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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권 (3. 망가진 구두)

by 종구라기

2017년 설 명절 연휴.

지병으로 오랜 투병을 하시던 장인어른께서 하늘나라로 떠나셨습니다.

장례를 마치고 유품을 정리하던 중,

한 번도 신지 않으신 구두 한 켤레가 눈에 띄었습니다.

광택이 번질번질한, 그야말로 ‘새 구두’였습니다.

장모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당신은 끝내 이걸 못 신고... 사위가 신게 되네요.”

그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정중히 받아 들었습니다.

며칠 뒤, 낡은 내 구두를 버리고 그 새 구두를 신고 교회로 향했습니다.

한참을 걷다 보니 뭔가 이상했습니다.

발바닥이 푹 꺼지는 듯한 감각.

멈춰서 확인해 보니, 구두 밑창이 떨어져 있었습니다.

겉은 멀쩡한 ‘새 구두’였지만, 뒤 굽은 오래되어 부스러졌고 이미 제 기능을 잃고 있었습니다.

나는 결국 그 새 구두를 신지도 못한 채 쓰레기통에 넣어야 했습니다.

그 순간 문득 떠오른 말이 있었습니다,

“아끼면 똥 된다.”

사실 우리는 이런 물건을 얼마나 많이 갖고 있을까요?

‘언젠가 좋은 날에’ 쓰기 위해 곱게 싸두고, 감춰두고, 아껴두지만...

너무 오래 아껴두면 그 좋은 날은 오지 않고, 그 물건은 똥이 되어버립니다.

구두도 새것이 좋습니다.

옷도, 가전제품도, 아파트도 새것이 좋습니다.

그런데, 오래될수록 더 소중해지는 것이 있습니다.

“술과 친구는 오래될수록 좋다.”

이 말이 요즘 들어 더 깊게 와닿습니다.


서로 바쁘다는 이유로 연락을 미루고, 만남을 미루다 보니

어느새 옛 친구들 얼굴 본 지 오래되었습니다.

망가진 ‘새 구두’가 옛 친구들을 소환하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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