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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치혜 Jul 05. 2022

권태(倦怠)와, 심화(心火)와, 헤어질 결심,

아무렇지도 않고 싶은 결심.. 


    끓는 솥뚜껑을 열면 훅 달려드는 열기, 그런 일요일 아침이었다. 더웠다. 어제 그제의 더위와 일정과 신경 쓰이는 일들 따위로 몸과 마음이 무거웠지만 곧 풀어질 것이었다. 교회에 도착하면 해야 할 일들을 꼽아보았다. 이 정도면 거뜬하다. 9시 반쯤부터는 커피 한 잔 마시면서 예배 전까지 여유를 부릴 수 있다 싶었다. 

    생각지도 못한 부탁이 들어왔다. 갑자기 시간에 쫓기게 되었지만 괜찮다. 

    또, 도와야 할 일이 생겼다. 시간에 쫓기게 되었지만 이 정도면 괜찮다.

    생각하기조차 싫은 일이 생겼다. 서둘러 마쳤다. 마음은 잡쳤다. 하루는 망쳐질 것이었다. 원치 않은 ‘디카페인’의  주일 오전이 지나갔다. 물을 한 컵 마시고 주섬주섬 마무리를 했다. 뭐든 해야만 했다.


    영화를 보았다. “헤어질 결심”


    6월 들어서면서 보고싶었던 영화가 세 편 있었다. 브로커, 탑건, 헤어질 결심. 영화 보는 눈이 낮고 세평에 귀가 비스킷처럼 얇게 바삭거리는 스타일이다 보니 영화를 선택할 때 사람들의 입길과 영화 기사와 SNS에 심히 의존한다. 위 세 편은 이런 영화 선택의 조건에 딱이었다.

    이런저런 할 일들이 계속 이어지며 시간이 안 났다. 그 사이에 몇 편의 평론과 리뷰와 방송을 통해 “브로커”는 마치 본 것처럼 자세히 알게 되었고, 결론은 ‘안 본다’로 맺어졌다. 이 작품의 허술함과, 연기와, 연출과, PC함과는 동떨어진 안일함에 대한 정보를 너무나 많이 접해서 나도 비슷하게 까는 평을 A4 용지에 폰트 11로 3장쯤 쓸 수 있다는 자신감이 들 지경이었다.


    “탑건”은 지난 주말에 조조로 봤다. 특별한 줄거리 없이, 누구나 예상 가능한 방향으로 흘러가는 영화를 이렇게 재미있게 만들 수 있구나 했다. 덕분에 복잡한 머릿속과 울끈불끈 날뛰어대던 심사는 잠시 잊을 수 있었다. 영화의 효용 극대화! 더 그레이트 아메리카는 늘 그렇듯 과하다. 누군가들에게는 감격 그 자체이겠지만.


    이제 남은 한 편. 찜통 더위와 그보다도 더 끓어오르는 심화를 품고 “헤어질 결심”을 보러 갔다. 용산에 위치한 그 극장은 늘 한가한데 오늘은 사람들로 북적였다. 더운데 멀리 가기는 그렇고 에어콘 빵빵의 시네마 천국을 누려보자였으리라. 게다가 탐 크루즈 아저씨의 미소가 기다리고 있으니. 예상대로 “헤어질 결심” 상영관은 한산했다. 영화보기에 적당한 관객 수. 불이 꺼지니 울화를 제어할 만큼의 적당한 어둑함. 몸뚱아리를 구겨박을 수 있는 적당한 쿠션과 깊이의 의자. 영화든, 연극이든, 책이든, 음악이든 심신이 쾌적 유쾌 발랄 해피하면 깊은 재미가 없다. 복잡한 심사와 지랄맞은 상황과 머릿속을 맴도는 온갖 조악하게 극적인 내 나름의 ‘대사빨’이 이런 ‘예술작품’들과 믹스 매치 레이어가 되어야 깊은 맛, 감칠 맛, 자극적인 맛이 우러나는 듯 싶은 것이다.

    영화는 때로 슴슴하고 때로 긴장감이 팽팽하다가 때로 가벼운 웃음도 던지게 하고 때로 아름다운 미장센을 선물하다가 때로 섹시한 서스펜스를 화면 가득 채우다가 하면서 2시간을 훌쩍 넘긴다. 그러고는 마침내 그 격정적이고 미학적인 엔딩에 가슴 졸이다 보면 검은 바탕에 하얀 명조체의 ‘탕웨이’로 시작되는 엔딩크레딧이 뜨고, 비로소 살짝 굳어있던 몸을 풀게 되는 것이다.

    줄거리와 영화평은 인터넷 곳곳에 가득하니 굳이 쓸 필요는 없으리. 다만. 

    이별 - 혹은 사랑 - 과 소통에 대하여 생각이 맴도는 부분이 있다.

 

    서래(탕웨이)는 ‘당신의 미결 사건이 되고 싶다’고 해준(박해일)에게 말한다. 제목 “헤어질 결심”과 강하게 묶인 대사이다. 영원히 잊히지 않고 갈구하는 – 형사 사건을 대하는 해준의 캐릭터가 그렇다 – 대상이 되겠다는 사랑에 대한 강한 태도이다. 어느 순간부터 천천히 안개처럼 스며든 사랑이지만 그것이 현실이 될 수는 없다. 원치 않는 모습으로 끝을 마주하기 보다 자신만의 방식으로 사랑의 끝을 완성하고 싶다는 의지. 그리고 서래는 자신만의 방법으로 미결의 존재로 남는다.

    이러한 결말이 영화에서는 지독한 사랑에 대한 의지의 표현이지만 현실이라면?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목숨과 기억이 붙어있는 한 영원히 한 곳에 묶이는 존재가 된다면? 이것은 사랑이 아니라 광기 혹은 폭력일 것이다. 오랜 옛날부터의 논쟁, 사랑하기에 헤어진다는 그 말에 대한 숱한 찬반의 명언들이 존재하듯, 영원히 잊을 수 없는 대상으로 누군가의 기억 속에 자리잡는 것에 대하여도 무수한 말들이 쌓일 것이다.

    이별은 가장 강력한 '기억에 대한 의지'의 표현이다. 

    앞으로는 내리막길밖에 안 남았다고 판단이 들 때, 내 삶에서 여기까지가 좋은 기억으로 남을, 버틸 마지막 포인트라는 생각이 들 때 우리는 이별을 선택한다. 나의 기억을 위하여. 혼자만의 기억으로 남을까봐, 어떻게 기억될까 하는 마음으로 우리가 이별을 두려워하는 것은 역설적이게도 기억에 대한 강한 집착이 작용해서 인 것이다. 기억되기 위하여. 그리하여 우리는 종종 이별을 최후의 수단으로 사용한다. 성패에 대한 확신은 없을지라도.

    이것이 이 영화가 잘 만들어진 작품이라고 생각하는 이유 중의 하나이다. 사랑이란 운명처럼 떠밀리기에 각자의 의지로써 선택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것의 절정은 의지의 어긋남으로 인하여 완성 혹은 파괴된다는 이야기를 고전 비극처럼 이야기하는 것이다. '이번 사랑은 헤어질 결심을 통해 절정에서 끝맺겠습니다' 라고.

    서래는 해준이 ‘사랑한다’고 했다고 이야기한다. 아니 진심으로 믿는다. 해준은 결코 그 말을 하지 않았다고 말한다. 실제로 녹음된 내용을 반복해서 듣는 장면에 ‘사랑한다’는 대사는 없다.

    그런데 해준이 서래에게 건넨 말들과 행동과 태도를 찬찬히 묶어보면 그 자체가 ‘사랑하다’라는 단어의 뜻풀이이다. 직설적으로 ‘사랑해’라고 말하지 않더라도 한 사람을 대하는 한 사람의 모든 것이 ‘사랑해’라는 말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어느 순간부터 해준은 서래에게 사랑한다고 끊임없이 이야기했지만 정작 스스로는 사랑이었음을 고백하지도 인정하지도 못했다. ‘마침내’ 깨닫기 전까지는. 

    영화 “드라이브 마이 카”에서, 서로 다른 언어로 연극을 연습하고 공연하며 마침내 교감하는 장면이 연상되었다. 사람들은 Verbal과 Non-Verbal을 섞어 소통한다. 다만 그 소통이 완벽한 것인지는 알 수 없다.

    어찌보면 인간사의 수많은 희비극이 이러한 소통의 일치와 불일치에서 비롯될 것이다. 나는 충분히 표현했는데 너는 왜 모르니? 너는 왜 이야기하지 않지? 말 안 해도 괜찮아, 다 알아. 우린 정말 서로를 알고 있는 걸까. 

    내게 있어 많은 경우 표현의 게으름과 자만 – 이만하면 알아 듣겠지 – 그리고 내 속 편한 해석으로 수많은 불협화음과 속앓이를 해왔음을, 하고 있음을 고백한다. 어쩌랴. 결심해도 곧 그 자리인 것을.


    영화가 끝났다. 오후 4시 20분. 허기졌다. 물 한 컵 말고는 빈속이었다. 짜장면을 먹었다. 오랜만의 해후. 달고 짭조름했다. 반가웠다. 뭘 할까? 카페질하면서 일이나 하는 ‘호사’를 추구하기로. 차 안 막히고 낙조가 있는 곳.

     저녁의 해변은 좋다. 길게 늘어진 석양을 지고 사람들은 해변을 걷거나, 해변을 걷는 사람들을 구경한다. 여름이 성마른 아이는 벌써 바다에 몸을 맡겼다. 뉘엿뉘엿 느릿느릿. 여유있고 편안한 저녁의 해변은 좋다.

    오늘의 첫 번째 커피를 마시며 노트북의 자판을 치다가 또다시 창밖을 보았다. 그새 해는 한 뼘 더 내려앉았다. 한참을 그냥 보고 있다가 사진도 한 장 찰칵. 갑자기 뫼르쏘가 생각이 났다. 왜지, 아무런 이유도 없이.

    일은 무슨. 정훈희 송창식의 “안개”를 듣고, 또 몇 곡의 락을 찾아 들었다. 폐점 시간인 듯, 알바분들이 넓은 카페 안의 자리를 정리한다. 엄마와 선배에게 전화를 한 통씩 하고 밖으로 나왔다. 초승달이 홀로 밝다. 사진을 찍었으나 스마트폰 카메라의 한계. 바닷바람은 불지만 덥고 습하다.

    하루의 끝은 제법 고요하고 호젓하게 마무리한다. 고마운 일이다. 그저 이런 아무렇지도 않은 밤같은 날이 아무렇지도 않게 계속되기를 바란다. 


    교보문고의 광고판을 보았다. 작가의 의도와는 전혀 다르게 "헤어질 결심"의 엔딩 신이 떠올랐다, 왜인지.          

                                                                                                                    <2022. 7. 4.>

https://youtu.be/5txfibEBznQ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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