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동문들과의 소모임“몽떼”의 행사를 마치고 집에 도착하니 밤 11시가 조금 안 되었다. 피곤으로 눈도 제대로 안 떠지는 기분이었다. 씻지도 않고 잠자리에 들었다. 이렇게 일찍 잠자리에 든 것은 오랜만이었다. 눕자마자 정신을 잃기라도 한 듯 푹 잤다. 새벽 4시 37분 눈이 떠졌다. 알람 시간이 6시인데 너무 일찍 일어나서 ‘더 자야지’하며 눈을 감았지만 머리속이 맑아 잠이 오지 않았다.
눈을 감고 누워있는 내내 어제의 합동 환갑잔치인 “還甲, 그날 이후 不惑...”의 장면 장면이 사진처럼 떠올랐다. 제법 흡족했던 부분과 못내 아쉬운 부분이 섞여 지나갔다. 나누었던 이야기들이 랜덤 반복 재생 버튼을 누른 것처럼 이어지고 그 이야기들의 끝에 웃는 얼굴들이 오버랩되었다. 근 한 시간 가까이 이리저리 몸을 뒤척였지만 잠이 오기는 이미 틀렸다. 일어났다.
“몽떼”는 올해 초 81~83학번 동문 아홉 명이 모여 만든 모임이다. 한 달에 한 번씩 만나 등산을 가고 뒤풀이 자리를 갖는다. 학교를 졸업하고 오래도록 격조했기에 모이면 즐겁다.
여름의 정기모임에서 지나가는 희망 사항처럼 이야기를 꺼냈다. 작년에 환갑을 지난 사람도 있고 올해 환갑을 맞는 사람, 내년에 환갑을 맞을 사람들로 모임이 구성되었으니 합동 환갑잔치를 빙자한 자리를 마련해 보면 어떨까 하고. 고맙게도 다들 찬성해 주었다. 시간을 흘러 보내다가 정석 군이 구체적으로 발의하고 주도하여 10월에 정석 군과 총무님, 나 셋이 준비위원회(씩이나 ^^)를 구성하였다. 11월 25일 토요일을 디데이로 공지하고 실무를 시작했다.
이런저런 일들이 동시다발로 겹쳐져서 잔치 이틀 전인 목요일 오후가 되어서야 온전히 준비할 여유가 생겼다. 프로그램을 구상(씩이나^^)하고, 동영상 콘티를 짜고 사진을 모으고 노래를 편집하여 동영상을 만들었다. 간단한 게임을 준비하다 보니 급기야 금요일 밤 자정이 넘어가 새벽 2시에 귀가했다. 피곤했지만 즐거웠다. 밤이 깊을수록 아이디어도 깊어졌지만 정해진 시간 계획이 있으니 메인을 제외한 나머지 이백서른일곱 개의 프로그램(진짜다 --;;)은 후일에 써먹기로 나를 진정시켰다.
예약한 카페는 우리 모임과 썩 잘 어울렸다. 기자재 등의 준비에 아쉬운 점이 있기도 했지만 너그럽기로 했다. 오늘은 환갑잔치날이니까. 2시에 시작하려던 계획이 살짝 늦어졌다. 예약 시간을 견주어 보면서 마음이 살짝 급했지만 느슨해지기로 했다. 오늘은 환갑잔치날이므로. 화장실에 가서 거울을 보니 울화가 났다. 도대체 나는 왜 이런 기념할만한 날이면 더욱 못생겨지는 걸까. 그래도 용서하기로 했다. 오늘은 환갑잔치날이니까. 너의 못생긴 죄를 사하노라.
81~83학번의 회원 열 명과 자녀들 다섯 명이 모였다. 얼굴을 본지 근 삼십 년쯤 된 것같은 선경 양과, 회원들의 생전 처음 만나는 귀한 자녀들 덕분에 반가움과 고마움이 커졌다. 각자 취향대로 맥주와 코냑과 와인을 가볍게 채워 건배를 하고 순서를 맡은 이들이 환영인사를 했다. 준비한 동영상을 함께 감상할 때 곳곳에서 웃음과 ‘아~’하는 작은 감탄과 ‘저거 그때야’하는 소리 등등이 들려왔다. 편집하느라 열 번도 넘게 본 영상이지만 스크린에 띄워 함께 보니 나도 모르게 콧등이 시큰해졌다.
이어서 한 명씩 앞으로 나와 인사를 하고 준비해 둔 각자의 사진을 화면에 띄워 지난 세월과 사진 속의 의미와 소회를 이야기했다. 한 편 수줍어하며 한 편 즐거워하며 마이크를 쥔 이들의 얼굴에 어느새 40년 전의 앳된 옛 모습이 포개졌다. 오랜만에 감상한 정석 군의 울림있는 노래소리가 기타반주를 올라탔다. 평소 그의 성품을 알기에 준비위원장으로서, 가객으로서 얼마나 마음을 썼을지는 불문가지, 고마웠다.
아빠와 아저씨들과 ‘터울이 조금 많이 나는 언니’의 이야기를 들으며 동석한 자녀들의 마음은 어땠을까 궁금했다. 도무지 상상조차 안 되는 이야기로 지루하고 고리타분하게 여기면 어쩌지, 어려운 자리에 초대해놓고 불편하면 안 되는데, 내색은 안 했지만 몰래 곁눈질로 살피며 노심초사. 다행히 그리고 고맙게도 자녀들은 집중해 주고 기꺼이 리액션해 주었다.
자리를 옮겨 본격적인 식사와 주연이 시작되었다. 곳곳에서 미소와 박장대소와 이야기가 피어났고 그런 서로를 바라보는 흐뭇한 시선이 쉴새 없이 교차했다. 식당 사장님은 이런 점잖게 즐겁고 정겨운 단체 자리가 정말 오랜만이라며 마치 우리 일행인 것처럼 흥겨워했다. 코냑과 와인과 맥주와 소주는 감미로웠고 우리는 그 단맛에 반가움과 고마움과 웃음과 온갖 추억을 얹어 만끽하고, 즐거워 하고, 때로 감격하였다. 이백서른일곱 개 중 두 개의 프로그램에 적극적으로 참여함으로써 어설프게 진행하느라 애먹는 ‘장모님’을 열성적으로 도와준 정석 군, 호송thi 의 두 가족과 호응해 준 모든 이에게 고맙다. 그대들의 박수와 웃음이 그대들을 복스럽게 해주리라.
행사는 끝났다. 기분 좋게 그리고 조기 폐막에 대한 약간의 아쉬움도 안고 우리는 헤어졌다. 나는 그동안 꽤 여기저기에서 이런저런 행사를 기획하고 준비하고 진행했다. 그 ‘수백, 수천, 수만 가지’의 행사 중 어제가 으뜸으로 좋았다. 부담없고 순박하고 유쾌하고 신선하고 모두 진심이었고 젊었다. 동준 형은 좌장의 품격이 어떤 것인지를 보여주었고, 우리 모두는 왜 몽떼인지를 보여주었고, 자녀들은 몽떼의 자녀다움이 얼마나 아름다운지를 보여주었다.
추억은 힘이 세다.
한 단어를 꺼냈을 뿐인데 그 속에 담긴 온갖 풍성한 이야기와 각자의 기억과 느낌이 한창 때의 코로나보다도 더 빠르게 참석한 모든 이의 머리와 가슴에 확산된다. 구구절절 설명 따위는 필요 없다. 설령 엇갈린 기억이나 다른 느낌을 갖고 있었더라도 한 자리에서 그때를 떠올릴 수 있고, 마치 영상처럼 현재로 소환하여 재생하는 것이다. 소설이나 영화에서 전개 과정 내내 뿌려놓은 많은 단서와 떡밥을 결말부에서 거두어들여 독자나 관객의 머리를 끄덕이게 하듯이. 어떤 것은 맥거핀임이 분명한데도 그 자체로 재미를 주듯이.
그럼으로써 기억은 추억으로 승화된다. 추억은 힘이 세다.
앞으로 한동안 어제의 기억으로 즐거운 힘을 받아 지낼 것이다. 어제의 기억도 세월이 조금 흐르면 새로운 추억의 갈피에 곱게 스크랩될 것이다. 오랜 시간 분리되어 있던 내게 이런 소중한 기회를 선물해 준 회원 모두에게 그저 고맙다는 말밖에 남길 것이 없다.
기회가 된다면 해마다 가족과 함께 어울리는 몽떼 모임을 조금씩 넓히며 가져보면 어떨까 생각해 보았다. 모임의 구실 혹은 타이틀이야 얼마든지 만들 수 있으니. 망우리역사문화공원(옛 망우리 공동묘지)에 모셔진 4만8천여 기의 무덤에도 핑계없는 곳이 없다는데 말이다.
https://youtu.be/_Md8MZbN6bY?si=AAHsKwbZjznX_Yi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