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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치혜 Dec 08. 2023

원주방문록(原州訪問錄)

  

   “나 원주 가면 소주 한잔해 주나?”

   “언제 올 건데?”

   “형, 저도 갑니다.”     

   S는 원주에 갔다. 2015년 1월에 “뮤지엄 산”을 다녀온 후 9년 만이었다. 어디에든 다녀와야겠다 싶어 며칠을 벼른 끝이었다.  

   

   2주일 전 300쪽 분량의 원고 편집 작업을 마쳤는데 유난히 힘이 들었다. 우연한 기회에 연이 되어 시작한 작업이었는데 일반적인 편집과 교정보다 일이 많았다. 이왕이면 매끈하게 잘해 드리고 싶은 욕심이 작업을 해나가면서 점점 커져서 문장을 다듬는 데 힘을 많이 들였다. 결과는 관계된 이들 모두 대만족이었지만 보람이나 뿌듯함이 늘 피로를 상쇄하여 주는 것은 아니다. 

   신경을 바싹 써야 하는 온갖 일들은 여전했다. 생업부터 소속 단체의 여러 일들이 제각각 또는 엮여서 줄을 지었다. 사람 사이의 관계는 늘 팽팽한 법이고, 감정의 소모를 불러일으키는 사소한 마찰과 돌출이 불거졌다. 피곤했다. 책임감 혹은 정성 따위의, 어릴 때부터 미덕이라고 배워온 선한 감정이라는 것들이 사실은 인간의 행복을 망치는 주범일지도 모른다, 라는 생각도 S는 해보았다. 

   그 무렵 지나간 생일도 마음을 피곤하게 했다. 생일을 챙기지 않는데도 그는 공연히 어색하고 불편했다. 심지어 생일 때쯤이면 그동안 뭐 하고 살았나 하는 한심한 마음이 더욱 깊어지는 것이었다.   

  

   편집해 준 원고가 출간되어 두 권이 택배로 왔다. 책을 받아보고 S는 안도하며 출발을 꿈꿨다. 여행이라고 해도 좋고 선물이라고 해도 좋았다. 겸사겸사 누군가들을 만나 커피 한잔하는 것이어도 좋았다. 가자. 

   왕복 시간이 너무 길지 않고 찬찬히 둘러볼 만한 곳이 있어야 했다. 잠을 청할 깨끗한 찜질방이 있고 두어 시간 노트북을 펼치고 있어도 눈치를 주지 않는, 커피가 맛있는 카페가 있어야 했다. 순댓국과 ‘카프레시’는 전국 어디에나 있을 테니 먹거리 걱정은 뚝. 친구가 일하고 있는 원주를 떠올렸고, 결정했다.  

   

   유붕자원방래(有朋自遠方來)와 유붕자원심방(有朋自願尋訪)의 불역낙호(不亦樂乎)가 버무려져 꽤나 과음했다. 업무를 볼 겸, 선배들과 어울릴 겸 원주를 찾은 신을 낯선 곳에서 만나니 더욱 반가웠고, 최의 회사 직원은 밝고 친절하여 넷이 어울린 자리는 싱글벙글 맛있고 즐거웠다. 호주(豪酒)는 못 될지언정 제법 호주(呼酒)를 연발한 S는 숙소에서 어느결에 꿈도 꾸지 않는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오랜만이었다.

     

   새벽에 최는 부지런을 떨며 걷기운동을 나갔고 S도 침구를 개키고 샤워했다. 벌컥벌컥 들이켠 생수는 달고 시원했다. 커피가 있으면 좋을 텐데 할 무렵 최가 돌아와 둘은 아침을 먹으러 나섰다. ‘과음한 여행자의 아침치곤 지나치게 부지런한 아침이구만.’ S는 속으로 생각했다. 시원한 동태찌개로 속을 풀었다. 최는 서울로 향했고, 가는 길에 ‘여행자’ S를 박경리 문학공원에 내려주었다. 

        

   박경리 문학공원. 아침 9시 27분. 문학공원의 첫 번째 코스라고 안내된 ‘문학의 집’은 오전 10시 개관이었다. S는 문학의 집 맞은편에 있는 박경리 선생의 옛집으로 먼저 발걸음을 옮겼다. 야트막한 경사의 짧은 진입로를 지나 제법 넓은 마당에 올라서니 마음이 차분해졌다. 하늘이 보기 드물게 파랬다. 노랗게 물든 잔디가 아늑했다. 마당 안쪽에 앉은 하얀 이층집 위로 햇볕이 하얗게 가득 차 하얀 집이 표백한 것처럼 더욱 하얗게 빛났다. 햇볕은 마치 위로하듯, 다독이듯 따뜻했다.  

   

   선생의 옛집 내부는 들어갈 수 없었다. 건물을 한 바퀴 돌며 창으로 집 내부를 구경했다. 소박한 인테리어와 가구들이 보였고 선생의 집필실은 정갈하여 왠지 쓸쓸해 보였다. S는 아쉬웠다. 조심조심 내부를 볼 수 있으면 대가의 정신이 남긴 흔적의 향기라도 맡을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마당에는 선생과 고양이 한 마리, 그리고 “토지” 책과 호미 한 자루로 구성된 동상이 세워져 있었다. 따사로운 햇볕 아래 선생의 모습은 자애로워 보였고 고양이는 생전에서처럼 선생의 옆에서 나른한 것 같았다. 책과 호미는 평생 글을 쓰고 몸을 쓴 선생의 일생을 함축한 것 같아 그 뜻이 깊게 다가왔다. 

        

   ...

   잠이 안 오는 밤이면

   돋보기 쓰고 바느질을 했다.

   ...

   결국 시간 따라 쌓이는 것은

   글 줄이나 실린 책이다.

   ...

   한 땀 한 땀 기워 나간 흔적들이

   글 줄로 남은 게 아니었을까. 

   (“바느질” 박경리. 2008)     


   선생은 6.25 난리통에 남편을 잃고 곧 아들도 잃었다. 따님과 손주, 고양이와 글쓰기 그리고 바느질과 텃밭의 작은 노동으로 평생을 살았다. 그에게 이런 삶은 축복이었을까 아픔이었을까. 하고 싶은 일에 재능을 풍기며 유유자적하는 삶의 한 꺼풀 뒤로는 어쩌면 그리로 내몬 사정이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인생은 멀리서 보면 희극이고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라거나, 사람은 누구나 비슷한 이유로 행복하지만 저마다의 이유로 불행하다는 이야기를 떠올렸다. 나는 비극에 가깝다, 고 그는 생각했다. 뒤집어 희극 또는 행복으로 읽히는 면이 있을까. 선생 동상의 등 뒤편에 서서 선생의 시선을 쫓아 보았다. 말년의 선생은 이렇게 앉아 햇볕바라기를 하며 이 풍경을 마음에 어떻게 새겼을까.     

    

   ...

   속박과 가난의 세월

   그렇게도 많은 눈물 흘렸건만

   청춘은 너무나 짧고 아름다웠다

   잔잔해진 눈으로 뒤돌아보는

   청춘은 너무나 짧고 아름다웠다

   젊은 날에는 왜 그것이 보이지 않았을까

   (“산다는 것” 박경리.『버리고 갈 것만 남아서 참 홀가분하다』2008년)  


 

   문학의 집에 들어갔다. 낮고 침착한 조명이 깔린 정갈한 공간에 선생의 연표와 유품과 사진 등이 전시되었고, “토지”가 해설되어 있었다. S는 전시물 옆의 설명을 찬찬히 보다가 선생의 육필 원고와 여러 사람이 쓴 “토지”의 필사 원고 앞에서 한참을 서 있었다. 유리장 안에 놓였으니 서권향(書券香)이야 나겠냐만 쌓인 원고지와 손 글씨에서 문자향(文字香)이 풍기는 느낌이었다. 


   전시된 육필 원고지의 높이는 그대로 세월의 더께이다. 수십 년의 사유와 사유하는 시간과 쓰는 마음가짐과 쓰는 몸짓이 원고지마다 겹이 되어 덧붙었으니 한 장 한 장 사이의 무한한 충만을 감히 어떻게 상상이라도 한다고 말할 도리가 있으려나. 그는 바위를 뚫는 낙숫물의 비유와 글쓰기와 관련한 몇 가지 격언을 새삼스레 떠올렸다.  

      

   S는 “서희”라고 이름 지어진 카페에 앉아 커피를 마시고 진열된 몇 권의 책을 훑어 읽었다. 평일 오전인데도 꽤 많은 사람이 문학공원을 돌아보고 차를 마셨다. 이번 신앙수필집 출간 작업을 도와드린 분에게서 감사 인사의 카톡이 왔기에 S는 답을 보냈다.  

   

   장로님. 안녕하세요.

   지난번 원고를 마감하여 넘긴 날이 '소설(小雪)' 절기였습니다. 곧 겨울이 오면 눈이 내려 소복이 쌓이겠지요. 이른 아침이면 하얀 눈밭에 참새며 비둘기며 고양이들 그리고 새벽기도를 다녀오는 분들의 발자국이 선명합니다. 장로님 고향 피애미의 논밭에도 그러하겠지요.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갔는지 분명하고, 어느 지점에서는 되돌아섰고, 망설였는지 종종걸음이 어지러운 발자국도 보입니다. 눈 위의 발자국은 한 존재의 실재했음과 그가 어떻게 걸었는지를 소상히 보여줍니다. 그러기에 백범 선생님께서도 눈길을 어지럽게 걷지 말라고 말씀하셨겠습니다.

   전혀 의도한 것이 아닌데 ‘소설’에 장로님의 원고를 내보낸 것을 떠올리며 장로님께서는 정말 행복한 분이시구나 생각했습니다. 70년의 인생길을 눈밭에 단정하게 찍힌 발자국처럼 살아오신 장로님께서 오랜 시간 써오신 글에 그 편린과 역사를 담아 하나님과 소중한 분들께 선물하십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주시지 않으면 이룰 수 없는 행복이라고 생각합니다. 장로님,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전혀 가늠조차 못 했던 곳에서 선생님 혹은 선배님, 형님을 만나 깨우침을 얻는 보석 같은 행운이 드물게 있습니다. 이번에 장로님의 글을 읽고 다듬는 손을 보탠 것이 제겐 그 행운 중의 으뜸이었습니다.

   소박하나 진심을 꾹꾹 담아 쓰신 많은 글에 장로님의 소신과 사랑과 겸손이 고스란히 드러납니다. 어떻게 모든 일이 기쁨으로 귀결되는지 저는 정말 신기하고 존경스러울 뿐이었습니다. 

   글은 쓰고 모으고 다듬어지고, 책은 만들어집니다. 외람되게 말씀드린다면...

   이 책을 보고 부러움에 '나도 이번에 책 한번 내볼까'하는 마음을 많은 분이 품을 것입니다. 불가능합니다. 장로님이시기에 가능했습니다. 오랜 세월 차근차근 진솔하게 발자국을 남기셨기에 그것을 모으고 다듬고 만들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존경을 보내는 것입니다. 계속 꾸준히 쓰시고 모으셔서 팔순에, 구순에, 그리고 100세 상수에 증보하여 펴내시기를 바랍니다. 눈감고 상상만 해보아도 너무나 뜻깊고 기쁜 일일 것입니다.    

 

   긴 답글을 보내고 S는 자조했다. 말은 잘한다, 네 머리나 잘 깎아봐라. 그리고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결심을 해보는 것이었다. 매일매일, 시간을 정해서, 꾸준히, 엉덩이로  써보자구. 바보들은 결심만 한다. 


    

   짧지만 좋은 여행이었다. 고맙다 친구여. 원주의 시간은 큰 강처럼 너그럽게 흘렀다. 터미널에 앉아 출발 시간을 기다리며 짚어보니 어느새 마음은 맑고 높은 스카이 블루로 채워졌다. 이만하면 기운차게 일상으로 뛰어들 만하였다. 또 보세, 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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