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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치혜 Sep 07. 2021

견강부회(牽强附會)

맨정신에 궤변 늘어놓기..


  ※ 혐오스러운 사진이 포함되었으므로 노약자, 심신미약자, 임산부는 주의하십시오. 또한 건강한 생활을 영위하기 원하신다면 식사 전, 취침 전에는 가급적 멀리하시고, 당신의 사회적 평판을 고려하신다면  후방주의는 필수입니다!  


   1, 2년에 한 번씩 수염을 기른 채 지저분한 몰골로 지낼 때가 있다. 몇 해전 페북에 나름 변명 비스무레하게 말도 안 되는 소리를 늘어놓았다.  오늘 다시 조금 고쳐서 재활용하는 바이다^^


    "왜 면도 안 해?"라고 내게 묻는 이들이 있다. 스스로의 인식론적 한계를 드러내는 심히 부박한 질문이라 하겠다. 나는 면도를 안 하는 것이 아니라 '수염을 기르는' 것이다!

    이런 질문도 한다. 

   "어울리지도 않는데..." 

   이 또한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미취학 아동 수준의 질문인 게다. 쯧쯧쯧. 나 정도 되는 인물이니까 이게 가능한 일이다.  

    생각해 보라. 한창때의 클린트 東林(Eastwood)형이나 조지 클루니, 빵 발(브래드 피트), 디캐프리오, 신성일, 주윤발, 장동건, 강동원 등 이런 일군의 종들은 가만히 있기만 해도, 심지어 흙탕질을 해도, 빛나고 매력적이다. 또는 매튜 매커너히, 톰 하디, 양조위, 이병헌, 박서진 정도만 해도 존재 자체가 제법 봐줄 만한데다 하물며 로버트 드 니로나 새뮤얼 잭슨, 마동석, 박성웅, 유해진 따위도 품을 들여 꾸미고 손대면 멋져 보인다.


   그러나, but, 운명적으로 '우리 종(種)' -물론 "당신"도 포함된다 - 은 뭘 해도 안 되는 것이다. 메이크업을 해본다, 명품을 걸쳐본다, 조명빨에 기대본다 등등 통상적이고 상식적으로 놀라운 효력을 발한다는 그 모든 것들이 우리 종 앞에서는 무용지물 모드로 돌입하고 만다.

    이제 방법은 하나! 스스로 낮은 곳에 임하여 변태함으로써(당신이 생각하는 그것이 아니다. '곤충이 성장하는 과정에서 형태 변화를 거쳐 성충이 되는 것') 일종의 착시효과 혹은 의약 효과(플라시보)를 노려보는 필살기가 필요한 것이다.


    내 경우를 말하자면 일단 1, 2년에 한 번씩 수염을 기름으로써 한층 못생겨지는 데에 주력한다. 사진에서 보듯 원래 천하고 저렴한 바탕의 외모인데다 더해 수염도 못생겼다. 콧수염에서 턱수염으로 이어지는 라인이 살아있어야 하는데 그것이 과감히 생략됨으로써 전형적인 간신배, 아전의 아우라를 풍기는 것이다. 

현실은 이러하다 ㅠㅠ
은근히 이런 환상을 품은 적이 있음을 고백한다, 쳇 ㅠㅠ     https://mtothej.tistory.com 에서 퍼왔습니다. 감사합니다.

   이렇게  하다 보면 처음 한동안은 주위의 사람들이 고개를 내젓거나, 혀를 차거나, 심지어는 분노하는 행동양식을 나타낸다. (이때가 가장 힘들다. 조금만 파이팅 하자!) 시골 거름 밭 냄새도 시간이 지나면 적응되는 법. 일정 기간이 경과하면 다들 그러려니~ 하거나 '원래 저렇게 생겼지?'하고 끈을 놓아버리는 때가 도래한다. 나 스스로도 그럴 때가 있다.(물론 어디에나 예외는 있는 법. 끝까지 물고 늘어지는 독사, 아귀 같은 존재들이 간혹 있기는 하다. 그럴 때는 너그럽게 쌩까준다.) 야호!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다.


    자 이제 날이 좋아서, 날이 흐려서, 날이 적당해서 칼을 쥐기 좋은 때를 잡는다. Schick사의 면도크림을 소복이 뿜어서 수염이 제법 자라있을 얼굴 표면에 살포시 도포한다. Gillette 4중날 면도기를(Schick 사에 미안하다. 면도기는 질레트다.) 엄지, 검지, 중지로 견고하게 파지한 다음 심호흡을 하고 거울 속의 내 얼굴을 지긋이 응시한다. 탈속한 스님이 머리카락을 밀듯이 자못 비감하게, 그렇지만 단호하게 면도기를 죽 밀어내리는 것이다.


    다 이루었다. 이제 거울 속의 내 얼굴은, 어마나! 깔끔해 보인다. 아뿔싸! 제법 고와 보이기까지 한다. 운이 좋다면 수염에 덮여서 미세먼지와 따가운 햇볕을 한동안이나마 피할 수 있었던 피부의 특정 부위가 제법 뽀송뽀송할 수도 있다. 원판 불변의 법칙이 엄연히 존재하지만 아까 말한 착시와 의약 효과는 진정 위대하다. 저어기 70~80년대에 첫 휴가를 나온, 매일 짬밥만 먹던 이등병 앞에 놓인 짜장면 한 그릇이 진수성찬이요 소울 푸드가 되는 원리와 동일하다. 


    이제 자신 있게 욕실을 나선다. 주위 사람들에게 얼굴을 들이대본다.


    "앗!", "어랏?","무슨 좋은 일 있으세요?" 


    아주 드물게는 "상식적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으나 자못 멋있으세요."라는 가당치 않은 감탄사와 찬사를 아주 자연스럽게 온몸에 휘감게 되는 것이다. 멋지지 아니한가? 이것이 내가 수염을 기르는 이유이다.


    나는 별다른 일을 하지 않았다. 그저 나 자신을 저 낮은 곳, 굴종과 비하가 가득하여 오직 인내만이 필요한 바닥으로 내려놓았다가, 면도만 했을 뿐이다. 단지 그뿐이지만 그럼으로써 주위 사람들에게 새로운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완상하는 기쁨을 주는 것이니 어떤 면에서는 성인과 성현의 도에 부합하는 바가 있다 할 것이다. 홍익인간, 멸사봉공, 적폐 청산의 길은 결코 멀리 있지 않다. 나와 같은 종인 여러분께도 장려하는 바이다.


    이것이 내가 수염을 기르는 이유이다. 끝.


    술도 안 먹고 무슨 횡설수설이냐 -.-;;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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