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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치혜 Apr 19. 2022

35


    밤 열시 사십 칠분. 문을 연 식당을 찾아 들어왔다. 몇 시까지 하세요? 열 두 시요. 그럼 됐다. 창자를 채우고 소맥 일병으로 충분한 시간. 특별히 음식이 땡기는 것도 아니고 다만 시장하고, 당 떨어질까, 그리고 헛헛하므로. 

    생맥주 450cc를 벌컥거린다. 시원한 액체가 식도를 타고 보다 깊은 내장으로 꾸르럭 거리며 내려가는 기분을 멍청하니 느껴본다.

    십여 년을 진심으로 즐겁게 했다. 자리에 대한 욕심도 없다. 아니, 욕심이 없다기 보다 내가 스스로 갖추지 못했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마음 자체를 품지 않았다. 그래서 자유로울 수 있었고.


    결정적 패착을 뒀다. 내가 무슨 큰 뜻과 희생정신 따위를 갖췄다고, 주제넘게 '걱정'이라는 걸 하다가, 덜컥 앞으로 나서고 말았다. 어리석은 놈. 네가 논개인 줄 아냐.


   결과는 엉망진창. 힘들게 나무에 올라갔더니 엄청나게 흔들려 떨어진 기분. 사냥의 종료를 위하여 잡힌 개같은 느낌. 처음  아니 지난 몇 년동안 결심하고 주제파악했던 대로 나서지 말아야 했다. 니가 논개냐? 븅신.


    엎어진 물. 수치와 실망은 비로소 발견한 나의 오만함 뒤로 숨기고  낮은 포복자세를 갖추어라. 죽을 때까지.


    최소 삼십 오 퍼센트의 분들이 싫다고 의사를 밝힌  것이다. 대면하는 세 명 중 한 사람이. 선택이 아닌 반대. 이런 주제에 다른 분들을 설득하려 애쓰고 기도했다니, 푸하핫.  찬반의 결정은  무겁다.  그분들을, 누군지 특정 안되는 삼분의 일을 - 이건 전체와 같은 사이즈의 공포이다 - 어떻게 매주 마음 졸이지 않고 볼수 있으랴.


    내가힘든 것은 이것.


    마음을 돌이키지 않았어야 했다. 나서지 않았어야 했다. 확실히 깨달았어야 했다, 나는 결코 위인전에 나오거나 미담으로가슴 훈훈케 하는 그런 좋은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조용히 배깔고 나를 정확히 보면서 살자.


    그런데 어떻게 35가 나를 싫어할 수가 있지? 내 본모습을 아직 다  보여드리지도 않았는데 벌써. 무너진 짝사랑은 밉다. 그리고 허무하다.


    그리고 아무도 없다. 이런 넋두리를 나눌. 이런 때에는.


    오늘은 부활의 밤. 졸라 피곤하다. 내일 아침에 부활할 수 있으려나?

내일  새벽의 미명은 쌩까기로 한다.


       그런들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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