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처럼은 안 살 거라는 말
면허는 있지만 장롱면허인 나는 언제나 뚜벅이신세다. 산 넘고 물 건너 발걸음을 재촉해 약속장소로 서둘러 가는데 만나기로 한 시간을 30분 앞두고 전화가 왔다.
"어디쯤 왔니? 엄마는 아빠랑 준비하고 나와서 이제 막 도착했어. 조심히 와."
역시나 시간에 관해서는 그 어떤 것보다 중요시 여기는 분들이라 오늘도 먼저 선수를 치셨다.
한 달에 한 번씩 부모님의 시간을 사겠다고 데이트 신청을 해 놓고서는 초대한 사람이 되려 늦게 도착하게 되었다. 친정 근처에 있는 음식점으로 예약을 해서 분명 눈에 익은 길임에도 그날따라 왜 이리 헤매는 건지. 같은 길을 왔다 갔다 몇 번을 했는지 모른다. 눈 뜬 장님이 따로 없었다. 마음이 조급하면 하려던 일도 되려 안된다는 말이 이날의 나를 두고 하는 말이었다.
드디어 찾았다!
'약초장어'라는 표지판을 보니 맞게 찾아온 듯하다.
음식점 문을 열고 들어서자 그윽한 재즈선율이 반긴다. 헐레벌떡 뛰어온 마음을 정돈하기에 이만한 게 없지 싶었다. 그리고 이내 '오, 생각보다 괜찮은데?'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다 다를까 음식점 내부는 여느 장어구이집과는 다르게 모두 다 칸칸이 나뉘어 방으로 되어 있었다.
한 달 전에 전화예약으로 아버지 생신자리라 말씀을 드린 덕에 가게 사장님께서 좋은 자리를 내어주신 듯했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보고 싶었던 얼굴들이 보인다. 도착하면 먹자고, 기다리겠다고 음식 주문도 안 하시고 30분 가까이를 기다리신 부모님. 얼마나 힘드셨을까. 어찌나 죄송하던지. 다음번 약속 때는 더 부지런을 내겠노라 다짐, 또 다짐을 했다.
늦어도 괜찮다고, 천천히 오라는 부모님의 마음을 조금은 알 것도 같았다.
'온갖 산해진미를 곁들인 진수성찬이 눈앞에 있음 뭐 할까. 내가 사랑하는 내 새끼가 있어야 그제야 진수성찬이지.'
하는 그 마음을 말이다.
장어구이 3인분과 솥밥, 된장찌개를 주문하고 도란도란 그간의 일상을 나누며 우리들만의 밀도 있는 시간을 채웠다. 별거 없이 사는 이야기와 고민들로 늘 같은 레퍼토리의 연속이지만 나는 이 시간이 주는 힘을 알고 있다. 힘들고 지쳐 마음을 다독이고 싶을 때 이날의 기억이 따뜻한 목화솜이불이 되어 포근히 감싸줄 거라는 걸 말이다. 그걸 알기에 오늘도 유난을 떨며 부모님을 만나러 길을 나섰다.
엄마는 늘 엄마가 된 나를 걱정한다.
한결같이 하시는 말씀 중 하나가 집에 혼자 있다고 대충 먹지 말고 꼭 반찬 다 꺼내놓고 따뜻한 밥을 먹으라는 말씀이다. 자기에게 좋은 걸 챙겨주라는 말씀 말이다.
그럴 때마다 나는 그러고 있다고 말은 하지만, 마음속으로는 '우리 엄마는 천리안이라도 가지고 있나? 집에서도 나를 보고 있는 게 분명해.'라는 생각을 늘 했었다.
밥 차릴 때면 늘어나는 설거지거리가 싫어서 내 밥은 한 곳에 담아 대충 챙길 때가 많은데, 곰곰이 생각해 보니 엄마말이 다 맞았다. 나중에 내 자식이 그럴까 무섭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 우리 아이들이 생각하길,
'아. 우리 엄마는 이렇게 해드려도 괜찮아.
나도 나중에 귀찮으면 이렇게 살 거야.'
라고 말을 한다든가,
'아. 우리 엄마는 이렇게 해드려도 괜찮은가 봐.
그런데 난 엄마처럼은 안 살 거야. 그렇게 살기 싫어.'
라든가.
그나마 후자의 말이 나았지만 둘 다 듣고 싶은 말은 아니었다.
생각하고 싶지 않은 미래를 생각하며 크게 도리질을 한 번 하고 마음을 다잡는다. 그리고 다짐한다.
'내가 나를 아끼지 않으면 남들도 나를 소홀히 대접하게 돼.
나를 아끼는 것도 습관이야. 그리고 우리 아이들이 보고 있잖아.'
나는 먼 훗날 아이들이 나를 생각했을 때 다른 건 몰라도 우리 엄마는 참 단정한 분이셨다고, 우리도 참 많이 사랑하셨지만 자신의 삶도 많이 사랑한 사람이라는 소리를 듣고 싶다.
내가 우리 엄마를 그리 생각하듯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