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장래는~

심리 문장완성검사

by 이지애 마리아

나의 장래는 여섯일곱 살 무렵에는 간호사가 되고 싶었고, 고등학생 시절에는 심리학 전공도 하고 싶었고, 유치원 교사도 되고 싶었다.


그러나 나의 가정환경은 그리 여유롭게 뒷받침되질 않아 어려움이 참 많았다. 내적 갈등과 방황 속에 비를 흠뻑 맞고 어두운 터널 속으로 터벅터벅 걸어야만 했었다.


고등학교 3학년 재학 시절 담임 선생님은 면담 도중 내게 이런 제안을 하신 적이 있었는데, 그때는 너무도 어린 철부지여서 간과하고 말았던 것이 요즘 이처럼 후회된 본 적도 드물지 싶다.


어떤 은행 지점장과 친히 아는데 은행에 입사해 보는 것은 어떻겠냐고 나의 의향을 물었는데 한참 예민한 질풍노도의 시기는 왜 그리도 쪽팔리던지....


인문계 고등학생이 대학교 진학을 안 하고 삼천포로 빠지면 엄청난 흉거리가 되기도 하던 시절이었다.


꿩 대신 닭이라고 보육교사 양성과정을 1년간 공부하게 되었는데 그 취업 기회마저도 외환위기(IMF) 사태로 주어지지 않았다.


울며 겨자 먹기로 동네 컴퓨터 학원에 문을 두드렸다. 워드프로세서 1급 국가 기술 자격증을 취득하였다. 그 당시에는 인터넷이 발달하기 이전이어서 PC통신으로 천신만고 끝에 소규모 출판사에 입사 기회를 얻어 입사하였다. 그 무렵엔 워드프로세서 자격증 취득해도 웬만한 일반 사무직에 취업할 수 있던 시절이었다.


그때 당시 나는 토시 하나 오타 없는 신의 손(1분당 1,000타 이상)이라 불리었다. 그래서 여기저기 전산 아르바이트 일을 의뢰받아 타이피스트 일을 하였다. 동네 어느 입시학원 전산실에 장기간 아르바이트하던 1년가량 다녔던 적도 있었다. 그리고 동네 지역 신문사에도 취업 기회가 왔었다.


그러나 그 기쁨도 잠시였다. 입사 첫날 첫 출근부터 끝을 알 수 없는 기나긴 야근과 철야 근무를 해야 했었다. 출판사 업무가 굉장히 체력 소모를 많이 하는 줄 미처 알지 못했었다. 대학 입시 자료 출판하는 일이어서 엄청 눈코 뜰 새 없이 바쁘게 일했었다.


한 달도 채 채우지 못한 어느 날 아침 몸 상태가 매우 좋지 않았는데 그런데도 불구하고 사무실에 출근하였었다. 1시간이 채 지나지 않아 난 과로로 쓰러져 실신하였었다. 그렇게 나의 첫 사회생활은 마침표를 찍었다.


그렇지만 나는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다. 어떻게든 살아보려고 아등바등 발버둥을 쳤었다. 그러나 좀처럼 취업의 문은 열리지 않았다. 2년 정도 지나 벼룩시장 소식지에 나온 ○○구 ○○ 회사에 문을 두들겼다. 기회는 또 왔기에 잡았다. 하지만 썩은 동아줄이었다. 다단계 회사였다. 그 길로 사직서를 내고 나와 다른 일자리를 찾아 면접을 보았다. 서점 카운터 업무라고 안내되어 있어서 갔는데 어둠 속에 있는 사람들이었다. 사금융 사무였다. 그래서 사양하고 돌아서서 나왔다.


틈날 때마다 부모님이 하시는 일터에 나가 카운터를 보았다. 나의 장래는 처음부터 원하는 일이 아니고 우여곡절이 참 많았다.


2012년 우연히 천연비누 & 천연화장품 강좌를 알게 되고 제조 기술을 배웠다. 사용해 보니 드라마틱한 피부 건강을 경험하였고, 장기간 만들어 사용하려고 아예 전문가 과정을 등록하고 배웠다. 나와 가족의 건강을 위해 배운 기술이 어느덧 욕심이 나기 시작하였다. 동네에서 작은 공방을 차려서 하고 싶었다.


그런 마음을 품고 있는 와중에 가습기 살균제 사건이 터졌다. 핸드메이드 제품에도 가이드라인이 생기고 법률이 시행 공포되었다. 누구는 국민이고 누구는 허수아비인가 하는 서운함도 가졌었다. 정확한 기전과 사람의 피부 구조를 모르니 생길 수 있는 감정이기도 하였다. 후회도 하였다. 문과가 아닌 이과 계열을 선택하여 학창 시절을 지냈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도 있었지만, 어느 해 전시회가 열려 가 보니 난 명함도 내밀 수 없는 실력이라는 것을 알게 된 후 마음을 접게 되었다. 손으로 무언가 만들고 그림을 그리고 조각하는 예술적인 재주는 내게 존재하지 않음을 알게 되었다.


현재 그 장래가 글 쓰는 일을 하고 있을 줄은 미처 알지 못하였다. 등단할 기회를 주는 출판사에 원고 받아달라 접수하는 일만도 글쓰기 경력 4년 정도는 되어야 그 업계에서 한번 기회를 줄까 말까 한다고 하니 작가라는 직업도 참 고단한 업무가 아닐 수 없다. 모든 희로애락의 감정을 글로 녹아내려 써야 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독자의 마음을 울려야 하는 일이니까.......


앞으로 나의 글쓰기 장래는 통합적 글쓰기를 하고 싶은데 내 나이에 걸림돌이 되지 않고 아직 인생을 더 살아봐야 통합적이고 통찰력 가득한 글을 쓸 수 있다고 하니 이것은 또 무슨 일인지 모르겠다.


2009년 9~10월 즈음 ○○블로그 개설해서 꾸준히 부족한 글솜씨지만 누구한테 보여주고 인기를 끄는 글쓰기 목적이 아니었는데 친인척들한테 연락받은 일도 있었고, 문학인 선생님 몇 분께서 몇 년 동안 쓴 글을 검토 후 문장력도 좋고 감정 전달도 잘하니 한 가지 장르 정해서 진로를 최종 정하는 것이 앞으로 중년 이후의 삶이 좋을 것이라는 합평을 해주셨다.


그 후 독립출판 작가 글쓰기 대면 강좌가 있어서 수강하였다. 친척 중에도 그렇고 친정어머니께서 학창 시절에 교내 백일장 대회에서 금상, 대상을 휩쓸었고, 젊은 청년기 시절에는 소설가를 꿈꾸었다는 얘기를 들었다. 가끔 내가 블로그 포스팅 글을 읽어보라며 보여드리기도 한다.


독립출판 분야는 국내 역사 10년 남짓하다고 한다. 1인 독립출판은 세무서에 사업자 신고를 하고, 발행해야 하는 한 편 독립출판은 모든 업무를 혼자서 처리하고 서점가에 유통되지 않는다는 차이가 있다. 그래서 부단한 노력을 기울이지 않으면 안 된다. 명사 강좌가 있으면 온 오프라인 가리지 않고 들어야 하며 드라마, 영화, 사회, 경제, 정치, 미디어 등 각종 다방면으로 통찰력을 향상하여야 하는 것이 글 쓰는 사람의 숙명이라고 할 수 있다.


약간은 예민함과 민감함, 타인의 감정에 공감하거나 어떤 상황에서는 절대 공감해서는 안 되는 점도 있어서 사리 분별할 줄 알아야 한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내가 어려진다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