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을 빚는 일
요즘은 그동안의 일상을 물어보지 않아도 휴대폰에 있는 메신저 프로필만 봐도 그 사람의 기분이나 상태를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다. 한동안 친한 지인의 프로필이 '일상에서 행복 찾기'였다. 그 글을 볼 때면 뭐 이런 대수롭지 않은 글을 프로필로 했을까 생각하곤 했었다. 그 문구는 꽤나 오랜 시간 자리하고 있었는데 족히 몇 년은 된 것 같았다.
기억 속의 냉장고를 열어 가장 행복했던 순간들을 떠올릴 때면 거기에는 어떤 특별한 날이나 행사가 있기보다는 별 볼 일 없는, 보통의 날이 많았다. 여러 개의 추억들은 나의 상황과 처지에 따라 생각나는 게 달라지고는 하는데 결혼하고 두 아이를 낳은 뒤로는 늘 하나의 장면이 마치 사진을 찍어 놓은 것처럼 또렷이 있었다.
초등학교를 국민학교라 부르던 시절, 학교를 마치고 집에 돌아오면 엄마는 일하느라 바쁘셔서 부재중일 때가 많았다. 그런데 그날은 웬일인지 현관문을 열고 들어오는 순간부터 뭔가 달랐다. 달큼하면서도 입맛을 당기는 구수한 냄새가 넘실넘실 집안 가득 춤을 추고 있는 게 아닌가. 직감적으로 부엌에 엄마가 있다는 걸 알고 한달음에 달려갔던 기억이 난다. 엄마는 꼬치에 각양각색의 어묵들을 하나하나 꽂으며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엄마, 이 시간에 왜 부엌에 있어? 오늘 무슨 날이야?"
꼬치꼬치 묻는 나에게 엄마는 그냥 이거 해주고 싶어서 만들고 있었다는 심심한 답변을 했다. 아무 날도 아니었던 그날은 평생 나에게 특별한 날이 되어 엄마를 생각할 때면 단골메뉴처럼 따라온다. 각종 야채를 넣어 말갛게 우려낸 국물이 모락모락 피어오를 때 엄마와 어묵꼬치를 퐁당퐁당 집어넣었던 일. 동생과 식탁에 마주 앉아 앗 뜨거를 외치며 한 알 한 알 어묵을 빼어 먹으며 까르르 웃던 순간들. 실컷 놀이를 하고 와서 엄마가 해주는 간식을 먹는 시간은 별거 없는 메뉴일지언정 그야말로 꿀맛이었다. 그 시절을 생각할 때면 나도 모르게 배시시 웃음이 나는 이유이기도 하다.
큰 아이를 낳은 지 얼마 안 된 것 같은데 벌써 다섯 해가 지났다. 한편으로는 신기한 게 생명줄을 단 식물이든 동물이든 세상살이 십 년이면 어느 정도 자기 앞가림을 하며 보란 듯이 살아가는데, 사람 자식은 그게 아니다. 열 살이라고 해봐야 고작 초등학교 3학년. 이제 막 세상에 눈을 뜨며 적응해 가는 햇병아리에 가깝다. 또 태어나서 삼 년은 어떠한가. 부모의 모든 시간은 다 내 거라고, 거리끼거나 어려워하는 마음 하나 없이 모든 걸 내던지게 만드는 존재다. 한 없이 예쁘다가도 때로는 모든 걸 책임져야 하는 순간들이 버거워 "엄마, 얘는 도대체 언제 크는 거야?" 말한 게 어디 한두 번이었던가. 그럴 때면 친정엄마는 가장 손이 많이 가는 시절은 지났다고, 품 안에 자식인 시절은 금방 간다고 말씀하셨다.
정말 그렇다. 아이가 말을 하고 걷기 시작하니 이제는 스스로 하려는 게 점점 더 많아졌다. 서툰 숟가락질일지라도 제 입에 넣어 야물야물 먹는 모습을 보노라면, 한 몸과 같던 기저귀를 떼고 이제는 창피하니 화장실 문을 닫고 볼일을 보겠다는 모습을 보노라면 고새 많이도 컸네 싶다가도 내 손이 수고로울 때가 그리워 조금만 천천히 커줘라는 말이 입 안에서 맴돈다.
"아빠 내일은 일찍 집에 와야 돼."
"엄마 나는 엄마랑 결혼할 거야."
아이의 말이 트이고 대화가 되니 달콤 가득한 말들도 선물로 자주 받는다. 오로지 나만 맛볼 수 있는 진귀한 것들을 받는 게 이런 기분이겠지. 진짜 육아의 즐거움을 알게 된 기분이다. '몸은 고되어도 지금 이 순간들에 흠뻑 빠져들어야지.' 아침에 눈을 뜨면 습관처럼 하는 다짐 중 하나다. 조금만 지나면 내가 안고 싶어도 그럴 수 없는 날이 올 테니까.
어린 날 엄마품에 안겨 맛보았던 따뜻함과 평화로움이 내 아이들에게도 고스란히 전달되었으면. 남들 보기에 보잘것없는 하루일지라도 반짝이는 네가 있어 오늘의 나를 빛나게 한다. 어쩌면 별일 없이 산다는 건 일상의 가장 큰 행복이지 않을까. 꼭 무언가를 이루고 더 많은 걸 가져야지만 행복이 아니니까. 오히려 모든 걸 품는 바다는 깊고 조용하다. 바라는 게 있다면 지금 이시절이 내 아이들에게 다시 신발끈을 동여맬 추억이 되어 앞으로 나아가는 힘이 되길. 그렇게 오늘도 일상의 행복을 찾아 빚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