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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와 나

간절한 하루

by 문지구


학창 시절이 선명하게 기억나지는 않는다. 그래도 그날만큼은 선명하다. 어느 오전의 쉬는 시간, 꼭 그 시간대에는 괜히 TV를 틀어보는 애들이 있었다. 그날도 그런 날이었다. 틀자마자 뉴스 속보가 나오고 있었지만 ‘전원구조’라는 자막 덕분에 우리는 금방 잊었다.

아침이면 반장이 착실하게 핸드폰을 걷기 위해 돌아다녔고, 입으로는 툴툴거리면서도 손은 고분고분 핸드폰을 내놓던 우리 반은 오후 다섯 시가 되어서야 저마다 뉴스를 들여다볼 수 있었다. 그날은 왠지 핸드폰 속 사람들이 유난히 시끄럽고 번잡하게 느껴졌다.


그 이후 나는 매일 같이 생존자 명단을 찾아보고, 이리저리 떠들어대는 사람들에게 분노하기도 하고, 장례식에 간다는 친구의 연락을 받고 야자 시간 내내 깜깜한 화장실에 앉아 있기도 했다. 그리고 그렇게 지내는 동안 남일에 이렇게까지 힘들어하는 내가 의아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그건 사실 내 일이기도 하다는 걸.


물론 나는 그 이후에 학교를 졸업하고, 좋아하는 일을 해보기도 하고, 온갖 아름다운 것들을 찾아다니며 살아보기도 했다. 그냥저냥 잘 살았다는 뜻이다. 그날의 기억이 내게 남긴 것이 무엇인지 사색해 볼 겨를 없이 주어진 삶을 살았다. 가끔 생각이 나면 다큐멘터리나 출판물을 찾아보곤 했지만.


그게 내 일이기도 하다,는 사실을 알게 된 건 얼마 되지 않았다. 이태원에서 내 나이 또래 어린 영혼이 죽는 걸 보고 있으니 자연스레 알게 되었다. 아무도 어리고 맑은 영혼을 책임지지 않을 거라는 내 일생의 추측에 확신이라는 날개를 달아준 날이 그날이었다는 것을, 조금은 까마득했던 죽음이 사실은 정말 가까웠다는 걸 알게 된 날이라는 것을 말이다. 어쩌면 트라우마였을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재작년, 모두가 떠드는 4월 16일 이후가 아닌 4월 15일을 들여다보는 영화를 봤다. 15일은 아주 간절하고 아름다운 꿈같은 하루였나.


영화 속 4월 15일에는 세미와 하은이가 있다.


세미는 하은이 말고는 머릿속에 아무것도 두지 않는다. 18살 세미는 하은이의 모든 언행을 쫓아다니며 질투하고 토라지고 또 부끄러워한다. 세미는 그런 애다. 하은이가 누구랑 문자를 했는지, 하은이의 훔바바는 누구인지가 너무 궁금한 애다. 모두가 고대하는 수학여행도 꼭 하은이와 함께하고 싶은, 사랑에 빠진 아이.

그런 세미가 꼭 고백을 하겠다고 마음먹은 이유는 ‘죽음‘때문이다. 꿈속에서 하은이가 죽는 꿈을 꾸고 흘린 눈물이 생경해서 고백을 하기로 마음먹는, 죽음이 까마득한 인물이자 꿈을 통해 죽음을 이해한 인물인 셈이다.


그럼 이제 하은이에 대해 써보겠다. 하은이는 얼마 전 10년 동안 키우던 강아지가 죽었고, 예기치 못한 사고까지 났다. 그래도 세미 앞에선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는다. 죽음과 가까운 일들을 연달아 겪었지만 그에 대한 이해가 아직은 없는 아이. 어쩌면 세미만큼 죽음이 까마득한 인물이고, 결국은 하은이가 죽음에 대해 이해하며 결말을 맞을 거라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죽음에 대한 직접 경험을 했지만 아직 실감이 없는 아이와 간접 경험으로 실감해 버린 아이. 그러니까 이건 그날의 아이들을 지켜본 우리를 투영한 이야기다.



세미는 그런 하은에게 진식과의 추억을 선물한다. 하은이는 ‘집에 가자 ‘며 엉엉 우는 진식(똘똘이) 엄마와의 조우를 통해 그제야 맘껏 운다. -영화 속에선 집으로 돌아가야 하는 무언가에 대한 은유가 반복적으로 나온다.- 그렇게 한참을 울다가 걷다가 둘은 고백을 주고받는다. 죽음을 이해하고 해소하며 마침내 주고받을 수 있었던 고백이다. 둘은 애틋하게도 몇 번이나 인사를 나눈다. 몇 번을 반복해도 아쉽지 않을 리 없는 인사들을 뒤로하고, 세미는 근조화환 뒤로 사라진다.


집에 돌아간 세미는 부모와 함께 국수를 먹는다. 영원히 이어질 것 같은 잔소리와 투닥거림을 반찬 삼아 흐르는 물속 흰 국수를 열심히 건져먹는다. - 물속에서 무언가를 건지는 장면 또한 영화 곳곳에 심어져 있다.- 세미의 손등에 난 상처에 대해서도 일언반구 없이 국수 얘기에 태몽 얘기에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나누는 저녁 시간이다.


그리고 세미의 엄마는 욕실에 들어가 샤워하는 세미의 손에 랩을 둘둘 감아주며 말한다. ‘물 닿으면 흉 져.‘


세미도 하은이도, 그들을 제외한 모든 아이들도 마찬가지였겠지. 그럴 만한 사람은 아무도 없다. ‘물 닿으면 흉 질’테니까.


세미의 꿈과 더불어, 하은이가 겪었을지 모를 현실이 부딪히며 영화는 마지막 시퀀스를 향해 달린다.

하은이는 세미로부터 알게 된 죽음이란 개념으로 하여금 세상이 떠나가라 울기도 하고, 길고양이에게 ‘진‘자 돌림의 이름을 지어주고, 위태로운 유리컵을 보며 세미를 떠올리기도 할 것이다. 세미는 꿈속에서 하은이가 되어 그날들을 경험했다. 죽음은 돌고 돈다. 세미는 꿈에서 깨는 순간 알았을 것이다. 내가 겪은 죽음은 이런데, 그럼 난 살아 있을 때 너에게 고백해야겠어, 하고 말이다.

플래시백에서 하은이가 꼬깃꼬깃 접은 편지를 꺼내 납골당에 놓아두는 것처럼, 언젠간 전해져야 할 말들이라는 것을 죽음을 겪으며 알아냈을 테지.


세미가 조이에게 수십 번을 외쳤던 ‘사랑해 ‘라는 말은 아마 꿈속에서 하은이가 되어 죽은 세미에게 외쳤던 말일 것이다. 세미는 꿈속에서 눈을 뜨고 하은이와 함께 그 안을 배회하고 있을까?



하은이는 문득문득 세미를 떠올리느라 당분간은 슬플 지도 모르겠다. 그러다 어느 순간 세미가 남긴 일상을 힘차게 살아갈 수도 있고. 뭐가 됐든, 하은이는 세미를 기억하다가 조이를 만났으면 좋겠다. 어쩌면 조이에게서 사랑한다는 말을 듣게 될 수도 있으니.

모두가 남겨지기 전날은 이렇게 간절했다.


이 영화는 전체가 세미의 바람 같다. 16일이 아니라 15일의 우리를 기억해 줄래?

하은이는 세미의 바람을 들었겠지. 그날로부터 10년이 지난 지금 나는 세미의 바람 같은 그 하루를 가만히 생각해 본다. 간절한 하루들은 어떻게든 기록될 필요가 있다. 이 영화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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