이곳저곳을 자유롭게 달리고 싶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1996년 제주로 발령을 받았습니다.

매일 새벽 기도회를 마치고 출근하기 전 시간을 활용해 근처 자동차 학원에서 1종 대형면허를 연습했습니다.

당연히, 불합격 없이 한 번에 합격했습니다.

돌아보면, 그 시절이 그립습니다.

매일 자전거를 타고 먼 거리를 달리며 더운 여름에도 땀 흘리며 연습했고, 연탄차 운전도 마다하지 않았던 이십 대의 열정.

그 열정이 그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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