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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치혜 Nov 02. 2021

무사한 하루.

십일월의 첫날이 지나갑니다. 무사히 지나가서 고맙습니다. 거의 스물두 시간을 눈을 뜨고 보내며 이 지루하고 무거운 하루가 어떻게 흘러갈 수는 있을는지 걱정했습니다. 찰나 찰나 머릿속이 백지상태가 될 때 말고는 멍청하거나 뒤죽박죽이거나 상상을 하다가 울화가 일거나 자책을 하거나 먹먹해지다가 수많은 자문자답 속에서 허우적거리며 보냈습니다. 몸뚱아리가 실해야 마음도 잡힐 것 같았습니다. 눈을 뜬 지 열네 시간 만에 갈비탕 한 그릇을 먹었습니다. 국물은 진했고 찬은 정결했는데 입안은 서걱거렸습니다. 그래도 제 몸에 보양이 됐을 겁니다. 카누 커피 두 봉을 털어 쓰게 마시며, 벼룩시장에서 후배에게 천 원에 산 파울로 쿠엘뉴의 흐르는 강물처럼을 읽었습니다. 머리가 아무 생각 없이  쉬게 놀면 안 되었기에. 책장은 술술 넘어가고, 머릿속에 남은 것은 없었습니다. 나중에 다시 읽어야겠습니다. 열몇 군데 통화를 하고, 몇 가지의 간단한 문서를 만들어 알리고, 내일 유튜브 예배 준비를 하고, 하는 김에 유튜브 몇 꼭지를 보았습니다. 재미는 없었습니다. 머리를 움직여야 했습니다. 리들리 스캇 감독의 영화를 극장에서 봤습니다. 멋진 영화인데 그저 흘러가버렸습니다. 아무래도 나중에 한 번을 더 봐야겠습니다. 머리는 제 바램대로 활동하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덕분에 감사했습니다. 어둠은 부드럽고, 은밀하고, 그래서 슬픔을 감추기에 고마운 것 같습니다. 뜬금없이 몇 년 전에 보았던 위플래시가 떠올랐습니다. 두 영화는 접점이 전혀 없을 겁니다. 단지 헝클어진 전두엽의 미로 속에서만 혼돈되는 것일지도. 두 시간 반을 보냈습니다. 감독님 고맙습니다. 집으로 오는 길에 운전을 하며 라디오를 들었습니다. 리스닝은 아닙니다. 그래서 무슨 내용이 지나갔는지는 모르겠지만, 씨비에쓰 꿈음의 허윤희 아나운서님은 고맙습니다. 살면서 두 번, 시간이 뭉텅이로 날아간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를 기억하는 것은 희미하고 힘이 듭니다. 내가 원하지 않았습니다. 지금은 조금 원합니다. 아닙니다. 원치 않으니 원한다고 하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잘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원하는 것으로 하겠습니다. 모르는 상태에서 시간이 한 뭉텅이 잘려 나갔으면 좋겠습니다. 이천 이십일 년 유월부터 시월의 마지막 날까지. 처음부터 없었던 것처럼 자연스러우면 좋겠습니다. 저와 관계된 어느 누구의 기억 속에도 없게끔. 어차피 코로나 블루이니 지워주는 것도 좋지 않을까요? 그러나 또 다른 많은 분들께 그 시간은 의미 있을 테니 제 헛된 소망일 뿐입니다. 그냥 혼자 지우려 노력할 밖에요, 경험상 그건 잘 될 확률이 높겠지만. 밤은 깊어 십일월의 첫날이 이제 오분쯤 남았습니다, 감사할 뿐입니다. 내일은 더욱 활기차게 보낼 겁니다. 영양이 풍부한 음식을 탐할 겁니다. 책도 제대로 꼭꼭 씹어 읽을 거고, 운동도 할 거며, 남아있는 여러 행사 준비에도 매진할 겁니다. 이파리를 병원에 데리고 갈 것이며, 쓰다듬고 뽀뽀도 할 겁니다. 영화를 한 편 또 볼지도 모르겠습니다. 차를 한 잔 나누어야 할지도 모르지만, 내일은 안 하려 합니다. 철학자는 나는 생각하므로 존재한다는 것을 증명하셨는데 왜 저는 생각할수록 이 모냥일까요. 내일도 무사히. 무사하겠습니다. 의외로 저는 잘 무사한 캐릭터입니다. 아니면 말죠 뭐. 지나갈 테니, 이 또한. 무사한 하루,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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