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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치혜 Dec 11. 2023

歌痕-6. J에게 (이선희. 1984)

오래된 웃긴 얘기

   내 모교는 공립 고등학교이다. 그것도 자그마치 5대 공립의 하나였다. 선생님들께서는 5년마다 순환 근무를 하셔야 했다. 그러다보니 전에 봉직하셨던 경기고, 경복고, 서울고 등에서 무더기로 자신의 제자들을 자신의 서울대 후배로 만들곤 하셨던 훌륭하고 실력 있는 선생님들이 많이 계셨다(김갑재 선생님 그립습니다). 

    다행히 우리 동기들도 선생님들과 부모님들의 기대를 크게 저버리지 않았고, 진학률을 비롯한 여러 부문에서 낭중지추였다. (미안하다. 인천의 모처에서 국회의원으로 활약하면서 몇 년째 이런저런 구설에 말려있는 윤ㅇㅇ군 때문에 속상하다. 내 생각으로는 의리와 가족애가 뛰어난 군이 전, 현 처가의 안위를 위하여 분골쇄신하다가 벌어진 일이라고 이해하려고 노오오력하는 중이다만 ㅡㅡ^ 착한 녀석이었는데... )

그 중에 Young Gun이랄 수 있는 정ㅇㅇ 국어선생님이 계셨다. 실력 만빵, 이빨 만개! 알다시피 국어 선생님들의 말빨은 최강 아니던가. 그 중에서도 발군! 삼십대 초반의 패기와 공감 능력으로 우리들 사이에서 인기가 좋으셨다. (남자는 ‘외모’보다 ‘이빨’이라는 격언은 이 경우에도 유효하다! 이후에 노량진의 유명 입시학원 강사로 전직하셔서 어마어마하게 명성을 떨치셨다.) 이 선생님과 얽힌 야사 한 편. 

    

    정ㅇㅇ 선생님께서 담임을 맡은 반에 ‘찌꺼기’라는 별명의 동네 후배가 있었다. 드물게 보는 노안이었고, 조금 노는 친구라고 선생들께는 찍혔는데, 착한 애였다. 좀 과격하게 놀기는 했다.

    어느 날 찌꺼기와 같은 반 녀석들 네 명이 상도동의 재개봉 극장을 갔다. 영화는 당시 필감 목록 1호였던 이장희 감독, 안성기, 이보희 주연의 "무릎과 무릎 사이"였다.

    문제는 제대로 감상하기도 전에, 즉 그 유명한 무릎 마사지 씬이 나오기도 전에 단속에 걸린 거였다. 군인이 아무리 민간인 코스프레를 해도 상병, 병장 티가 팍팍 나듯 제 아무리 노안이어도 고삐리 티는 나는 법이다. 더욱이 그 당시는 80년대 아니던가.(아. 많이 늙었다ㅠㅠ)

    그 극장의 기도(요샛말로 사설경비원? 조폭 따까리? 아니, 그냥 빌붙는 청춘!) 형님께서 얘들을 딱 잡았다.

    "이눔으 시키들. 늬 아부지 모하시노?" 막 이러면서...

    "늬네 어디 학교야? 이름 뭐야?"

    얘들은 쫄아서 줄줄 불었는데, 문제는 얘들 4명이 다 ‘정씨’였다는 거였다. 기도 형님이 그야말로 ‘야마’가 ‘이빠이’ 돌았다. 

    "이 새키들이 장난하나! 니네 이름 한자로 써봐! 이 개XX들아! "

    나이가 나이인지라 당시에는 한자로 자기 이름은 쓸 줄 알아야 어디 가서 호구를 안 잡혔다. 비록 놀이문화에 진력하느라 학업은 잠시 후순위로 배치해 둔 네 녀석이지만 이쯤은 기본! 다들 정(鄭) 모모 이렇게 이름을 썼다. 

    기도 형님 역시 학업은 후순위로 밀어놓은 처지였을 테고 나름 스트리트 파이터의 면모를 갖추느라 한자로 통성명하기 따위는 안중에 없었다. 그러나 비록 자신이 한자는 모르지만 네 녀석이 같은 모양의 글자를 쓰니 아는 척도 해야겠고, 따라서 녀석들에 대한 신뢰도도 조금씩 높아갔으리라.


     기도 형님께서 마지막으로 물었다. 

    "니네 담임 누구야?"(믿기 힘들겠지만 옛날엔 진짜 이런 거 물어봤다.)

    “정ㅇㅇ입니다." 당근, 애들은 정직하게 대답했고, "이 새키들이 장난하나! 또 정씨야! 한자로 써봐!" 기도 형님 호령하셨고, 애들은 정성껏 썼다.

    근데 그 형님이 왠일로 열불을 내며 빡쳐서는 소리 지르고, 한 녀석씩 따귀도 올려붙이고, 엎드려뻗쳐도 시키고 하며 난리도 아니었단다. 왜냐하면 찌꺼기가 정성껏 쓰기 시작한 한자가 정(丁)이었기 때문이었다. 

    "니네 담임이 <J에게>냐? 이 새키들아! 대가리 박앗!"

    기도 형님 일갈! 그해가 마침 이선희가 ‘강변가요제’에서 "J에게"로 완전히 떴을 때였다.

    끝! 뭐 이런 에피소드가 있었다는 얘기다. 


https://youtu.be/GpgRMHBXJ6s?si=_cV031-JjU8yCBg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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