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의 질이 바뀌면 공론장의 품격도 달라진다
1️⃣ 존재를 드러내는 질문’이란 무엇인가
2️⃣ 다른 질문들과 무엇이 다른가
3️⃣ 왜 공론장에 이런 질문이 도움이 될까
4️⃣ 어느 시에서 있었던 실제 장면
5️⃣ 이런 질문이 만들어내는 긍정적인 변화들
6️⃣ 존재가 보이면, 대화는 한 걸음 더 나아갑니다
공론장에서 우리는 종종 상대를
‘어떤 역할을 맡고 있는 사람’,
‘어떤 결정을 내려야 하는 책임자’로 먼저 인식합니다.
존재를 드러내는 질문은 이런 역할 중심의 인식을 잠시 내려놓고,
그 사람이 어떤 가치와 의미를 품고 행동해왔는지를 말할 수 있도록 돕는 질문입니다.
일반적인 질문이 ‘무엇을 했는가’, ‘어떻게 할 것인가’를 묻는다면,
존재를 드러내는 질문은 다음과 같은 방향을 가집니다.
“이 일을 하며 가장 의미 있었던 순간은 언제였나요?”
“그 선택을 하게 만든 개인적인 이유나 가치는 무엇이었나요?”
“어떤 장면에서 이 일의 필요성을 가장 강하게 느끼셨나요?”
이 질문들은 평가나 검증을 목적으로 하지 않습니다.
대신 그 사람의 내면에 축적된 경험과 의미가 자연스럽게 드러나도록 공간을 여는 역할을 합니다.
그래서 존재를 드러내는 질문은 행동의 결과보다,
그 행동을 가능하게 만든 이유와 맥락에 주목합니다.
공론장에서 자주 사용되는 질문들은 보통 다음과 같은 유형입니다.
① 정보 질문 – “무슨 정책인가요?”
② 절차 질문 – “어떻게 진행되나요?”
③ 의견 질문 – “이 사안을 어떻게 보시나요?”
④ 요구 질문 – “무엇을 개선해야 할까요?”
이 질문들은 논의를 구조화하고 정보를 명확히 하는 데 매우 중요합니다.
다만, 이런 질문들만으로는 사람의 경험과 가치까지 충분히 드러내기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존재를 드러내는 질문은 논의의 ‘내용’을 바꾸기보다는,
대화가 이루어지는 ‘관계의 결’을 조금 다르게 만듭니다.
예를 들면, 상대를 기능이 아니라 사람으로 바라보게 하고
설명보다 동기와 의미가 먼저 나오게 하며
듣는 이에게는 신뢰와 연결감을, 말하는 이에게는 자기 성찰과 정리의 기회를 제공합니다.
그 결과 대화는 단순한 정보 교환을 넘어
사람과 사람이 실제로 만나는 경험에 가까워집니다.
정책토론이나 시민 공론장은 구조적으로 다음과 같은 역할 구도를 가집니다.
인구정책 권한자 → 설명하고 책임져야 하는 사람
시민 → 질문하고 요구하는 사람
전문가 → 해석하고 정리하는 사람
이 구조 자체가 잘못된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역할 중심의 대화가 계속되면,
의도와 상관없이 대화가 다소 방어적이고 기능적으로 흐를 가능성도 커집니다.
이때 존재를 드러내는 질문이 더해지면, 대화의 결이 조금 달라질 수 있습니다.
입장(position)보다 의미(meaning)가 먼저 보이고
주장보다 왜 그렇게 생각하게 되었는지가 이해되며
대화의 기본 정서가 경계에서 조금 더 신뢰 쪽으로 이동합니다.
정책 논의의 깊이는 방법이나 형식뿐 아니라
관계적 안정감과 감정적 신뢰의 수준에 크게 영향을 받습니다.
존재를 드러내는 질문은 이 기반을 조용히 다져주는 역할을 합니다.
한 시에서 인구정책을 주제로 시민토론회가 열렸을 때의 일입니다.
퍼실리테이터는 인구정책 권한자에게 이런 질문을 던졌습니다.
“이 인구정책을 추진하며 가장 보람을 느꼈던 순간은 언제였나요?”
이 질문은 정책 성과나 계획을 묻기보다,
이 일을 계속해오게 만든 개인적인 의미를 돌아보게 하는 질문이었습니다.
권한자는 잠시 생각한 뒤, 다음과 같은 이야기들을 꺼냈습니다.
지역의 미래가 걱정돼 쉽게 잠들지 못했던 시간
청년과 부모 세대의 삶을 조금이라도 바꾸고 싶었던 마음
책임의 무게 속에서도 정책을 이어가게 만든 동기
다음 세대에게 더 나은 조건을 남기고 싶다는 바람
이 말들은 설명이나 해명이 아니라,
한 사람이 품고 있던 진심과 가치에 가까운 이야기였습니다.
그 이후 공론장의 분위기는 서서히 달라졌습니다.
시민들의 표정에서 긴장이 누그러졌고 질문의 톤이 공격에서 탐색으로 바뀌었으며
서로 다른 입장도 조금 더 차분하게 다뤄지기 시작했습니다.
이 변화는 극적인 연출 때문이 아니라, 관계의 결이 바뀌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나타난 결과였습니다.
① 신뢰가 형성되는 속도가 빨라집니다
정책의 완성도보다,
그 정책을 다루는 사람의 진심이 먼저 전달되기 때문입니다.
② 갈등이 곧바로 대립으로 번지지 않습니다
상대의 가치와 맥락을 알게 되면,
비판도 이해를 전제로 이루어집니다.
③ 대화가 공동 탐색의 방향으로 이어집니다
문제를 ‘누가 맞는가’가 아니라
‘어떻게 풀 수 있을까’로 바라보게 됩니다.
④ 정책 논의가 인간적인 언어를 회복합니다
행정적 표현 사이로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들이 등장합니다.
이런 변화들은 모두 존재를 드러내는 질문이 만들어낸 관계적 여유에서 비롯됩니다.
정책은 결국 사람을 위한 것이고,
사람을 위한 대화는 사람의 존재가 보일 때 조금 더 잘 작동합니다.
존재를 드러내는 질문은 공론장을 단번에 바꾸는 마법은 아닙니다.
하지만 관계의 문을 조심스럽게 열어주는 질문입니다.
그 문이 열리면
권한자는 사람으로 보이고
시민은 조금 더 열린 마음으로 듣게 되며
그 위에서 정책 논의의 질도 자연스럽게 달라집니다.
설득보다 먼저 필요한 것은 신뢰이고,
그 신뢰는 종종 한 문장의 질문에서 시작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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