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을 바꾸는 결정 앞에서

어버이날의 단상

by min

생전 사주나 궁합이라는 걸 본 적이 없는 사람인데 무슨 일인지 도장을 파러 간 집에서 사주를 보게 되었다. 앞날의 운수나 길흉을 믿는 사람이 아닌지라 크게 마음에 두지 않고 들었는데 한 가지는 참으로 솔깃했다. 자식들이 잘되어 복을 누리며 살 거라는데 그 말이 어찌나 듣기 좋던지. 마음 같아서는 열이고, 스물이고 낳을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건 아마도 결혼을 하고 한동안 아이가 없어 고민이던 나에게 실낱같은 희망이요, 용기를 주는 말이었기 때문이다.


그 말의 달콤함 덕분일까 늦된 결혼에 난임이었던 나는 기대했던 아이 소식이 없을 때마다


'내가 일평생 살면서 자식하나 없을라고?

어림도 없는, 택도 없는 소리.

두고 봐라.

내가 낳을 자식이 어떤 자식일지'


수도 없이 되뇌며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던 것 같다.






그렇게 만난 아이가 이제 다섯 살.

큰 아이와의 추억은 모든 것이 처음이고 서툰 일들 투성이라 대부분이 기억에 남지만 그중에서도 어린이집을 다니며 맞이했던 첫 번째 어버이날은 아직도 생생하다.


여느 날과 다름없는 보통의 날.

큰 아이 손을 잡고, 다른 한 손으로는 이제 갓 돌 된 작은 아이를 태운 유모차를 끌며 등원하는 길.


그날은 유독 어린이집 문 앞에 눈길이 갔다. 현관 밖에 설치된 테이블 위에는 작은 쇼핑백들이 옹기종기 모여 앉아 주인을 기다리는 듯했고, 한쪽 벽에는 엄마아빠 사랑해요라는 포스터가 크게 걸려 있었다.


'아, 오늘이 어버이날이구나!'


부모는 되었지만 그간 아이를 가정보육해서 큰 의미 없이 지나간 날이었는데, 아이의 사회생활이 나에게 또 다른 의미 있는 날을 만들어 주었다.


큰 아이를 선생님께 인도하고 돌아오는 길, 내 손에는 작은 쇼핑백 하나가 들려있었다. 그동안 애쓰셨다는 선생님의 따뜻한 말 한마디와 같이 주신 선물꾸러미였다. 그날의 햇살은 어찌나 따스하던지, 집으로 돌아가는 발걸음엔 봄기운이 넘실대는 듯했다.


두 달 남짓 다니기 시작한 아이의 원생활은 나에게 작은 숨구멍을 만들어 주었다. 그리고 그 틈을 빌어 누구의 아내, 엄마가 아닌 내가 하고 싶은 소소한 하루를 보낼 수 있는, 나를 찾는 기쁨도 찾아주었다. 다른 한 편으로는 이런 개구쟁이를 한 명도 아닌 일곱 명을 매일같이 지도하시는 선생님은 얼마나 정신이 없으실까, 각양각색의 통통 튀는 색깔을 가진 아이들을 가르치고 돌보며 조화롭게 만들어 가는 일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닐 것 같았다. 내가 이끌기 어려웠던 부분들이 바른생활습관과 긍정적인 모습들로 발현될 때마다 감사하고 존경하는 마음이 일렁였다.


어버이날을 선물해 준 나의 첫사랑.






아이를 키우며 수많은 바람들과 기도를 불어넣지만 그중에 딱 하나를 고르라면 그 어떤 상황에서도 자신을 사랑할 수 있는 사람으로 자랐으면 하는 마음이다. 다른 건 몰라도 나 를 지킬 수 있는 강단과 용기가 있는 사람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얼마 전 인기리에 종영한 [폭싹 속았수다]에서 주인공 금명이는 7년을 연애한 영섭이와 결혼을 앞두고 이별을 선택했다. 거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지만 가장 큰 이유는 나에 대한 자존감이 가장 컸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남자친구와의 이별 앞에서 금명이가 했던 말은 이런 결혼은 할 수 없다는 말. 우리 엄마 아빠 운다는 말이었다.


인생을 바꾸는 큰 결정 앞에서 금명이는 자신을 선택했다. 남들 보기에 그럴싸해 보이는 삶이 아니라, 내가 행복할 수 있는 삶에 집중했다. 그리고 그 바탕에는 자신은 말도 못하게 귀하게 큰 사람이라는 자존감이 있었으리라.



아이야.

엄마가 살아보니 인생은 윤리와 도덕만으로는 선택할 수 없는 일들이 정말 많은 것 같더라. 순간의 선택이 인생을 바꾸게 하는 결정들도 있고 그 기로에서 어떤 게 답일지 모를 때도 있지. 그럴 때는 '맞다. 나는 이런 사랑을 받고 자란 사람이지.' 생각하며 내가 나 에게 미안하지 않을 최선의 선택을 해주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