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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AMDA Nov 26. 2023

스팀펑크3부작(fin):근대와 이성의 종말(2)

'선과 악'이 없는 전쟁

두번째 에필로그를 본격적으로 시작하기 전 아마 몇몇이 품고 있는 의문에 대해서 답하며 시작하겠다.

1차 세계대전은 이름에서 알 수 있듯 명백한 '세계대전'이다. 그런데 정작 그것을 다룬 매체. 즉 영화나 게임. 소설은 그 이후에 일어난 2차 세계대전보다 압도적으로 적은 수량을 보여준다. 어째서일까?


공개석상에서 연설하는 아돌프 히틀러와 중일 전쟁 당시 상하이 전투의 일제 육군 육전대

그 이유는 간단하다. 대중이 압도적으로 주목하는 전쟁. 즉 2차세계대전은 선악의 구도가 너무나도 명확했기 때문이다. 아돌프 히틀러와 그의 수족인 나치당은 인류 역사상 그 누구도 감행하지 못했고 해서도 안되었던 인종청소를 자행한 집단이였으며 전체주의와 군국주의, 그리고 선민 사상에 찌든 일본 제국 역시 동아시아에 온갖 패악을 부렸다.


그리고 이들 추축국에 대항하는 연합국은 최소한의 정의와 명목을 지향하는 집단이였으며, 실제로도 그렇게 행동하였다. 이러한 '악에 대한 대항자'라는 인식이야말로 연합군의 가장 강한 원동력이었으며 또한 부수적 효과지만, 병사들의 죄책감 약화에도 도움을 주었다.


제국주의와 자본주의, 그리고 인종주의야말로 1차 세계대전을 이끈 삼두마차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1차 세계대전은 그런 것이 아니였다. 현재까지 세세한 논쟁과 차이는 존재하지만 1차세계대전의 근본적 원인은 팽창할 대로 팽창한 유럽 열강들의 자본주의, 그리고 그것을 해소하기 위해 세계의 땅 한뼘까지 조각내어 탐하던 제국주의, 그리고 그 위에 우월감과 선민의식을 가미해주는 인종주의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게 정설이다. 인간의 선천적인 기질인 건지 모르겠지만, 우리들은 살면서 겪는 사건이나 관조하는 현상에 대해 선과 악의 구도가 모호한 것보다 명확히 나뉜 것을 선호한다. 왜냐하면 자신이 어떤 진영에 있든 간에 그러한 진영이 '존재'한다는 사실로 말미암아 자신들에 행동에 대한 정당성을 취득하기 때문이다.


1차 세계대전은 그러한 인간의 기질과 완벽히 어긋나있었고, 그 결과 최근의 재조명 이전까지 문화 매체들 속에서 외면받아온, 참호 속에서 퀴퀴한 냄새와 함께 방치되었던 전쟁이라 할 수 있다.


'스펙타클' 따위 없는 전쟁

보통 사람들에게 '전쟁'을 생각하면 떠오르는 막연한 표상, 혹은 관념은 대다수가 절대로 정적이지 않은, 어떠한 스펙타클을 보유하고 있을 것이다.

총탄과 포탄이 빗발치는 전장, 미친듯이 함성을 내지르며 진격하는 보병들과 그에 맞춰 절묘하게 지상을 향해 내리꽃히며 기총을 퍼붓는 전투기들과 화염을 내뿜는 육중한 전차들까지. 평범한 이들은 그런 표상에서 혼돈을 향한 두려움을 느낄 것이고, 몇몇 멍청한 작자들은 동경하고 매료될 것이다. 그러나 단언하건데 1차세계대전은그러한 '스펙타클'과는 억만광년 거리가 있는 전쟁이었다.

그리고 더더욱 특수한 것은 그러한 비스펙타클이 전쟁의 전개뿐 아니라 원인에서도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을 파악하기 위해선 우린 에우로파의 동방의 왕국들. 즉 발칸 반도라 불리는 곳과 러시아에 집중해야 한다.


발칸 반도의 공식적 분류 지역이다.

언어와 그것에서 파생되는 단어는 해당 객체의 정체성을 결정한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한 면에서 발칸 반도는 매우 시의적절한 예시이니라. 많은 사람들이 모르는 사실인지만, 이 반도의 이름 즉 발칸은 유럽에서 발원한 단어가 아니다. 이 단어는 터키어, 풀어서 말하면 '거칠고 숲이 많은 산악지대'를 의미한다.


오스만 제국의 술탄이자 콘스탄티노플의 정복자 메흐메트 2

그러한 기원의 연유는 역사적으로 명백하다. 이 반도 전역은 불과 20세기 초반까지만 하더라도 아나톨리아와 절대강자 오스만 제국의 통치를 받고 있었기 때문이다. 1453년 마지막 로마, 비잔티움의 콘스탄티노플을 기어이 함락시킨 오스만의 7대 술탄(이슬람권에서 세속 군주의 명칭) 메흐메트 2세는 발칸 반도에 대한 완벽한 장악력을 가지게 되었다.


발칸 전쟁(정확히는 2차) 당시 불가리아군 병사들의 모습이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고, 시간이 변하며 소아시아와 유럽의 제국으로까지 불리던 오스만은 쇠퇴하며 '유럽의 병자'라는 칭호까지 얻게 되었고. 20세기를 휩쓸던 민족주의는 당연히도 이 땅을 가만히 놔두지 않았다. 독립 전쟁의 성향을 띈 1차 발칸 전쟁에서 발칸의 민족주의 지도자들과 국가들은 오스만의 영향력을 완전히 뿌리뽑는 데 성공하였고, 2차 발칸 전쟁으로 말미암아 1차 세계대전 이전까지의 세력 구도는 마침내 형성되었다.


그리고 이러한 세력 구도에서 상술한 집중해야 하는 2개의 세력이 있었으니, 바로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과 러시아 제국이다.


오헝제국과 러시아 제국의 국기. 

민족적 관점에서 견원지간이나 다름없던 게르만의 제국 오스트리아-헝가리와 슬라브족 러시아 제국이었지만, 하나의 공통점은 이 둘이 모두 전제군주가 다스리는 '제국'이었던 것이다.


제국은 단순히 총칼을 휘두르며 영토를 병탄하는 집단으로 해석해선 안된다. 제국에 대해선 사람에 따라 개인적인 표상이나 생각이 있을 순 있겠지만 정치적 의미에서 제국이 가지는 본질적 의미는 하나라고 필자는 생각한다. 그것은 '군주'가 '하나의 민족이 아닌, 복수의 민족 혹은 국가를 다스리는 상위국가'이다.


위쪽의 사진에서 볼 수 있듯 제국에서의 국기는 그 어느곳에서도 '민족'을 암시할 레퍼런스를 찾을 수 없다. 오로지 하나의 거대한 역사적 줄기에서 내려오는 대표적인 상징. 그리고 그 상징을 휘두르는 군주. 그것만이 존재할 뿐이다. 


여기서 다시 발칸 반도에 집중해보자. 당시 그곳에서 발원하던 것이 무엇이라 하였던가? 그렇다. 바로 민족주의다. 그리고 '여러개의 민족을 다스리는' 제국에게 있어, 민족주의는 용납될 수 없었다.


1차 세계대전에 대해 조금 더 알고 싶다면 박상섭님의 해당 서적 역시 추천한다.

필자조차 이것을 온전히 설명하진 못할 것 같다. 민족주의을 숭상하는 자와 또 그것을 정치적으로만 이요하려는 자, 온 유럽에 걸쳐진 정치적 역학관계와 그것이 주고받는 외교적 메시지, 그리고 그 모든 것들이 2차적으로 가져다주는 파급효과 까지.


그러나, 결과론적인 관점에서 그것을 설명한다면 단순하다. 

'3국 동맹 진영'의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은 발칸 반도의 일부를 합병했다는 것. 그리고 '3국 협상 진영'의 러시아는 그것을 절대로 묵과할 수 없었다는 것이다. 


1914년 6월 28일. 그 이전의 사라예보

세르비아 왕국은 유럽의 화약고라 불린 발칸반도 그 위에 올려진 성냥이나 다름없었다.

이쯤 우리가 하나 더 주목해야 하는 세력이 있다. 바로 '세르비아'라는 발칸 반도의 서쪽에 위치한 나름 큰 영토를 자랑하는 국가이다.

세르비아는 발칸 전쟁 당시 가장 큰 공을 세우며 독립한, 그리고 그렇기에 미친듯이 민족주의에 심취한 국가였다. 허나 서쪽에 위치한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은 당연히도 그러한 세르비아와 그들의 슬라브 민족주의가 눈엣가시와도 같았고 외교적, 경제적으로 무수한 마찰이 전쟁이전에도 오갔다.

세르비아 왕국의 정부 역시 바보가 아니였기에 그러한 민족주의 정서를 최대한 억누르려 하였다. 국민들의 교육 수준을 낮추고 그 교육에서마저 모든 정치적 정신과 활동을 거세해 버린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결정은 최악의 결과를 낳고 말았다. 남아있는 정부 기관 중 가장 큰 집단. 군대가 정치적으로 변화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세르비아 군대 내부에서 장교들의 손에서 태어 한 사조직이 발흥하게 된다.(뭔가 기시감이 느껴진다면 착각일 것이다) 그것은 세르비아어로 Црна рука .해석하면 '검은 손'이라 불린 비밀 폭력 조직으로 드라구틴 디미트리예비치(Драгутин Димитријевић, 1876~1917)의 주도로 창설된 이 조직은 이전에도 세르비아 왕국의 이전왕 알렉산다르 오브레노비치를 잔혹하게 살해하고 시체를 훼손한 뒤, 창문 바깥으로 내던지는 극악무도함으로 명성이 높았다.


'명성이 높았다'라는 표현에서 알 수 있듯. 세르비아 정부도 이들의 존재를 알고 있었지만 만약 이들을 탄압할 경우 세르비아 군대 전체가 쿠데타를 일으킬 지 모른다는 두려움에 강경 대처가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이로서 무대에 더해 모든 배역들의 준비 역시 끝났다. 남은 일은 단 하나. 방아쇠를 당기는 것 뿐이었고, 방아쇠가 당겨진 곳은 1914년 6월 28일. 사라예보의 화창한 길거리에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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