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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치혜 Jul 30. 2022

헤어짐을 준비하는 허둥지둥이의 자세..


    증상은 지난주 일요일 점심께부터 이어졌다. 

    숨이 가쁘다고 해야 할는지 가슴이 두근거린다고 해야 할는지 정확히 구분할 수는 없는데 아무튼 간헐적으로 숨이 가쁘고 가슴이 두근거렸다. 걷다가 혹은 의자에 앉아서 일을 하다가 혹은 기지개를 켤 때 혹은 멍때릴 때 등 예측을 할 수 없는 상황에서 숨이 가쁘고 두근거렸다. 인정하기 싫지만 적지만은 아닌 나이이고, 만성 운동 부족에 비만도도 있는 편이고, 또 날이 덥고 하니까 참 구구절절 몸 상태가 떨어져서 그런 것이려니 생각했다. 

    몇 번 이러다가 말겠지 하는 생각이었다. 그런데 증상은 가시지 않았다. 주위에서는 그러다 병 키우니 병원에 가보라고 했다. 병원에 잘 안 가는 스타일 - 늙다리 아저씨들한테서 흔히 나타나는 – 인 나지만 병원을 가봐야지, 병원을 가봐야지 하면서도 하루하루 미루어졌다. 마치 얼마가 들어있는지 뻔히 아는 지갑을 여는 것과 같은 기분이랄 수 있는데, 어디어디가 안 좋다는 의사의 이야기를 들을 것이 빤하다는 생각도 들었고 그간의 ‘임상경험’상 정말 이러다 말리라는 생각도 여전했기 때문이었다. 

    증상이 사라지지 않고 오히려 잦아지고 기운이 좀 빠져나가는 느낌이 심해지는 것 같아 불안한 마음이 짙어졌다. 웬걸. 갑자기 할 일들이 몰려 이제는 병원 갈 시간을 못 맞추는 상태가 되니 진짜 이러다 큰일 나는 거 아닌가 싶기도 했다.


    네이버를 열었다. 증상을 뭐라고 써야 되나, 숨이 가쁘다고도 넣어보고 가슴이 두근거린다고도 쳐보았다. 그랬더니 거의 비슷한 내용의 검색어가 나왔다. 

    “심부전증”

    덜컥하는 생각이 들어 증상을 읽어보니 딱 내 얘기가 맞았다. 단지 차이가 있다면 흉통이 있지 않다는 것 정도. 아 이런... 

    그럼에도 불구하고 애써 별일 없겠지 생각하려는데 또 아버지의 기억을 떠올리지 않을 수가 없었다. 아버지는 급성 관상동맥경화로 출장 중에 돌아가셨는데 돌아가시기 전의 증상에 지금 내가 찾아 읽은 내용들이 있었다.

    큰일인데. 네이버에 적혀있는 심부전증의 증상과 향후 전개되는 위험 상황과 그리고 치료 방법을 찾아보니 가만히 있을 일이 아니었다. 초기에 심하지 않은 경우 약물 치료가 가능하지만 자칫하면 시술 혹은 수술로 이어져야 되고 그다음에 늘 그렇듯이 어떤 다른 질병과의 합병으로 인한 위중증으로 연결되며 심한 경우 예측 못할 죽음으로 이어진다는 내용이 네이버 곳곳에 지식인들의 이름으로 차 있었다. 

    더군다나 나는 만성적인 질환이 있고 장기간 약을 복용하는 것이다. 이른바 고위험군. 

    또 걱정이 됐던 부분은 지난 주 부터 중간중간 트림이 나온다는 것이었다. 뭔가 관련이 있는 것 같았고,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직전에 체한 것 같다며 스스로 바늘로 손가락을 따셨다는 상황이 떠올랐다.

    병원에 전화를 했더니 늦어도 5시 반까지는 와야한다고 했다. 몸과 마음에 조급증이 일어 부랴부랴 갔다. 다행히 사람이 그렇게 많지않아 바로 진료를 받을 수가 있었다.



    원장님은 무심하게 나에게 증상이 어떤가를 물어보았고 나는 있는 그대로 이야기한 뒤 마지막에 네이버를 찾아본 이야기를 했다. 원장님은 역시 무심하게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며 어쨌든 기본적인 검사를 해보자고 했다.

    문진과 촉진을 한 후 엑스레이를 찍고 심전도 검사를 했다. 엑스레이 기계 앞에 섰는데 기분이 묘해졌다. 몇 년 전의 기억이, 정기적으로 병원을 다니며 일 년 가까이 투병했던, 떠올랐고 이번에도 혹시 안 좋은 상태가 되면 어찌해야 하나 생각이 들어서 사뭇 긴장했다. 


띠리릭 띠리릭~


    심전도실에 들어가서 발목과 손목과 여기저기 측정단말기를 붙이고 가만히 누워있는데 한심해졌다. 여러 생각이 들었다. 만일에 심부전이라고 확진되면 어째야 하나. 네이버에 의하면 그리고 아까 원장님의 무심한 이 표정 이면에 보면 심부전증이 거의 분명해 보였다. 나는 기저질환이 있으니 그렇다면 분명 중증일 것이다. 더욱이 일주일 남짓만에 일어났으니 급성 심부전증일텐데 찾아본 바에 의하면 위험은 높고 치료는 어려운 일이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아버지와는 달리 나는 비교적 일찍 이렇게 증상을 발견했으니 시간 여유는 좀 있는 것이다. 물론 잘 관리하고 치료받으면 되겠지만 어쨌든 가족력에 유병의 경험이 있다 보니 정상으로 회복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되나.

    지금부터라도 얼마 남지 않은 시간 동안 나를 둘러싼 주위 사람들을 위해 무엇인가를 준비할 수 있을까? 머릿속에 쭉 나열되는 여러 가지 생각을 정리 해야만 했다. 내가 관계를 맺고 일을 하는 부분에 대한 정리를 어떻게 할 것인가, 내가 과연 이 일들을 일정 기간 계속 감당할 수 있을 것인가, 어느 시점에서 어떻게 손을 놓아야 할 것인가, 어떻게 알려야 할 것인가. 아니면 이것 저것 맡아서 하고 있는 일들을 조심조심하면서 계속할 것인가. 혹시라도 그런 일들로 인해서 신경을 쓰고 그것이 건강에 부담이 된다면? 나의 평소 스타일로 봐서는 분명히 그것으로 인해서 스트레스를 받고 그 스트레스가 몇 배의 스트레스로 겹치는 것은 명약관화일 텐데.

    또한 여러 가지 취미 혹은 기호라고 할만한 것에 대해서는 어떻게 할 것인가. 예를 들어 친구, 선후배들과 나누는 주연의 즐거움은 접어야 할 것이다. 갑자기 슬퍼졌다. 내 몇 안 되는 즐거움 중에 하나인데, 그것은. 

    운동을 많이 하지는 못하고 또 코로나 시대에 한 2년 가까이 쉬었다가 최근에 다시 재개하기는 했지만, 젊을 때부터의 꿈이었던 예순이 넘어서 같이 늙어가는 선후배들과 농구 한 게임 멋있게 하기로 했던 그 약속을 어떻게 할 수 있을 것인가. 

    심혈을 기울여 노벨문학상 수상작에 필적할 만한 – 홀로 아름다운 ‘망상’의 나래를 활짝 - 역작을 내고 우아하게 생을 마감하려던 원대한 포부는 어떻게 되는가. 



    제일 겁나는 부분은 이런 것이었다. 그야말로 병약한 노인이 되어 내가 내 뜻대로 내 마음대로 먹고 마시고 움직이고 생각하고 일하고 하는 일들을 할 수 없다라는 것, 그게 현실이 된다면 그 이후의 삶은 얼마나 피폐한 것일까. 삶의 의욕조차 없어지는 것이 당연하지 않을까? 나의 의지박약함을 너무나 잘 알기에 그런 상황에 처해진다면 예상되는 길은 오직 한 가지뿐인 것이다. 무기력하고 신경질적이며 아침부터 저녁까지 비관으로 똘똘 뭉쳐있을 존재 아닌 존재. 여기까지 생각을 하고 보니 머리속이 복잡해졌다. 

    정기적으로 혈압과 당뇨에 대한 검사와 관리, 약 복용 등을 하는 내게 심부전이라든지 혹은 그에 준할법한 이렇게 큰 병이 엄습한다는 것은 좀 억울한 얘기 아닐까? 아직까지 젊다면 젊은 나이이고 - 아버지 때와 비교한다면 오래 살았다고도 할 수 있겠지만 - 하고 싶은 것, 이루고 싶은 것들을 전혀 일구어놓지 못한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이런 중한 병에 걸렸단 말인가? 어떻게 내 인생의 엔딩이 이렇게 무기력하게 마무리될 수 있단 말인가? 너무 억울하다. 어떡하지? 어떡하지? 마음 속으로 온갖 것에 대한 우선순위를 매겼다. 

    새삼 주위의 투병 생활을 하시는 여러 분들이 떠올랐다. 그분들 역시 처음에 진단서를 받아들었을 때 매우 심각했을 것이고, 분했을 것이고, 부정하였을 것이었다. 헤아릴 수 없는 고통과 고민 속에 길을 찾았고 강한 의지로 그 길을 밟아왔고 밟아가고 있는 것이리라. 단순히 저분은 어디가 불편하시구나라고 여겼던 나의 생각이란 얼마나 단순하고 표피적인 것인지. 내가 좀 더 그분들의 이야기 또 그분들의 마음을 잘 이해하려고 노력했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그게 무슨 큰 소용이 있으랴만.


    대기실에 앉아 기다리고 있는데 그 시간이 너무나 길고 또 지루했고 한편으로는 그대로 일정 시간 동안 정지되었으면 하는 생각도 들었다. 기가 막힌 방법과 해법을 찾기 전까지는. 

    잠시 후 원장실로 들어가시라는 안내가 나왔다. 숨을 크게 한 번 들이쉬었다. 이겨내야 해. 어쩔 수 없어. 다행히 그렇게까지 심각한 상황은 아닐 수 있을 거야. 어찌 되든지 간에 내가 이제 잘 관리를 해야지. 오늘부터 당장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은 하자. 들어가 원장님 앞에 앉았다.

     전에 앓으신 적이 있네요.

     네. 한 1년 가까이 안 좋았습니다. 

     지금은 괜찮으신 거죠.

     네.

     평소에 피로를 많이 느끼시나요?

     네. 좀 잠을 그렇게 많이 자는 편이 아니고, 아무래도 나이가 있다고 해야 되나 그런데다가 또 혈압과 당뇨에 질환이 있기때문에 그런 것 같습니다. 


    대답하면서 괜히 미안해졌다. 내 몸 안좋은 건데 이 기분은 뭐지?


    건강에 조심하세요.

    네? 아, 네.


    그런데 결과가 어떻습니까?

    아주 조심스럽게, 사실 약간 겁이 나서 위축된 상태로 물었다.

    많이 심각한가요?

    식습관을 좀 고치시고, 식단도 조절하시고, 스트레스 받지 마시고, 담배는 안 하시죠?

    네.

    잘 하셨습니다. 술도 줄이시고 하세요. 그러시면 괜찮을 겁니다. 지금으로서는 뭐 심부전이나 혹은 유사한 심질환 관련 그런 증상은 없습니다. 앞으로 잘 관리하시면 됩니다.

    네? 아, 네...


     안도의 가슴을 쓸어내렸지만 한편으로는 며칠 동안 마음을 졸이고, 조금 전까지 완전 심각했던 그 상황이 이렇게 허무하게 끝났다는 게 정말 ‘허무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심부전은 아니더라도 무슨 약이라도 처방을 해주면 오히려 더 안심이 되었을텐데. 만성피로 회복에 도움이 되는 영양제 주사를 권하는 간호사가 얄미워 급히 진료비를 계산하고 나왔다. 저 간호사가 보기에는 내가 얼마나 쫄보였을까? 접수하면서 이런저런 증상을 심각하게 얘기했는데 심지어 처방전조차 발행이 안되는 나이롱환자라니 말이다. 

    감사하면서도 스스로에게 좀 부끄러웠다. 평소에 그렇게 쿨한 척을 하고 씩씩한 척하더니만 막상 위기 상황이 닥치니 그게 안 되는 나. 아까 마음속으로 생각했던 것들을 쭉 떠올리니 헛웃음밖에 나오지 않았다. 역시 나는 그냥 아무리 센 척해도 무지랭이인 것이다.

    아참. 트림.

    원장실로 다시 들어갔다. 그런데 제가 지난주 증상이 있을 때부터 지금까지 하루에 한 서너 차례 정도 트림이 나오는데요, 이게 네이버에서 보니까 심부전이나 심장 질환 증상과 또 연결되는 경우도 있다고 하던데.

    그때 혹시 식사를 안 좋게 드신 거 아니에요. 체기가 좀 있으신 것 같네요.

    네? 아, 네.

    긁적긁적.



    “번뇌즉보리”라고 한다. 번뇌와 보리는 정 반대에 위치해 있지만 둘 다 ‘공’이므로 결국 같은 것이라고 한다. 생각과 입장의 차이에 따라서 마음의 위치가 바뀐다는 것인데 내 상황이 뒤집어 보니 딱 그렇다. 며칠을 그렇게 혼자서 고민하고 또 무슨 일이라도 있지 않을까 하다가 막상 또 아무렇지도 않다라고 하니 이리도 마음이 간사해지는 것이다. 

    역시 나는 과감하게 모든 것을 던지고 결단을 내리거나 할 수 있는 그런 사람은 못 되는 거야. 혼자서 머리속에 떠올렸던 그 수 많은 인연과 그 수 많은 사건 어느 것 하나 쉽게 끊어낼 수 없는 평범한 사람, 그런 상상조차 쉽게 하지 못하는 필부. 심지어 마지막 술잔을 언제 마셔야 되는가라는 쓸데없는 고민을 ‘고민’이라고 하는 사람 말이다.

    헤어질 조건이나 헤어질 결심을 하는 상황은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나의 그것은 무척이나 조악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러니 나에게 쿨하고 현학적인 묘비명같은 멋있는 그런 걸 기대하지는 말도록 하자. 매사에 찌질한 쫄보 스타일로 고민하면서 그나마 마지막에는 많이 추하지는 않은, 그저 그랬던 사람으로 잠시 기억되기만을 바라자,

    지금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까쓰활명수” 한 병 먹자.

https://youtu.be/kpfsn5gzCLQ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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