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록수"(김민기, 양희은 그리고 노무현)
(주의) 이 글은 나이로 386세대에 속한 한 사람이 자신의 중도보수적 성향을 바탕으로 쓴 글입니다. 안 맞으시면 안 읽으셔도 좋고, 비판 혹은 오류를 지적하셔도 좋습니다. 다만 ‘이 사람은 이렇구나.’라고만 여겨 주세요. 당신은 틀렸다고 재단은 안 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평소대로 새벽에 일어나 일을 마친 S는 방송실 리클라이너 의자에서 30분쯤 눈을 붙이기로 했다. 휴일인 오늘 하루의 계획이 머릿속에 촘촘했다. 아침에 사무실에 나가 일을 보고, 낮에 한강 둔치에서 운동한 후, 몇 편의 숙제 글을 쓴 뒤, 저녁 8시에 개표방송을 볼 것이었다.
S는 의자에 몸을 누이고 눈을 감았다. 틀렸다. 머리는 또렷했고 잠은 오지 않았다. 신경은 한쪽으로 쏠렸다. 대선 본 투표일이었다. 일어나서 커피를 내리고 컴퓨터를 켰다. 본 투표가 시작된 지 30분이 지난 참이었다. 유튜브 화면에는 지역별 실시간 투표율 숫자가 쉬지 않고 지나갔다. 유튜브를 닫고 한글 프로그램을 열었다. 시간은 흐른다. 조바심도 낙관도 조심스레 흘려보낼 뿐이었다, 지금 할 수 있는 것이란.
글 한 편을 다듬고, 밥벌이를 하러 나섰다. 점심을 먹고 한강에 나가 자전거를 타고 농구를 잠깐 했다. 하늘이 파랗게 높았다. 해가 강했지만, 그늘로 들어가면 쾌적하다고 느낄 정도로 대기는 뽀송뽀송했다.
7시 45분. 작은 명란구이를 시키고 소맥 한 잔을 건배했다. 안주가 나오고 잠시 후 카운트다운이 시작되었다. 5, 4, 3, 2, 1. 휴대전화 화면에 출구 조사 숫자가 표시되었다. 와! 술집 안에 작은 찬탄이 일렁였다. S는 웃으며 건배했다. 술집 안의 모든 이가 각자 건배했다. 웃으며.
“6개월 동안 수고 많았다.”
S는 괜히 실실 웃음이 새는 느낌이었다. 방송에 구체적인 숫자들이 나왔지만 심각하게 읽히지 않았다. 대세가 뒤집힐 일은 없을 것이었다. 지금은 그저 가뿐하면 될 일이었다. S는 몇몇에게 전화했다.
“6개월간 수고 많으셨습니다.”
“감사합니다. 축하합니다.”
“여섯 달 동안 고생 많았네.”
“그러게. 너도 고생했다. 곧 한잔하면서 얘기하세.”
짧은 통화였지만 잔향은 짙었다. S는 두어 잔을 연신 비웠다. 실실거리며. 소주는 달았고 명란은 고소했다. 그랬는데, 갑자기 저 깊은 곳에서 뭉근한 무엇인가가 가슴으로 밀고 올라왔다. 코끝이 살짝 아렸고 소주잔이 흐릿해졌다.
격정적 기쁨이거나 북받치는 감격의 그것이 아니었다. 성취에서 비롯된 후련함도 아니요, 긴 시간 켜켜이 쌓였던 답답함이 해갈되었다는 징표라고 할 수도 없었다. 계엄과 내란이라는 현실의 공포, 잠시 잊었던 ‘그자들’에 대한 노여움과 그로 인한 설움이 명현현상처럼 드러난 것이었을까. 당선자의 여정에 과하게 감정 이입한 것이었을까. 알 수 없었다. 이런 감정들이 아닐 수도, 이런 감정들의 총합일 수도 있었다.
문득 노무현이 그리워졌다.
비교적 일찍 자리를 파하고 S는 숙면하였다. 편안한 잠은 시간의 문제가 아니었다.
김대중, 노무현, 문재인, 그리고 이재명. S가 뽑은 대통령이었다. 어쩌면 이재명이 그가 마지막으로 뽑는 대통령일 지도 모를 일이라고 S는 생각했다. 아직 나이를 말하기에는 이른 감이 있지만 세상일은 모르는 법이다. 육신의 하자로 투표장에 나가지 못할 수도 있고 정신적인 쇠약으로 정상적인 판단하에 투표를 못 하는 경우의 수도 있다. 반추하기조차 끔찍하지만 만일 지난 12.3 계엄 사태가 지속되었다면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S는 이번 선거를 보며 6이라는 숫자를 떠올렸다.
예순을 넘긴 그에게 지난 6년은 가장 가혹한 시기 중 하나라 해도 무방했다.
2020년에 창궐한 코로나19는 그야말로 미증유의 상황을 만들었다. S는 요새도 가끔 코로나가 지속되던 그 3년간의 생경함과 혹독함을 어떻게 이겨냈는지 생각하곤 했다. 코로나 이전과 이후로 세상은 많이 바뀌었다. 새로 얻은 것도 있고 잃어버린 귀한 가치도 있었다. 그 시기 한 조직에서 책임 있는 직책을 맡았던 S였기에 정신적, 육체적, 물리적 어려움은 더욱 깊었다.
코로나가 잦아들기 시작할 무렵인 2022년 5월 윤석열 정부가 출범하였다. 한때의 지지와 기대가 무참하게 짓밟히며 무지와 무도와 야만과 자기검열, 위축의 날들이 끝 모르게 이어졌다. 차마 레거시 미디어의 뉴스를 볼 수 없었는데, 뉴스의 이면을 안 볼 수 없게 만드는 아이러니의 날들이었다. 계엄으로 클라이맥스의 불꽃이 터져 올랐다. 지지부진한 엔딩이 장장 6개월을 이어졌다. 그 하루하루의 조마조마함과 분노와 걱정과 통탄의 날들을 과연 잊을 수 있을까.
이렇게 길고 긴 6년이 가고, 끔찍했던 6개월이 흘렀다.
다음 날 아침 출근길. 버스 창밖으로 수많은, 반짝이는 하얀 꽃이 물결처럼 찰랑거렸다. 동작동 현충원 주변에 가득 꽂혀 장식된 손바닥 크기의 태극기들이었다.
‘아. 내일모레가 현충일이지.’
S는 버스가 정차된 한동안 찰랑이는 태극기 물결을 바라보았다. 햇빛이 찬란하게 부서지는 순백 바탕에 빨강과 파랑과 검정의 문양이 예뻤다. 불현듯, 꽤 오랜 세월 왜곡되고 오염되어 제 자리를 잃었던 것만 같은 태극기에 대하여 아련하고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파랗게 높은 하늘 아래 빛나는 태극기에는 어린 시절, 청년 시절 바라볼 때 차오르던 가슴 떨림과 벅차오름이 그대로였다. ‘바뀐 지 하루가 지났을 뿐인데.’ S는 어쩐지 고양된 기분이었다.
6월이었다. 대한민국의 근현대사에 씻을 수 없는 전쟁과 교전의 상흔과 반드시 기억해야 하는 민주주의 역사의 기록들이 아로새겨진 달. 그리고 그 6월에 오늘 또 하나의 족적이 새겨졌다.
취임 선서를 마친 대통령이 첫 일정으로 국회 방호과 직원들과 청소 노동자들을 만났다는 뉴스가 나왔다. 청소 노동자들과 한 명 한 명 이야기를 나누며 인사하는 대통령의 모습을 보며 S는 또다시 울컥했다. 그에게서는 연기가 아닌 진심 어린 미소와 태도가 배어 나왔다. 지난 3년간 잊혔던, 전혀 보지 못하여 덜컥 낯설기까지 한 ‘대통령의 모습’이 거기에 있었다.
대통령의 일성은 내란 극복과 경제 회복이었다. S는 잘 되기를 진심으로 바랐다. 그러나 그 과정이 쉽지 않을 것은 자명한 일이라고도 생각했다. 내란 극복이라는 대 명제 앞에 극복의 직접 당사자인 내란 세력과 직전 여당 및 극우 세력의 반발은 너무도 분명해 보였다. 이들은 특검법을 비롯한 모든 논의에 정치 보복이라는 프레임을 씌울 것이고, 아마도 장외로 뛰쳐나가며 협치를 외칠 것이었다. 기울어진 언론 환경에 허니문을 기대하기도 어려울 것이었다. 내란 세력과 극우 포퓰리즘 세력에 투표한 절반의 국민이 지켜볼 것이었다.
‘그럼에도, 그럼에도 잘 되기를, 잘 되어야 해.’ S는 주먹을 쥐어 보았다.
21세기에 말도 안 되는 계엄이라는 내란을 국민의 손으로 극복한 나라. 무질서와 혼란 없이 민주적 절차를 더디지만 차근차근 밟아온 나라. 소년공이 대통령이 되는 나라. 기초단체장이 대통령이 되는 나라. 동서와 이념의 갈등이 심하지만 한발 한발 이겨내는 나라. 이것이 ‘다이나믹 코리아’이고, 바다 건너의 ‘아메리칸 드림’에 비견될 모습이라고 S는 생각했다.
연초부터 S는 힘에 겨웠다. 리더로서 책임을 맡은 일은 구상했던 대로 순탄하게 흘러가지만은 않았다. 고객이 줄고 새 고객은 쉬 늘지 않았다. 계획은 현실의 벽에 부딪히고, 이런저런 생각지도 못했던 긁힘과 불편함이 불쑥 튀어나오곤 했다. 그럴 때면 깊은 자기 비하와 열등감이 그를 엄습했다.
그런데 오늘 S는 마음을 다잡아 보았다.
‘다시 해 보자!’ 자신감 혹은 역동이라 할만한 그 무엇이 가슴 속에 차오르는 것을 느꼈다. 오랜만의 활력.
‘나도 좀 더 나은 사람이 되어 보련다.’ 만에 하나 작심삼일, 삼일천하가 되면 그때 새롭게 다시 작심삼일, 삼일천하 하면 될 일이라 쾌활하게 다짐했다.
6월의 새 날이었다.
https://youtu.be/Amw-fk4kmmE?si=n4kA8hUM_xb-KTZ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