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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치혜 May 09. 2022

생축  1..


      이파리가 돌을 맞았다. hit by pitched stone 이 아니라 first birthday를. 내가 어렸을 때는 ‘돐’이 표준말이었다. 1980년대에 한글맞춤법표준안이 개정되면서 지금처럼 ‘돌’로 단일화 되었다. 가끔은 발음은 같더라도 표기는 달리 하는 것이 좋을 때가 있지 않나 생각해본다. 지금 같은 경우에.


      아무튼 지난 4월 28일. 실제 생일은 미상이나 맺어주신 인연에 준하여 처음 조우했던 4월 28일을 생일로 지내기로 하였다. 나이가 들면 기념일을 잊어 낭패를 보는 경우도 종종 있기에 이름도 ‘이파리’로 창제하여 반포하였음은 주지의 사실일 것이다. 혹시라도 28.2로 해석하여 2월 28일인가 혼동하지 말기를... 

      엄마와 동생과 딸아이가 힘을 합쳐 정작 본인들은 경험해보지 못 했을 블링블링한 이파리의 돌잔치를 기획하고, 돌잡이까지 하며^^ 성대히 치렀다. 축하하는 마음에 慶賀의 賦를 지어 올리고자 하였으나 늘 그렇듯 바.빴.노.라.  늦었지만 비로소 오늘 기념과 축하를 하고자 몇 자 적는다. 

      이파리야. 나중에 한글을 깨치게 되면 글 전체와 행간에 가득 스며있는 내 사랑의 마음을 찬찬히 읽어보기를 바란다.


너풀너풀은 조하효~

      지금은 비 동거동락하지 않으나 5개월 동안 아침과 저녁으로 함께 지낸 시간과 그 이후로 마음속에 간직한 애틋함을 쉬이 내려놓을 수 없다. 지난 1년은 어찌 보면 기적과도 같고, 수많은 경이와 기쁨과 인연의 매듭이 촘촘하고 아름답게 지어져 있다. 인생이란 이처럼 수많은 순간의 기억들이 매듭지어져 길고 아름다운 끈으로 이어지는 것이리라.

      그 많은 매듭 중 몇 가지를 풀어본다. 기억을 기쁘게 더듬으며.


2021. 4. 28. 오후 2시.

      후배에게서 다급한 전화가 왔다. 교회 앞마당에 털실뭉치같은 작은 생명체가 떨어져 있다고. 눈도 못 뜨고, 꼼지락꼼지락 제대로 몸도 못 가누고, 그저 작은 소리로 낑낑대며 버둥거리고 있다고. 카톡으로 전송된 사진 속에는 하얗고 까만 아기고양이가 울고 있었다. 사진에서도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실수로 집에서 벗어나서 주위에 어미가 보고 있을 수 있으니 일단 물을 챙겨주고, 계단에서 굴러 떨어지지 않게 박스에 넣은 뒤 있던 자리에 그대로 두라고 했다. 먼 발치에서 지켜보기는 하기를. 후배는 인기척을 최대한 안 내고 들락거리며 조심스레 지켜 보았다. 저녁까지 어미는 나타나지 않았다. 4월 말의 날씨는 따뜻하고 쌀쌀했다. 결심해야 했다. 일단 부들부들 떨고있는 아기를 사무실로 들였다.

      택배 스티로폼 박스를 잘라 숨구멍과 창을 냈다. 들여다볼 수 있게 투명 클리어파일 표지를 잘라 창틀에 붙였다. 국제기능올림픽 출전 선수의 심정이 이랬으리라. 담요를 바닥에 깔아 폭신폭신을 제공한 뒤 물에 불린 사료를 접시에 담아 넣어 주었다. 다행히도 그동안 후배가 길냥이들에게 조금씩 주던 사료가 남아 있었다. 그러나 아기는 먹지 않았다. 담요에 얼굴을 묻고, 가끔씩 꼼지락거리며 아기는 밤늦도록 조그맣게 울었다. 우리도 마치 아기처럼 조그맣게 들숨 날숨을 했다. 소리도 낼 수 없었고 숨도 편히 쉴 수 없었다.

      다소 안정이 되었는지 아기는 잠이 들었다. 제대로 잠이 들었는지, 어디 아픈 건 아닌지 만져보고 싶었지만 아서라! 스탠드 조명을 방바닥으로 깔아놓고 고양이걸음으로 살금살금 나와 집으로 갔다. 혹시 아플까, 숨구멍이 작아 혹시 숨 막힐까, 아무것도 못 먹었으니 탈진은 안 했을까 밤새도록 걱정이 되었다. 


      7년 전 홍시를 처음 만났던 밤이 생각났다. 비에 젖은, 한 뼘도 채 안 되게 조그맣던 홍시를 품에 안았을 때 오들오들거리던 그 불규칙한 떨림과 공이질하는 듯한 작은 심장의 박동이 떠올랐다. 보호해줘야한다는 강한 의지와 살고자 하는 산 것의 생생한 본능을 느꼈다. 얼마나 무서웠을까 하는 안타까움도 있었다. 저녁에 아기를 처음 손바닥에 올렸을 때 아기의 심장도 홍시의 심장과 같이 뛰었다. 작지만 분명하게. 같았다. 홍시가 내게 선물해준 그 첫날의 감동과. 


      내일 새벽에 가면 숨구멍을 더 크게 내주어야겠다. 나도 잠이 들었다.


2021. 4. 29. 새벽.

      새벽에 들어가 보니 아기는 미동도 없이 어디가 머리이고 어디가 꼬리인지 알 수 없는 작은 덩어리로 뭉쳐있었다. 혹시 공기 부족? 덜컥 걱정이 돼서 스티로폼 박스의 뚜껑을 살짝 열었더니 바로 ‘미잉~’하고 길게 울었다. 휴우~ 다행이다. 고마웠다.

      사료도 물도 먹지 않았다. 똥오줌도 안 쌌다. 꼬질꼬질했다. 따뜻한 물에 사료를 불려 갈아주었다. 예배당에 올라가 방송을 진행하면서도 온통 아기에게 어떻게 해줘야 하나 싶었다. 홍시는, 수의사 선생님 말씀에 의하면, 생후 3주 전후에 줍냥했기에 물에 불린 아기용 사료를 먹을 수 있었다. 이 아기는 다르다. 지금 이 새벽에 이 아기에게 해줄 수 있는 것은 당장은 아무 것도 없다. 날이 밝아 마트든 병원이든 문을 열어야 한다. 


      마치고 내려와 아기를 물끄러미, 신기하게 지켜보았다. 네이버를 뒤져 갓 태어난 아기고양이를 어떻게 케어해야 하는지 훑고 또 훑었다. 학업능력, 습득능력 만렙! 아기용 분유를 먹여야 했고 그에 따른 수유도구가 필요했다. 배뇨와 배변을 시켜줘야 했다. 무엇보다 중요한 체온 유지. 

      이 아기를 앞에 두고 감탄했다. 생의 한 과정을 마친다는 것이란 이 얼마나 엄청난 일인가. 담요를 덮어주고 출근했다.

(to be continued)

2021. 4. 28.


그저 뭉치일 뿐

https://youtu.be/W7B_I3IeM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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