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송한 대접이 별거랴

애정을 듬뿍 담아 찾아낸 것들

by min


작은 아이가 세돌이 다 되어가니 이제는 제법 말귀도 잘 알아듣고 자기 의사표현도 곧잘 한다. 늘 제자리에 멈춰있는 것만 같던 시간들도 아이의 자람을 보며 나에게 우호적으로 흐르고 있음을 새삼 깨닫는다. 계절의 변화가 느껴지니 그제야 사람 사는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한숨 돌리고 주변을 살펴볼 여유가 생기니 오로지 생존을 위해 머물렀던 주방과 그간 무심했던 살림살이들에 눈길이 간다.




지난겨울 성탄절을 앞두고 시부모님께서 청주에서 올라오셨다. 으레 연말이면 어린 손주들이 눈에 밟혀 먼 길을 오시곤 했는데, 이번에는 조금 특별했다. 곧 있으면 생일인 며느리의 생일상을 준비해 오신 거였다. 다른 건 필요 없으니 그릇만 준비해 다 같이 한 끼 식사를 하자는 말씀에 그저 황송할 따름이었다.

손맛 좋기로 유명한 어머님의 음식들을 마주하니, 분에 넘치게 감사하면서도 내어놓은 식기들이 어찌나 초라해 보이던지. 조금 더 담음새에 신경 쓸걸 하는 마음이 시부모님께서 가신 뒤로도 내내 마음에 밟혔다. 그리고 그렇게 그릇앓이가 시작되었다.


평소에는 관심도 없던 것들에 한 번 마음을 주니 어디를 가도 그것만 보였다. 그릇과 주방용품들을 어찌나 찾아보았던지 나중에는 SNS며 포털사이트에 따라오는 광고들이 모두 관련된 것들뿐이었다. 필요와 취향을 고려한 맞춤형 광고라는 게 이런 거구나 느끼며 옳다구나 그 기회를 빌어 보고 또 보고 황홀한 시간을 보냈다. 보는 즐거움이 이런 거구나 싶었다. 한동안은 무엇에 홀린 사람인 양 지인들의 생일이나 축하할 자리가 생기면 그걸 핑계 삼아 그릇들을 그렇게 사나르기도 했다.




이제 와서 생각해 보면 결혼할 때 온갖 신혼살림들을 들이지 않고 남편이 혼자살 때 사용하던 것들을 그대로 이어 쓴 건 잘한 일이지 싶다. 부모님 그늘아래서 따뜻한 밥만 먹고 자랐으니 미각만 있고 살림에 대한 취향이라는 게 있을 리 만무했으니 말이다.


아이 둘을 낳고 내 살림을 하며 살아보니 비로소 내가 어떤 걸 좋아하고 어떤 물건에 손이 자주 가는지 조금씩 보이는 듯하다. 그리고 그때 그때마다 필요에 의해 사모은 것들은 애정을 듬뿍 담아 찾아낸 것들이어서 볼 때마다 흡족하다.


매일같이 마주하는 공간을 좋아하는 것들로 채운다는 건 제법 기분 좋은 일이다. 이제는 정갈하고 소담스럽게 담아내는 밥상이, 바쁜 일상에서 정성을 담아 나와 내 가족을 돌보는 가장 원초적인 일이 되었다. 그리고 작은 즐거움이 되었다. 때로는 설거지같이 하기 싫고 뒤로 미루고 싶은 일도 좋아하는 그릇들이 있어 고단함을 조금이나마 덜어준다.


다가오는 명절에는 서툰 솜씨지만 따뜻한 밥 한 끼를 고운 그릇에 담에 양가 부모님께 꼭 대접해 드려야지.

올해는 유난스러운 새해 다짐보다 이룰 수 있는 것들에 마음을 두며 살아내고 싶다.


25년 구정 설을 보내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