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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치혜 Mar 25. 2022

“6+1+5+5+4”  -  1

    이런 소리를 들어본 적이 있는가?

    “촥~”, “텅~텅~”, “츄춧!”, “찍 찌익!”...

    들어본 적이 있다면, 귀에 익숙하다면 당신은 농구경기장에서 직관을 해보았거나 농구를 즐기는 사람일 것이다. 각각 클린 슛이 그물을 통과하는 소리, 코트에 공을 튕기는 소리, 팀 동료들이 서로 콜하는 소리, 코트 표면에 새 농구화 바닥이 마찰하는 소리들이다. 

    나는 농구를 좋아한다. 오랜 세월 동안 즐기고 집중하는 것이 몇 가지 있는데 그 중 대표적인 것이 농구이다. 어떤 이들에게는 나의 시그니처로 기억되기도 한다. 좋아하고 열심이었고 제법 잘했다, 고 자부한다.    

 

    농구장에는 몇몇 격언, 속설, 명언 등이 있다.

    ‘백보드를 지배하는 자가 경기를 지배한다’, ‘왼손은 거들 뿐’, ‘신장이 아니라 심장으로 하는 것’, ‘들어갔다 빼주면 던져라’, ‘슈터는 관중을 즐겁게 하고 센터는 감독을 즐겁게 한다’등은 농구를 즐기는 사람이면 누구나 알만한 것들이다.

    ‘공이 뜨겁냐 XX야’(K대 C감독), ‘야, 우리가 지금 안 되는 게 두 가지가 있어. 하나는 공격이고 또 하나는 수비야’(K대 P감독)등 전설처럼 이어지는 개그 같은 이야기도 있다. 한때 인구에 회자되던 ‘이못필패’(이치혜 못 막으면 진다!)라는 전문가적 시점의 격언도 있었다고 하나 다분히 불순한 의도로 조작된 것이 아닌가 의심함이 가하다 하겠다.     

    

    나는 이 중에서도 ‘슈터는 관중을 즐겁게 한다’라는 이야기에 깊이 공감한다. 마치 ‘쐐액~’소리가 나는 것처럼 예리하게 날아가서 림에 꽂히는 중장거리 슈팅은 보는 이의 가슴을 뜨겁게 달군다. 승부처에서 터지는 클러치 샷은 수비수의 입에서 단말마의 ‘XX’소리가 나오게 만들고, 열광하는 관중을 카메라에 담게하는 셔터의 역할을 하는 것이다.

    이번 시즌 KBL(한국 프로농구 리그)에는 전성현이라는 걸출한 슈터가 농구 보는 맛을 더해주고 있다. 내 기준으로는 근 20년 만에 나타난 최고의 슈터라고 평하는바 그 선수가 속한 KGC의 경기를 즐겨 찾아보고 있다. 50%에 조금 못 미치는 3점슛 성공률(쏘아 본 사람은 안다. 이게 얼마나 엄청난 확률인지를)과 연속경기 멀티 3점슛 성공 신기록을 이어가는 중이다. 36경기인가?

     

    이 선수의 활약을 보면서 아득히 먼 옛날 강호의 주름 한 끝자락을 살짝살짝 잡던 본 ‘재야농구인(필자가 20여 년 전에 창제한 용어이다. Gorgeous!)’의 일화가 떠올라 몇 자 적어 후대의 재야농구인들에게 남긴다.  

   

    먼저 경이충만으로 아까운 이야기 하나.  

   

    프로농구 경기장에 가면 하프 타임 이벤트를 한다. 다양한 게임을 하는데 물론 농구와 관련된 것이다. 20년 쯤 전에 WKBL(여자 프로농구)경기를 보러 갔다가 그 이벤트에 참가했다. (사족. 이벤트 참여 경쟁률이 제법 높다. 당시 연맹에서 근무하던 후배에게 부탁해서 한 자리 끼게 되었다. 이른바 불공정한 불법 청탁이었음을 고백한다. ‘공정의 시대’에 죄송하다. 공소시효가 지났으리라 믿고 자수한다.) 게임의 내용은 30초 안에 몇 개의 슛을 성공시키는 것이었고 성공 개수에 따라 기념상품이 주어지는 것이었다. 모두 성공시키면,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상당히 고가의 상품이 기다리고 있었다. ‘이못필패’의 주인공인 나의 목표는 당연히 올킬! 상품 따위는 중요하지 않노라! 오직 명예 뿐! 


    진행 순서는 먼저 하프라인에서 드리블하여 레이업 슛 - 골대 좌우 사이드 미들 슛 – 프리드로우 레인 앞 미들 슛 - 프리드로우 – 3점 슛 – 하프 라인 슛이었다. 뒤로 갈수록 난이도가 높아서 그때까지 모두 성공시킨 사람이 없었다. 장충체육관의 만원 관중 앞에서 하프 타임 이벤트 역사에 이름을 올리리, ‘이못필패’여!     

    멋지게 인터뷰를 하고(원래 자뻑이 심하다) 파이팅을 외친 후 출발선에 섰다. 레이업 슛은 보너스나 마찬가지. 비하인드 백 드리블을 우아하게 시전하며 점프하여 손끝으로 살포시 올려놓았다. 어랏. 중지 끝 감각이 이상하다. 공이 림을 비스듬히 타고 한 바퀴 돌더니, 나와 버렸다. 노 골. 관중들의 ‘어우~’하는 탄식인지 야유인지가 들리고 나는 얼굴이 벌개졌다. 아, 이게 아닌데. 올킬은 ‘공무도하가’가 되었고 역사는 뒤안길로 돌아섰으며 명예는 땅에 떨어졌다. 사회자는 ‘안타깝습니다~’라고 하는데 안타까움은 일도 느껴지지 않았다. 젠장. 그래도 재야농구인의 자존심은 지켜야 한다. 정신을 추스르고 다음 순서의 슛, 슛, 슛, 촥~, 촥~. 다섯 개를 연속으로 넣자 관중들의 탄식은 탄성으로 바뀌었다. 사회자는 ‘아~ 처음부터 잘 하시지.’ 저 인간을 확!     

    마지막 하프라인 슛이 남았다. 전문 선수이든 아마추어이든 훈련의 한 과정으로 많이들 하프라인 슛을 연습한다. 성공했을 때의 짜릿함도 있고 소소한 내기로서의 여흥감도 있지만 실전에서 가끔 버저비터로 필요한 상황이 오기 때문이다. 어렵다. 12미터~14미터의 거리에서 슛을 던져 넣는 것이다. 내 경우에는 연습 때 10에 1.476 쯤 성공? 실전에서는 딱 한 번 손맛을 본 적이 있다. 이제 그 순서. 사회자는 ‘오, 사, 삼...’ 카운트다운을 한다. 나는 매의 눈으로 림을 바라본 뒤 두 번 드리블을 치고 슈웃~. 결과는?


    사회자는 ‘아깝습니다~’를 연발했다. 하지만 전혀 아까운 기색은 없이 ‘선물이 굳어서 다행이다’로 들렸다. 관중석에서는 ‘우와~’하는 놀란 소리와 함께 박수가 쏟아졌다. 레이업 실패 후 올킬, 이면 뭐하냐고... 아내는 ‘그르게, 왜 그 쉬운 레이업을 못 넣어가지고, 쯧쯧’ 하며 연신 놀렸고 후배들은 ‘형님, 레이업 폼이 죽였어요’ 라며 이죽거렸다. 장충동 족발집에서 기념선물로 받은(이를테면 2등상 되겠다. ‘아까비 상’) 티셔츠와 싸인볼을 보며 한 마디 안 할 수 없었다.

    “이 무식한 것들아. 그걸 ‘파격’이라고 하는 거야. 내가 예정대로 올킬했으면 감동과 재미가 있었겠니? 다 WKBL과 관중을 위한 깊은 뜻인 거지, 주작이 홍곡의 뜻을 알겠냐마는 쯧쯧쯧. 원 샷! ^^”

    소주는 달고, 속은 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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