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1. 다름을 이해할 때, 사랑은 더 깊어진다
3. 사귄 지 224일 되는 날의 기록
남자친구와 사귄 지 224일째 되는 날,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어떻게 연애를 시작하게 된 걸까?’
물론 그간의 흐름은 나도 대충 기억한다.
하지만 그때의 감정, 설렘, 긴장 같은 것들은 지금의 우리가 되면서
조금씩 추억 속으로 스며든 것 같았다.
그래서 그와 처음 나눴던 카카오톡 메시지를 하나하나 다시 읽어보기 시작했다.
그때의 내가 느꼈던 마음들이 되살아났다.
새로운 연애에 대한 조심스러운 기대, 그의 다정한 말투,
나를 향한 진심이 고스란히 담긴 말들.
특히 기억에 남는 건,
‘내 남자친구가 이렇게 여우 같은 구석이 있었나?’ 싶은 순간들이었다.
지금보다 훨씬 더 적극적이고, 플러팅 장인처럼 나를 유혹하던 그의 메시지를
이제 와 다시 보니 대놓고 하는 표현보다 오히려 더 대담하고 솔직했다.
한 번은 일요일 밤,
영화를 핑계 삼아 늦은 시각 나를 보러 왔다.
영화가 끝난 뒤엔 쭈뼛거리며 떨리는 손으로 눈도 제대로 마주치지 못하면서
어색하게 내 손을 잡았다.
(정확히는 내가 먼저 잡았지만, 그 손을 놓지 않았다는 게 더 맞겠다.)
그 모습이 어찌나 귀엽고 사랑스러웠는지.
아마 그때 나는 마음이 크게 움직였던 것 같다.
그날 밤,
나를 집 앞까지 데려다주고 애써 아무렇지 않은 척 돌아서는
그의 뒷모습을 보며 나는 생각했다.
‘이 사람, 나를 정말 좋아하는구나.’
⸻
최근 그에게 “내가 왜 좋아?”라고 물었을 때
그는 이렇게 말했다.
“예쁘고, 성격이 좋아서.”
어쩌면 너무 평범한 대답이라 진심이 느껴지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안다.
그는 빈말을 하지 않는 사람이라는 걸.
화려한 표현을 잘 못하는 그가 내게 해줄 수 있는 말은
날 기분 좋게 해주고 싶은 마음으로 꺼낸 단순한 노력이었다.
그리고 그건, 이 관계를 지켜가고 싶은 진심이었다.
그는 내가 어떤 모습이든 나를 위하려 하고,
이 관계를 계속 이어가고 싶어 하는 사람이라는 걸 나는 믿는다.
그래서 나는 그가 더 좋아지고,
그와 연애를 시작한 내가 참 잘한 선택을 했다는 생각이 든다.
⸻
서른이 넘은 지금,
나는 그를 통해 또 다른 사랑의 형태를 배우고 있다.
예전 같으면 외롭고 불안했을 감정들이
이제는 조금 더 단단하게 느껴진다.
사랑은 어쩌면 가장 사적인 성장의 과정일지도 모른다.
그를 통해 나는 다시 혼자가 되어도 버틸 수 있는 힘을 배우고 있다.
왜냐하면 내 곁에 그가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나는 나만의 — 그리고 그 안에 함께할 남자친구와의 —
미래를 상상해볼 수 있기 때문이다.
⸻
어제 새벽,
나는 늦게까지 공부를 하다가 잠든 남자친구에게 이렇게 메시지를 남겼다.
“자기야, 나 지금까지 공부하다가 이제야 누웠어요.
어려운 것도 많지만 요즘은 그래도 해보려는 마음이 드는 게 신기하고 다행이에요.
자기 덕분에 오늘도 잘 버틴 것 같아요. 늘 고마워요
나는 자기랑 오래오래 잘 지내고 싶어요.
내일은 더 좋은 컨디션으로 보냈으면 좋겠어요. 사랑해요!”
그리고 다음 날 아침, 그에게서 이런 답장이 도착했다.
“자기야 나 이제 출근 잘했어요!
요즘 자기 열심히 하는 모습 보면서
저도 운동이든 뭐든 다시 열심히 하려구요.
나도 자기 덕분에 하루하루 버티는 것 같아요.
푹 자고 일어나면 연락줘요”
이 메시지를 보고 나는 하루를 살아갈 힘을 얻었다.
그도 나처럼, 나로 인해 버티고 있다고 말해주는 그 한 문장에
내가 하고 있는 시도들이 그에게도 긍정적인 영향을 준다는 확신이 들었다.
⸻
이 연애는 단지 그를 위한 사랑이 아니다.
결국 나를 위한 사랑이기도 하다.
우리는 거칠지 않지만 견고하게 흐르는 관계 속에 있다.
태풍이 불거나 물결이 거세질 수도 있지만
우리가 함께 쌓아온 진심이 있다면, 결국 그 시기도 지나갈 거라 믿는다.
변화무쌍하거나 다채롭지 않아도 괜찮다.
변하지 않는 그 사람 덕분에
나는 오늘도 안심하고 하루를 시작할 수 있다.
불안한 마음이 들지 않는다면 거짓일 것이다.
하지만 지금처럼 안정감과 신뢰가 더 쌓여간다면
우리는 서로의 둘도 없는 단짝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어쩌면, 진심은 익숙한 일상 속에 가장 조용히 숨어 있다.
그리고 우리의 그날들을 되짚으며,
앞으로도 단단하게 사랑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