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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치혜 Apr 20. 2022

가평. 0419.


     가위 눌렸다. 무겁고 무서웠다.


     헛헛한 생각을 다듬어야 했고, 오랜만에, 이른바 서정적으로, 글 좀 써볼까 해서 일찍 마치고 용산역으로 갔다. 지하철 노선도를 한참 보다가 ITX로 결정. 강촌을 가려 했는데 시간이 안 맞아 오후 3시 20분 발 가평행을 끊었다.


    거의 텅 빈 열차. 에어컨이 적당한 온도와 쾌적한 습도를 제공했다. 커피 마시며 책 읽기 딱인데 커피는 준비하지 못 했고, 초여름을 방불케 하는 햇살은 책을 읽기에 너무 투명하고 따사로왔다. 서너 페이지 읽다가 어느 새 스르르, 책을 덮고 본격적으로 눈을 붙였다. 단, 머리는 절대 의자에 기대지 않는다. 눌리고 찌그러지면 안되므로.

    자라섬까지 천천히 걸었다.


    서울에서 불과 한 시간이면 되는데. 시간이 없는 것인지 주변머리가 없는 것인지 모를 일이다. 어쩌면 늙고 게을러진 것일 수도 있다. 모름지기 부지런해야 놀기도 먹기도 돌아다니기도 가능한 법일테다.

    하늘은 높고 파랗다. 하늘을 닮아 물도 파랗다. 잔잔한 강물 위에는 아무런 상념 따위 조차 없다. 옛사람들이 명경지수로 마음을 다스린 것이 이래서일까. 하지만 나는 다스려지지가 않는다. 그저 헝클어져있고 마구 일렁거린다. 

    봄꽃은 질 준비를 마쳤다. 절정이 쇠락의 시작이라는 아이러니는 늘 슬픔의 멍이 들게한다.  엊그제의 기억이 겹쳐졌다. 감정이입이라는 단어가 적절한 지 모르겠지만 그냥 감정이입이라고 쓴다. 머릿속이 복잡하고 마음은 일렁거리는데 우리말 겨루기 할 짬 따위는 없다.


    앉음직한 벤치가 강을 따라 시선을 이끈다. 잠시 앉아볼까 했지만 그러면 공연히, 맥없이, 한 없이 가라앉는 것처럼 멍때릴까 싶어 잠시 주변을 서성거리기만 했다. 도도한 강물은 그저 바라보는 것 만으로 맥을 가쁘게 뛰놀게 하는데 잔잔한 물은 어찌 이리 내 안의 처연함을 드러내게 하는가. "열하일기"의 깨우침이 또한 이러할 것이다.


    캠핑장 한 쪽의 트레일러는 길냥이들이 집을 삼았다. 좋은 집이다. 넓고 높고 이것저것이 많아 고양이들이 살고 놀기에 좋겠다. 트레일러 밑을 보니 물그릇과 밥그릇도 보여 돌보아주는 손길이 있는 것이다. 고양이들은 한가롭다. 졸거나 꼬리를 살랑거리며 지나가는 사람들을 구경하거나 열심히 화장을 한다. 평온하다.

    보건소인가에서 제작하여 골목길에 부착한 '길고양이들과 잘 지내는 방법'이라는 안내문을 본 적이 있다. 자세한 설명 말미에 길고양이를 학대하는 것은 범죄라는 사실을 적시해 놓았다. 그러거나 말거나 곳곳에서 길고양이들은 학대를 당한다. 학대가 아니라 죽임을 당하는 것이다.


    잘 아는 어느 교회에서는 주변 곳곳에 약을 놓아서 수 마리의 고양이들이 죽었다고 들었다. 일부 성도들이 - 이런 사람들을 '성도'라고 칭하는 것이 옳은가? - 고양이가 싫다며 그랬다. 고양이가 자주 다니는 길에 뾰족한 꼬챙이를 박은 판을 놓아두기도 했다.  고양이가 뛰어다니다 다치는 모습은 상상만으로도 끔찍하다. 잔치집(언젠가 포스팅했던 아주 매우 몹시 훌륭한 맛의 모듬전을 파는 흑석동의 선술집)의 예쁘고 의젓한 사랑이도 옆 골목의 할머니가 설치한 꼬챙이 판에 걸려 배가 길게 할퀴었단다. 끔찍, 부르르. 다행히 아주 깊지는 않아서 회복중이라고 들었다. 다행이다. 

    사람은 때로 무섭다. 잔인하고 엽기적인 어떤 이야기들은 우리의 상상의 한계를 너무도 쉽게 뛰어넘는다. 꼭 그런 행동이 아니더라도 우리는 서로에게 의도적이든 부지불식간이든 상처를 주고 내상을 입는다. 정을 안 붙이고, 관계를 맺지 않고 살아가기는 불가능하다. 심지어 탈속한 스님도 불자와 인연을 맺는 법 아닌가. 관계 속에서 희노애락을 느끼고 그것으로 매 순간 결심하지만 어느덧 다시 또 같이. 사람은 때로 허무하다.


    커피를 마시며 글을 쓰고 싶었는데 의외로 카페가 별로 없다. 가고 싶던 카페는 공사중이고, 오늘은 특별히 여섯 시 반에 문을 닫을 것이고, 저희가 일이 있어서요 하며 지금 마치려는 중이란다. 작은 바램도 외면하는 봄날이라니. 가평역 앞에 이디야가 있었다. 고맙다. 따뜻한 아메리카노 톨 사이즈를 마시며 노트북을 열었다.


    글쓰기는 무슨. 이제까지 조용하던 카톡이 쏟아지고, 연신 전화가 온다. 일은 끝이 없다. 카톡에 답장을 하고, 문서를 교정 보고, 스케줄을 조정하고 커피를 마신다, 제법 식어버린. 작은 바램도 외면하는 봄날이라니, 쯧.


    스마트폰으로 일정 확인을 하다가 오늘이 4·19기념일임을 비로소 알았다. 1960년이니 62주년인가? 젊은 시절 4월에서 5월은 매캐하게 시작되었다. 4·19와 5·18. 마침내 6·10과 6·29까지. 어디선가 기념식은 하겠지. 문득 이렇게 있는 듯 없는 듯 지나가는 4·19가 온당한가 하는 생각을 잠깐 했다. 이것도 코로나의 여파인가.


    용산 착. 밤은 깊었다. 심신이 곤한 날이다. 

https://youtu.be/fITWFVCbDXA

https://youtu.be/qx0-wwrWsU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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