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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치혜 Aug 18. 2021

가을비 ASMR

    

   아침 6시 45분경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차창에 작고 투명한 점이 드문드문 찍히더니 곧, 갑자기 우와아~ 소리 지르며 커다란 빗방울들이 몰려들었다. 비는 차 지붕을 세차게 두드리고 와이퍼와 분주히 서로 밀어내기를 겨룬다. 가까운 하늘은 짙은 회색으로 낮고 앞선 자동차들의 미등은 비를 머금어 번진 물감처럼 붉게 번들거렸다. 줄지어 늘어선 자동차 사이로 아스팔트는 더욱 검어졌다.


   세찬 소나기 예보를 미처 보지 못해 우산을 준비하지 못한 출근길의 직장인들이 지하철 입구에서 혹은 비를 피하거나, 혹은 마음을 다잡고 가방을 머리 위로 치켜든 채 보도로 냅다 달려 나갔다. 아직은 우산 장사들도 나오기 전. 내리는 비도 발을 적시는 보도의 물줄기도 조바심을 부른다. 

   주위는 급속히 엄숙해진 느낌. 그럼에도 긴긴 혹서에 지친 마음은 비가 반갑다.

   그것도 잠깐. 생각해보니 다음 주 초까지 내린다는 이 소나기가 물러나면 곧바로 가을이다. 어어어~ 하다보니 벌써 이만큼 온 것이다. ‘올해는’ 하다가 ‘올해도’ 하게 생겼다. 한 살을 더 먹었으니 아쉬움도 그만큼 짙고 급할 것이다. 그런 때면 낙엽이 된 가로수 잎은 더욱 바스락거릴 것이고 맑고 높은 하늘은 더욱 시려 서글플 것이다. 

   남은 시간 알차게 보내고, 마무리 잘하자 따위의 새삼스러운 다짐은 하지 않으리. 가을에 촌스러운 짓은 금물이므로. 다만 작년보다는 조금 더 호젓하고 우아하게 거울을 들여다볼 수 있으면 하고 생각해본다.

   불규칙하게 커졌다 작아졌다 하는 빗소리를 ASMR 삼아 운전석을 뒤로 젖히고 잠깐 잠잤다. 놀라울 정도로 머리가 맑아졌다. 그새 비는 조금 잦아들었고 남쪽 하늘은 부옇게 변했다.

   접어두었던 책을 여니 어쩐지 딱 가을 느낌이 배어나오는 한 편의 시. 

“宿建德江”   孟浩然


移舟泊烟渚(이주박인저)

    배를 저어 안개 낀 물가에 정박하니

日暮客愁新(일모객수신)

    해는 저물어 나그네의 시름이 새롭다

野曠天低樹(야광천저수)

    들은 비어 하늘이 나무에 낮게 걸리고

江淸月近人(강청월근인)

    강은 맑아 달이 사람에 가깝도다

     

마지막 연은 정말 예술이다. 맑은 강물에 달이 비치니 손에 잡을 듯이 크고 밝고 가까웠으리라. 그 달을 바라보는 나그네의 마음은 그야말로 客愁新.

여행을 가고 싶은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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