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영혼은 삶이란 조약돌이 무수히 쌓아올려진 돌탑이다. 그 돌들은 여러 가지 형태를 띄고 있다. 그것들이 크든 작든, 어떤 색이든, 어떤 모양이든 간에 돌탑의 형태는 결코 동일하지 않다. 지구상에 75억명의 인간이 있다면 75억개의 돌탑이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 삶의 조약들은 허공에서 솟아난 것이 아니다. 시간과 공간이란 거대한 바위, 그것 위에 타고 흐르는 물줄기에 의하여 떨어져 나오고 깎여진 것이야말로 인간의 삶인 것이다. 그리고 그 강의 이름은 세계이다.
그렇다. 세상은 강이다. 그것은 굽이치며 흐른다. 때로는 물살이 강해지고 때로는 약해지며 한곳에 잠시 고이기도 하지만 결국 같은 바다로 흘러 들어가게 된다. 그 강줄기 위로 정념과 기억들은 끊임없이 흐른다. 그것들 중 어떤 것은 기쁨이고, 어떤 것은 슬픔이다. 어떤 것은 구원이고, 어떤 것은 또다른 시련이다. 그렇기에 그 모든 곳에서 만들어지는 삶이란 조약돌들이 전부 다른 형태를 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모두 그러한 강변에 선 채 돌탑을 쌓아올리고 있다.
그렇기에 물질의 세계에 존재하는 무수한 강들과 돌탑들처럼, 인간의 영혼의 모습은 제각각인 것이다. 누군가는 더 많이 고통받고, 누군가는 그렇지 않기도 하다. 어쩌면 삶이란 것은 목적도 의미도 없는 것일지 모른다. 그것은 단지 죽음으로 귀결된 영혼의 완성일 뿐이다. 그러나 간혹, 이 메마르고 건조한 시대를 사는 가장 평범한 인간일지라도, 인간은 때때로 맡긴 강줄기에서 벗어나 완전히 다른 세계의 흐름에 올라타기도 한다. 지금부터 서술하게 될 이야기는 그러한 것이다.
이 기묘하고 허무맹랑한, 하지만 어딘가 묘하게 현실적이기에 더더욱 믿겨지지 않는 이야기의 출처가 어디서 왔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어느날 급하게 이사한 듯이 휑한 빈 집의 한 방에서 발견된, 다채로운 서술의 형태를 띈 이 일대기를 쓴 저자는 현재 어디론가 사라져버리고 없다. 그러나 이 글을 읽어 본 뒤 아마 대다수가 확신할 수 있는 것은, 그가 어디있건, 무엇을 하건간에 이전과는 달리 자신의 삶을 사랑하고 있을 거란 사실이다.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인물, 그러니까 주인공의 이름은 한유진이다. 풀어본다면 ‘실로 존재한다’라는 의미를 지닌. 실존을 향한 매우 단순한 욕망을 지닌 그의 이름은 아버지가 직접 지어준 것이다. 딱히 그의 아버지가 철학에 감성에 젖어있어서는 아니였다. 그저 처음으로 얻은 자식에게 태어나준 것만으로 고맙다는, 그 시대 남자들 특유의 애정 표현이었던 것이다.
대부분은 아마 이쯤에서 서문을 끝낸 뒤 곧장 서사의 중심으로 달음박질칠 것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우리는 그러지 못한다. 이 세상 모든 이들의 삶이 그러하듯, 그것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선 경험을 이끌어나가는 주체에 대한 최소한의 진실된 이해가 필요하다.
그러한 면에서 ‘한유진’이라는 사람을 설명해본다면, 글쎄다. 단적으로 말해 그는 초라한 인간이다. 가령 대부분의 이들은 누군가를 만날 때 소위 ‘첫인상’이라는 것이 존재한다. 성마르다거나 온유해 보인다거나, 혹은 인상이 안 좋다거나 같은 추상적이기 그지없는 평가들 말이다.
관계를 맺고 조우한 뒤 얼굴부터 행색에서까지 그 어떠한 인격적 향취도 느껴지지 않는, 무색무취의 인간이 존재한다면 믿겨지는가? 한유진이라는 자가 바로 그런 인간이었다. 조금 세세한 부문을 열거하여 설명하자면, 그는 말수가 없고 조용한 사람이었다. 친구도 없었고, 일체의 외향적인 활동을 즐기지도 않았다 그의 유일한 친구이자 인생의 동반자는 책뿐이었다. 외출을 할때면 그의 옷차림은 대부분 언제나 청바지에 위로는 셔츠를 입었다. 잠을 잘때조차 그는 어떠한 호사스러운 준비를 하지 않았다. 심지어 그는 이불도 없이 자신이 입고 있던 외투를 벗어 상체 부분을 덮고 자는 경우가 비일비재했다. 화려하지도, 남루하지도 않은, 다만 철저히 단정하고 실용적일 삶이야말로 그가 추구하는 바였다.
그러나 이러한 한유진이라는 인간의 무미건조함 위에 초라함이라는 인상이 덧씌워지는 이유는 오히려 조우 이후에 볼 수 있는 그의 행동들 때문이었다. 그가 살면서 주변인들에게서 끊임없이 들은 말을 토씨하나 틀리지 않고 베껴본다면, ‘덩치에 맞지 않게 겁이 많다’ 라는 것이었다. 어린아이에게조차 존댓말을 하며 차리는 예의. 매사에서 느껴지는 지나칠 정도의 고지식함. 강박적일 정도로 규칙적이며 정적인 생활습관과 같은 그의 기질은 어딘가 병들고 유약한 분위기를 풍겼다. 멍하니 허공을 응시하다 갑작스레 표정이 밝아지는 그의 버릇은 주변의 이들에게 기이함마저 느끼게 하였다.
그렇다면 한유진이라는 인간은 그저 병들고 지쳐버린, 소위 광인으로 거듭나기 직전의 인간인 것인가? 단언컨대 그렇지 않다. 오히려 그의 이러한 기이함과 초라함이야말로 그의 영혼이 풍요롭다는 것을 반증하기 때문이다. 내면이 풍요로운 자들이야말로 가장 초라한 외면을 지녔다. 왜냐하면 그들은 자신들의 삶 대부분을 자신의 정신 안에 세워진 사유의 제국 속에서 살아가기 때문이다. 그들은 명성이나 평판같은, 그러니까 외면을 열심히 단장함으로써 얻게 되는 그러한 것들이 얼마나 의미없고 또 허망하게 떠나버리는지를 알고 있다.
어린아이에게조차 예의를 차리는 성향은 이러한 그의 내면적 특성에서 비롯된 것이다. 대부분의 이들은 살면서 느끼겠지만 인간은 본능적으로 모든 개념에 대하여 우열을 가리는 존재이다. 그러한 과정에서 사용되는 잣대는 셀 수 없이 많다. 나이, 성별, 인종 등 말이다. 그러나 다소 놀랍게도, 보통의 대중들이 아닌 인류 역사상 가장 지혜로운 동양과 서양의 현자들조차 이러한 편협함을 어느정도 보유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그러고 싶지 않았다. 정확히는 그렇다고 믿을 수 없었던 것이다. 아이에게는 아이 나름의 지혜가 있었고 노인에게는 노인 나름의 지혜가 있었다. 심지어 모든 이가 ‘미쳤다’라고 말하는 광인에게조차도 어떠한 지혜의 편린이 있을 거라 믿는 것이 그였다. 그렇기에 그는 모두를 동등히 존중하였다. 그는 낭만이라는 망토를 두른 인본주의자였다.
그의 정적인 일상과 소위 궁상맞을 정도의 생활 역시 마찬가지의 경우다. 현대라는 세계에서 더욱 극심해진 성향이지만, 인간 존재의 또다른 천성 중 하나는 무언가를 끊임없이 소유하려 한다는 것이다. 물질적인 것이든, 정신적인 것이든, 그들의 영혼에는 무슨 짓을 해도 채워지지 않는 거대한 결핍의 공동이 있는 것 같다. 대부분의 보통적 인간은 이것을 채우려 아등바등하며 무의미한 투쟁을 반복하다 생을 마감하게 된다. 그러나 어느정도 지혜를 갖춘 사람이라면, 이것이야말로 세상에서 가장 무식하고 아둔한 망집이라는 것을 금방 인지한다. 우리는 결코 우리가 원하는 것을 소유하지 못한다. 전부가 아닌, 아주 조금조차도 말이다. 쾌락이란 것은 그저 허상에 불과하지만 고통은 실존한다. 그러므로, 지혜로운 자들은 하나같이 쾌락을 늘리는 것이 아닌 고통을 줄이려 한다.
그러나 이러한 특수하고 내면적인 기질을 지닌 사람들이 외부 세계를 향해 반응하는 몇몇의 경우가 있다. 주변 사람들이 한유진에게 이른바 ‘기이함’을 느끼는 그러한 순간들 말이다. 그러한 순간은 정해진 기준 없이 여러 경우가 될 수 있다. 가령 한유진 스스로의 예시를 들어본다면, 그가 어느 매서운 겨울날 부들거리는 몸을 이끌고 산책을 나왔을 때 그는 자신의 집 뒤편의 작은 나무를 바라보았다. 나무는 계절이 내리는 시련을 맞으며 모든 녹색을 잠시 걷어낸 뒤였다, 그러던 그때 그는 그것이 뻗어낸 무수한 가지 끝. 그중 오로지 단 한 부분에 남아있는 꽃 봉오리를 보게 된 것이다.
이러한 순간이야말로 풍요로운 내면을 지닌 자들이 진심으로 환희하고 기뻐하는 순간이라 할 수 있다. 그들 안에 자리잡은 영혼의 아궁이에 집어넣어진 이러한 경험들은 이내 활활 타오르며 정념의 열기를 뿜어낸다. 그렇게 되면 내내 잠들어 있을 것만 같던 외부의 세계를 향한 그들의 인식은 다시금 강렬하게 깨어나게 된다. 당연히도 대다수의 타인은 이러한 과정을 알지 못하고 느껴보지도 못한다. 그렇기에 그들은 오로지 외면의 인식에 기반하여 그들은 이상하다 결론짓는 것이다.
허나 안타깝게도 이러한 대다수의 타인. 즉 ‘사유’가 아닌 오로지 ‘생존’만을 반복하는 이들이야말로 이 세상의 9할을 차지하고 있는 자들이다. 그렇기에 영혼이 풍요로운 자들은 외면받고 소외되며 삭막하고 잔인한 자들만이 문명과 역사의 옥좌에 앉아온 것이다. 한유진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이러한 박해야말로 오히려 그가 초라한 인간으로 전락한 가장 큰 원인이라 할 수 있었다. 물론 그가 완벽히 무고하다는 것은 아니다. 그 역시 타인을 대하는 것이 서툴렀고, 몇 번의 실패 끝에 그것을 위해 노력하는 것 조차 포기해버렸기 때문이다. 하지만 말하고 싶은 것은, 이러한 채념의 반석은 그가 원인이 아니였다는 것이다.
그가 만나거나 조우했던 사람들은 처음엔 그를 잘 대해주었다. 그러나 이후 그가 자신들과는 다르다는, 매우 이질적이고 특별한 정신을 지녔다는 것을 아는 순간. 그를 자신들과 완전히 다른 존재로 취급하였다. 어떤 이들은 그를 ‘물리적’으로 박해하기도 하였다. 물론 만약 그들이 여유를 갖추고 조금 더 유심히 그를 들여보다보았다면 아마 그의 특별함 뿐 아닌, 그것을 거울 삼아 자신의 특별함까지 찾을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알다시피 그것은 불가능하다. 마지막 한 줌의 고결함마저 쓰고 버리는 이 소비지상의 시대에서 사유는 사치를 넘어 죄악일 뿐이다. 모든 문명의 본질은 본성의 억압과 정념의 살균이다. 독일의 가장 위대한 지성 중 한명이 말했듯이, 세상 사람들은 서로를 지배하고 짓밟고 상처준다. 그러고는 그러한 것들이 ‘세상 돌아가는 이치’라 말하는 것이다.
그리고 어찌보면 당연하게도, 이러한 환경 속에서 살아온 한유진은 매우 모순적인 성격을 가지게 되었다. 그의 영혼이 건강할 때, 그러니까 대부분의 경우 홀로 생각에 잠겨 있는 동안 그는 자신이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절절히 실감할 수 있었다. 즉. 이 세상은 아름다움과 추함, 그리고 모든 것이 공존하며 그렇기에 지켜낼 가치가 있다고 생각했다는 말이다. 그러나 그가 ‘집단’과 ‘사회’라는 인식의 교화소로 들어가는 순간 그는 죄인이요 이단자가 되었다. 그의 모든 사상과 생각은 이른바 ‘궤변’이며 자신을 철저히 배제한, 타인이 부여한 의미만이 올바른 것들이 되버리는 것이다.
그 결과 그의 영혼은 마치 2개로 쪼개어진 형태를 하게 되었다. 한쪽의 영혼은 사슴의 형상을 하고 있고, 다른 한쪽의 이리의 형상을 하고 있다. 사슴의 영혼은 질서이다. 그것은 문명과 권위에의 복종이며 ‘올바른’ 사상과 마음가짐, 즉 공동체에 대한 헌신을 의미한다. 그의 반대에 있는 늑대의 영혼은 혼돈이다. 폭력이자 모든 권위에 대한 저항이다. 그것은 모든 기성의 체제와 요소를 물어뜯으며 혁명이라는 하울링을 외친다.
그리고 이 사슴과 늑대의 영혼은 그의 마음속에서 끊임없이 서로를 적대했고 그 결과 그는 매사의 행동과 언행에서 모순적인 모습을 보이게 되었다. 그의 마음속에서 사슴의 영혼이 이길 땐 그는 순종적이고 유순한 성격을 갖게 된다. 상급자의 명령에 토를 달지 않고 맡은 일에 열심히 일하는 이른바 ‘정상적인’ 인간이 되는 것이다. 그러나 그의 마음속에서 늑대의 영혼이 이겼을 땐 그는 반항적이고 버릇없는 인간이 된다. 웃어른의 말에 시시콜콜 토를 달고 일에 제대로 집중하지도 않는 ‘어딘가 아픈’ 인간이 되는 것이다.
자, 이러한 소위 ‘정상성’의 담금질 끝에 탄생하게 된 인간을 보라. 그는 시시각각 노심초사하고 신경쇠약에 시달린다. 저린 발을 질질끌며 불안한 눈초리를 힐긋거리며 한 줌의 확신 없이 회의의 광야를 떠돌고 있는 것이다. 이 얼마나 멋진 ‘교육’의 과실이란 말인가! 그리고 마침내 이야기는 이러한 상처받고 병든 한명의 인간. 그 인간이 가장 깊디깊은 절망에 빠진 소위 인생의 ‘바닥을 짚던’ 시점으로부터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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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라리 하늘의 빛을 비춰주지 않았던들,
그들은 더 잘 살 수 있지 않았을까요?
그들은 그것을 이성이라 부르면서,
그것을 누구보다 더 동물적으로 사는데 써먹고 있지요.
-파우스트- 메피스토텔레스
그대는 세상에서 무얼 하려는가? 세상은 이미 만들어져 있는데.
창조의 주님은 모든 걸 다 곰곰이 생각해 놓으셨다.
그대의 운명은 정해졌으니, 그 방식을 좆아라.
길은 시작되었으니, 그 여행을 마치도록 하라.
근심도 걱정도 운명을 바꾸지는 못하지.
그대를 내동댕이쳐 영원히 균형을 잃지 못하게 할 뿐.
-잠언 시편- 요한 볼프강 폰 괴테.
삶을 사랑하는 자들은 한 가지 이유로 그러하지만 그렇지 않은 자들은 온갖 이유로 절망한다. 그날의 한유진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 이유를 열거하자면 한도끝도 없겠으나 첫 번째 이유를 따지자면, 그것은 그의 꿈이자 정신적 목표가 다시한번 좌절되어 곤두박질쳤기 때문이다. 얼마전부터 인터넷 사이트에 웹소설을 기고해온 그였지만, 솔직히 이야기하면 그는 그러한 종류의 글을 쓰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돈과 생계라고 하는 사회의 지엄한 짐에 짓눌려 어찌어찌 이어나가던 그것은 급조되고 가장된 열정이 여타 그러하듯 한 순간에 몰려든 회의감과 함께 모조리 손을 놔버리게 되었다.
두 번째로 절망한 이유는 그의 가족 때문이었다. 오전에 그에게 전화한 그의 아버지는 그에게 자신에게 스스로의 진로에 대한 ‘진지하고’ ‘현실적인’ 계획을 생각하라 말했다. 그 시대의 남성들 특유의 투박하고 정돈되지 않은 말투로 내뱉는 권유를 가장한 명령을 그의 아버지는 내렸다. 유진은 뭐라 시원하게 비아냥댈까라도 생각해봤지만 그러지 못했다. 수화기 하나를 사이에 둔 목소리의 드잡이질을 다시 하고 싶지 않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자신의 마음속에 남아있던 재능에 대한 마지막 한 줌의 확신이 메말라버린, 그 상황이 아버지의 말에 대한 최후의 부정과 반박의 여지를 말소시켜버렸기 때문이다. 그 결과 수화기 너머에서 오고간 것은 끔찍하게 무심하고 형식적이기 그지없는, 일상적인 안부와 신변잡기들뿐이었다.
이 밖에도 무엇을 열거할 수 있을까? 꼴에 작품에 집중하겝다시고 내팽개친 생계를 위한 노동? 밀릴 대로 밀린 각종 공과금과 대출의 이자들? 더 말할 수 있지만 여기까지만 하는 게 좋을 것 같다. 불행을 열거해봤자 늘어나는 것은, 그것을 굳이 일일이 열거했다는 사실에서 나오는 또다른 불행일 뿐이니 말이다.
전화를 끊은 뒤 순간 유진은 자신의 관자놀이 오른쪽 윗부분이 심하게 당겨오더니 이내 욱신거리는 통증이 엄습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러나 딱히 인상을 찌푸리지는 않았다. 그에게 있어 편두통은 이미 만성적인 질환으로 전락한지 오래였기 때문이다. 다만 특정 고통에 익숙해진 사람 특유의 어딘가 경직된 표정을 지으며 서랍장의 두통약을 찾아 미지근해진 생수와 함께 삼킬 뿐이었다.
몇 분 뒤 가라앉는 두통과 함께 진통제 특유의 각성작용이 느껴졌지만, 이상하게 여전히도 유진의 기분이 편치 않았다. 책상에 턱을 괴고 앉아 그 원인을 찾으로 자신의 의식을 관조하던 그는 이 감각의 정체를 알 수 있었다. 그것은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것도, ‘무언가를 하면 안된다’라는 감각도 아니었다. 정확히는 ‘무언가를 해야 할 같은데 그게 뭔지도 모를’. 인간이 느낄 수 있는 가장 불쾌한 권태감이었다.
나름의 사변적 과정을 통해 결론을 도출할 수 있게 된 유진은 그러한 감각에 대한 나름의 검증된 요법을 시행하기로 했다. 그 말은즉슨 ‘전부 때려치우고 잠이나 잔다’라는 것이었다. 침대에 눕기 전 유진은 의자에 걸쳐져 있던 검녹색 야전상의를 집어들었다. 그러고는 능숙한 자세로 책상 거의 바로 뒤쪽에 위치한 침대 위로 곧바로 몸을 옮겼다. 그러고는 상체 부분에 야상을 덮고 이내 눈을 감았다.
유진은 눈을 감자 문득 눈꺼풀 뒤쪽에서 어떠한 형상들이 꿈틀대는 것이 보이는 것 같았다. 그것은 어쩌면 잠을 자기 싫다는, 그의 정신이 발하는 은연중의 저항일 수도 있었다. 이루지 못한 아니, 이룬다는 것을 꿈꾸기도 전해 포기해버린 무수한 도전들. 어쩌면 자신은 글쓰기에 재능이 없을지도 모른다는 끊임없는 미혹. 그가 눈을 감자 머릿속에서 슬그머니 빠져나온 그것들은 눈꺼풀에 고여 흐느적흐느적 춤을 추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유진은 계속해서 눈을 감았다. 그 자신이 눈을 뜬다해도 그 모든 미련과 회의는 잽싸게 그의 두골 속으로 도망칠 것이 뻔하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그는 눈을 감은 채 눈꺼풀에 고여가는 조롱과 모멸을 조용히 응시하다 잠에 들었다.
그가 눈을 뜬 시각은 어둠이 아주 조금 내려앉기 시작한 저녁이었다. 유진이 잠에서 깬 순간, 그러니까 의식이 각성한 바로 직후 그의 머릿속은 온갖 시시콜콜한 걱정과 불안으로 가득찼다. 그는 잠을 자는 것은 좋아했지만 이 순간만큼은 끔찍이 싫었다. 찾아갔던 정신과 의사 말로는 불안 신경증의 일환이라고 말했지만 언젠가 유진은 그러한 진단에 자기 나름의 비유를 더해 본 적이 있었다. 잠에서 깨어나는 것은 마치 한치 앞도 보이지 않던 방 안에 램프의 줄을 당겨 조명을 키는 것과 같았다. 그러나 오랜 시간동안 켜지 않던 램프를 켜는 순간 일시적으로 과하게 들어온 전압이 필요 이상으로 방 안을 밝게 비추게 된다. 그러면 방안에 있었지만 우리가 애써 잊어 두었던 것. 즉 삶과 죽음에 대한 공포, 증오, 분노, 회한의 불청객들이 모조리 씩 웃으며 우리에게 손을 흔드는 것이다.
유진은 잠시 멍하니 앉아 의도적으로 시야를 흐리게 하여 그러한 생각을 몰아내려 했다. 이러한 방법은 옛날부터 그가 자주 써온 방법이었다. 인간이라는 것은 감각이 흐려지는 생각 역시 흐릿해지는 것 같았다.
그러던 중, 그의 시야는 정말 아무 이유없이 한 곳에 초점이 잡혀버리게 되었다. 그것은 방 한 귀퉁이에 있던 장서였다. 그가 살고 있던 원룸은 마치 그 스스로의 정신이 고스란히 반영된 듯 하였다. 그말은 즉슨, 전체적으로 낡고 협소한 공간에 비해 안에 온갖 가재도구들이 다닥다닥 들어차 있었다는 말이었다. 그리고 이러한 물리적 비좁음에 가장 큰 기여를 하고 있던 것이 그 장서였다. 성인 머리 끝부터 발끝까지 원룸의 한 면 전체를 꽉 차지하고 있던 장서는 단 한 치의 빈틈도 없이 책으로 꽉꽉 채워져 있었다. 어찌나 공간이 부족한지 일부 구획엔 책들 위에 책이 가로로 얹어져 있을 정도였으니 말이다.
책의 종류 역시 다종다양했다. 맨 위쪽 책장엔 아리스토텔레스의 서적부터 시작해서 마르크스의 저작들이 꽃혀있었고 옆쪽은 푸코와 아렌트의 차지였다. 그리고 아래쪽으론 고전 문학과 역사서들이 어지러이 이어져 있었다.
장서를 잠시 바라보던 유진은 이내 꽃혀있던 책들을 손가락으로 스쳐보았다. 그러곤 문득 하나의 책이 눈이 가게 되자 그것을 뽑아 들어 보았다. 책은 괴테의 파우스트였다.
파우스트. 파우스트라. 한때는 자신도 이 책을 읽으며 스스로를 주인공인 그에게 대입해보기도했다. 그러나 그것은 오활하기 그지없는 감상일 뿐이었다. 지금 자신을 보라. 어디 감히 자칭할 수 있겠는가. 진리를 향해 발끝만큼이나마 나아갈 수 있는 지혜도 얻지 못한, 그 반대의 노동의 진솔함도 깨우치지 못한, 얼치기 철학자이자 반쪽짜리 딜레탕트를 받아줄 세상이 어디 있겠는가 말이다.
순간 견딜 수 없는 불안과 회의가 유진의 몸을 감싸기 시작했다. 마치 이 골방과도 같은 집이 자신의 세상 전부이며 그 공간조차 갈수록 쪼그라 들고 있는 것 같았다. 밖으로 나가고 싶었다. 물론 나가봤자 할 일도 없었지만 그저 이 곳에 더 있고 싶지 않았다.
아직 2월의 중순이었기에 날씨는 쌀싸했고 그렇기에 유진은 싸구려 점퍼를 걸친 채 문 밖을 나서 원룸촌의 골목을 걷기 시작했다. 서서히 물러가는 겨울은 마치 필사적으로 자신의 족적을 남기려는 듯 아직 녹지 않는 눈이 거리 곳곳에 드문드문 남아있었다. 그리고 그 계절의 족적 사이를 메우고 있던 것은 무수한 타인들이었다.
누군가는 다른 누군가와 걸으며 대화를 나누었고 누군가는 전화기를 귀에 댄채 통화를 하고 있었다. 누군가는 인상을 찌푸리고 있었고, 누군가는 웃고 있엇다. 그리고 인영들 사이를 유진은 잔뜩 무표정한 얼굴로 지나쳤다.
그러나 그런 유진의 굳은 얼굴 뒤에선 그들에 대한 강렬한 부러움과 열등감이 피어오르고 있었다. 사실 그는 다른 사람과의 교류가 잦은 사람도 아니었고, 그러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도 아니었다. 그러나 수개월에 걸친 자발적인 고독과 회의가 겹쳐진 결과 지금 그는 그 누구보다 인간에 목마른 상태였다. 길가에 지나다니는 아무나를 잡아 인사를 하거나 말을 걸고 싶다는 충동이 느껴질 정도였으니 말이다.
정처없이 거리를 헤메던 유진은 자신도 모르는 새 도시의 중심가로 오게 되었다. 해가 저물어 어느새 완연한 어둠을 품은 도시는 그것이 품은 우수와 감상을 이 세상의 이들에게 전하기 시작했다.
유진 역시 마찬가지였다. 한번 어둠을 느끼자 그는 지금까지 애써 참아왔던 슬픔과 회의가 자신을 덮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어떻게든 그것을 잊으며 황급히 주변을 돌아보았다. 거리는 어느새 데이트를 즐기는 듯한 웃고 떠드는 화려한 용모의 남녀들로 메워지고 있었다. 문득 유진은 생각했다. 내 나이가 얼마였지? 그래 스물넷. 스물넷이었다. 그리고 유진은 그 24년의 세월 동안 자신이 도대체 이룬 것이 뭔지 생각에 빠졌다. 그러고는 다시금 절망했다. 그는 평범하지도,특별하지도 못했다. 그는 찬란하지도, 비루하지도 못한 존재였다.
유진은 무의식적으로 눈가에 손을 짚었다. 이래서는 안됐다. 특히나 공공장소에서는 말이다. 오랜 시간동안 책만 붙잡고 산 그의 정신은 이미 너무나 사변적으로 변하여 조그만 자극에도 상념이 폭주해댔다. 누군가가 말한 것처럼 의식하는 것. 지나치게 의식하는 것이야말로 병이었다. 그렇다면 그 의식을 다른 곳을 돌릴 게 필요했다.
그러한 생각 끝에 유진이 향한 곳은 영화관이었다. 첨언이지만 그는 옛날부터 영화를 좋아했다. 한달에 한번은 꼭 영화관에 가 ‘최소한의 완성도’를 갖춘 영화를 보는 것이 그의 몇 안 되는 취미중 하나였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지금은 아니었다. 태양의 형상에서 이름을 딴 전염병이 전세계를 휩쓸자 영화관은 반쯤 종말을 고했고 유진 자신의 마음도 우울과 회의감에 젖어들자 그는 언젠가부터 어떤 영화도 보지 못했다.
그러한 상황을 반영이라도 하듯 영화관의 상태는 그다지 좋지 않았다. 곳곳엔 관람객들이 흘린 팝콘들이 그대로 널부러져 있었고 홍보 포스터는 여기저기 해진 채 방치된 것들 투성이였다. 그러나 유진은 애써 개의치 않은 채 뚱한 표정을 짓고 있는 직원에게 다가가 말을 걸었다.
“아, 안녕하세요. 영화 티켓을 좀 구매할 까 하는데요.”
“....티켓 구매는 키오스크에서 하실게요.”
그가 시작한 대화는 그러한 직원의 대답에 3초도 채 되지 않아 끝나버렸다. 순간 유진이 자신이 너무나 바보같이 느껴졌다. 직원에게 무턱대고 말을 건 바로 뒤에 자신 역시 그 사실을 떠올릴 수 있었기 때문이다.
결국 어벙한 미소를 지어보인 채 그는 영화관 한 구석에 마련된 키오스크 앞으로 걸어갔다. 키오스크에 떠오른 아이콘은 누르며 그는 문득 생각했다. 도대체 왜 세상은 이렇게 되었단 말인가? 방금전만 하더라도 그렇다. 생각해보면, 그 전염병이 퍼지기 전까지만 해도 이렇게 대화에 목마르진 않았다. 처음 보는 사람일지라도 담소 정도는 나눌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아니였다. 지금은 그저 무기질적 스크린만이 자신에게 어서 상품을 소비하라고, 그리하여 이 사회에 어울리는 인간이 되라고 다그치는 것만 같았다.
기계에서 티켓이 인쇄된 것을 뽑아든 유진은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위쪽의 상영관으로 향했다. 또다른 뚱한 표정의 직원이 유진의 티켓을 확인하곤 맨 오른쪽의 상영관으로 안내해주었다. 상영관 안으로 들어선 유진은 자리에 앉았다. 그리곤 이내 스크린에는 광고의 향연이 펼쳐지기 시작했다.
유진은 조금 짜증이 났다. 그러고는 이내 눈을 감아버렸다. 만약 귀마개가 있었다면 바로 사용했을 것이다. 어째서 이래야만 하는가? 자신은 분명 영화를 보러 온 것이었다. 메마른 마음에 아주 약간의 정념이라도 적시기 위해서 말이다. 그러나 결국 그를 또다시 환영해준 것은 끊임없는 상품과 그것을 소비하라는 선전문구라는 사실이 그러한 행동을 하게 만든 것이다.
다시금 약간의 시간이 지난 뒤 마침내 영화는 시작했다. 영화의 내용은 그도 잘 몰랐다. 애초에 티켓을 구매할 때 되는 시간에 맞춰 구매한 것이였기 때문이다. 다만 액션 코미디 영화인 것 같았다.
그러나 영화가 시작한 지 몇십여분이 지나자 유진은 점점 이상한 기색을 띄기 시작했다. 그는 때때로 얼굴을 찌푸리고 경박하게 다리를 떨어댔으며 심지어 영화의 몇몇 구간에선 코웃음을 치기까지 하였다. 결국 영화가 시작한 지 1시간도 안되어 그는 출입구를 향해 뛰쳐나갔다.
이후 그대로 영화관을 박차고 나온 그는 다시금 자신의 집으로 향하기 시작했다. 분명 얼마전까지만 해도 그곳에 있다면 미쳐버릴지리 모른다고 생각했으나 지금은 그곳만이 유일한 안식처였다. 그곳에서 하루 반나절은 책에 파묻히지 않는다면 자신의 정신에 죄를 짓는 것만 같았다.
그가 이토록 분노에 사로잡힌 이유는 하나였다. 바로 방금 저에 본 영화가 그가 이 세상에서 가장 싫어하는, 생각없는 대사와 경박한 유머, 그리고 그러한 싸구려 서사에 절대로 빠지지 않는 신파극까지 곁들어진 영화였기 때문이다. 힘이 잔뜩 들어간 발걸음을 옮기며 그는 속으로 미친 듯이 중얼거렸다. 그러나 그 영화 자체보다 더 견딜 수 없던 것이 있었다. 바로 상영관 내부에 꽉꽉 들어찬 채 그 광경을 보며 낄낄대는 다른 이들의 모습이었다.
재미. 그 빌어먹을 재미야말로 지금 이 사회와 세상을 지배하는 모든 것이였다. 아무리 천박한 말이라도, 아무리 부덕한 행동이라도 ‘재미만 있다면’ 모든 것이 용서되었다. 설사 그것이 우리의 영혼을 병들게 하고, 관계를 망가뜨리고, 스스로를 편협하고 아둔하게 만들어 그 누구에게도 관용을 베풀지 못하게 할지라도 재미있다면 모든 게 괜찮다. 안 그런가?
그러나 문제가 있었다. 지금까지 인류가 쌓아온 것들 중. 숭고하고 유덕한 것. 그렇기에 지킬 가치가 있는 것들은 하나같이 전부 재미없다는 것이다. 우리는 그 사실을 알고 있다. 그럼에도 우리는 너무나도 즐겁고 유쾌하고 그 모든 미덕을 부수고 있던 것이다. 그래 방금전 자신이 보았던 그 광경처럼 말이다!
자신이 그토록 사랑하기 마지않는 글쓰기 역시 이 풍조에 오염된지 오래였다. 오. 사실 그는 영화뿐만 아닌 고전문학을 제외한 그 어떠한 소설도 읽지 않은 지 오래되었다! 이젠 더 이상 그 누구도 무언가를 읽으며 생각하려 하지 않았다. 이제 ‘문화’란 것은 담배나 술과 같은 기호품으로 전락한지 오래였다. 소위 대중의 인기를 끄는 글들은 그가 보기엔 활자의 형태를 한 욕망 덩어리에 불과했다.
순간 유진은 너무나도 피곤함을 느껴 주변에 있던 밴치에 걸터앉았다. 아마 순간적인 흥분에 그가 앓던 만성적인 신경쇠약이 재발한 것 같았다. 손발은 미친 듯이 차가웠고 가슴팍에서 무언가 튀어나올 것만 같았다. 그렇게 앉아서 심호흡을 하던 중 옆쪽에서 들린 누군가의 목소리에 유진은 고개를 돌렸다.
“어, 그래 수진아. 아빠 지금 가고 있지. 그래 조금만 기다려. 금방 갈 테니까.”
목소리의 정체는 중년의 사내로, 전화기를 통해 자신의 자식과 대화하고 있는 듯했다. 육체노동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으레 그렇듯 푸른 색 조끼를 걸치고 있는 사내의 손은 고된 노동으로 다져진 굳은살들이 빼곡히 박혀있었다. 사내의 옆에는 옆쪽 번화가에서 사왔는지 아직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고 있는 치킨 한 상자가 놓여 있었다.
그 대화를 듣고 있던 유진은 말없이 자리에서 일어나 발걸음을 옮겼다. 그러나 그는 집으로 향하지 못했다. 방금 전의 그 중년의 사내분. 그 분의 모습을 보자 자신에 대한 혐오감이 또다시 치밀어 올랐기 때문이다.
삶에 확신이 있다는 것. 그것은 좋은 것이다. 그 어떠한 회의도 번민도 없이 그저 속편하게 믿을 수 있는 무언가가 있다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축복이었다. 자신은 단 한번도 가지지 못한, 앞으로도 그러할 그 축복 말이다. 도대체 이게 무슨 꼴이란 말인가? 그 누구와도, 그 무엇과도 어울리거나 정을 주지도 못한 채 철학적 사변만을 늘어놓으며 주변의 모든 것을 배척하는 나라는 놈은 도대체 뭐란 말인가?
유진은 그렇게 속으로 미친 듯이 중얼거리며 밤거리를 떠돌았다. 분명 방금 전까지 그토록 집과 책 속에 파뭍히고 싶었거만 지금은 그런 마음이 싹 사라져버렸다. 스스로에 대한 혐오와 절망이 회오리치며 새까만 정념이 만들어지던 찰나.
“야옹”
뒤쪽에서 들려온 그러한 울음소리에 유진은 고개를 돌렸다. 소리의 예상대로 그곳에 있던 것은 한 마리의 고양이였다. 길고양이들이 여타 그러하듯 조금 마른 체형을 하고 있던 그것은 날렵한 몸놀림으로 위쪽의 담벼락에서 내려와 그런 울음소리를 내고 있었다. 허나 한가지 특이한 점이 있다면 고양이의 온 몸은 검은색이었다. 마치 지금 이 밤의 어둠을 한껏 빨아들인 듯한 검은 몸에 동공이 세로로 찢어진 채 호박색으로 빛나는 두 눈은 어딘가 모르게 신비롭기까지 하였다.
유진은 고양이를 잠시 바라보다 아주 조금은 미소지을 수 있었다. 그는 어렸을 때부터 개보다 고양이를 좋아했다. 그들은 도도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고고했다. 먹이를 주면 금방이라도 꼬리를 흔들고 배를 까뒤집는 개와는 달리 그들은 그 누구에게도 고개 숙이지 않은 채 홀로 세상을 관조하며 살아가는 존재였다.
유진은 이내 고양이가 겁을 먹지 않도록 몸을 조금 낮춘 채 고양이에게 다가갔지만 그것은 이내 잽싸게 그에게서 멀어져버렸다. 조금 실망할 법도 했지만 길고양이들이 얼마나 경계심이 심한지 알고있던 유진은 단념한 채 다시금 정처없이 거리를 떠돌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상한 일은 그때부터 일어났다. 아까까지만 해도 그를 피하던 검은 고양이는 이제는 유진을 졸졸 따라오기 시작한 것이었다. 그러다가도 자신에게 흥미가 있나 싶어 그에게 다가가면 다시금 그를 피해 멀어지는 것이 아닌가.
근 몇 개월만에 그에게 찾아온, 일상 속의 이러한 기묘한 상황에 그는 호기심보다는 당혹감이 먼저 일었다. 본래의 그였더라면 이러한 상황에 기쁨을 느끼며 만끽했을 것이다. 그러나 너무나도 오랫동안 삶의 권태에 찌들어있던 그에겐 그러할 여유조차 없었다는 것이 비극이라면 비극이었다.
유진은 잠시 멍하니 고양이를 바라보았다. 그러고는 속으로 그에게 말했다. 너는 무엇이니? 너는 언제부터 이 세상이 존재하였니? 너의 호박색 눈은 참으로 아름답구나. 너는 그 아름다운 눈에 세상은 어떻게 보이는 걸까? 당연하게도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유진을 따라 그를 응시하던 검은 고양이는 몸을 돌려 어디론가 향하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둥글둥글한 얼굴을 돌려 그를 한번 바라보았다. 어째서였을까. 유진의 눈에 그의 그러한 눈초리는 이렇게 말하고 있는 것 같았다. ‘너는 방금 내가 무엇을 보고 있는지 물어봤지. 그것에 대한 대답을 듣고 싶다면, 나를 따라와!’
상식적인 사람에게 그것은 허무맹랑함 그 자체였으리라. 그저 스쳐 지나가는 생활 속의 철없는 몽상으로 치부한 채 반복되는 노동으로 돌아갈 그런 상념 말이다. 그러나 유진은 이미 상식적인 사람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는 어느새 고양이를 따라가기 시작했다.
처음엔 그래도 대로변을 통해 가던 검은 고양이의 동선은 점점 시간이 지나자 건물 사이의 골목 사이를 누비기 시작했다. 밤을 머금은 듯한 새까만 고양이와 그것을 쫓는 어느 초라한 남자, 그러한 동행을 본 행인들은 흥미롭거나 재밌다는 듯이 그들을 흘긋 쳐다보곤 지나쳤다. 고양이는 날씬한 몸에 걸맞게 골목 사이를 누비는 데 아주 능했지만 유진은 그렇지 못했다. 아무렇게나 튀어나온 콘크리트 턱에 발이 걸려 넘어지거나 날카로운 철제 구조물에 손이 베일 뻔한 적이 한두번이 아니었다.
고양이를 따라가면서도 그는 속으로 스스로를 비웃었다. 멍청한 놈. 드디어 미쳐버린 거냐? 이 시간에 당장이라도 일자리를 알아보던가 혹은 생산적인 무언가를 했다면 좋았을 걸, 결국 너가 선택한 것이 길짐승과 함께하는 우스꽝스러운 동행인 것이냐?
그러나 그러한 스스로를 향한 조소에도 유진은 어째서인지 발걸음을 멈출 수 없었다. 자신의 삶에서 근 몇 달 만에 맛보는 새로운 무언가. 모든 것이 정해지고 확실한 목표로가 아닌 전혀 알지도, 짐작하지도 못하는 미지를 향해 나아가는 도취감과 기쁨은 이루 말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유진이 세로로 몸을 몸을 눕혀야만 지나갈 수 있을 정도의 좁은 골목길을 간신히 지나가고 있을 즈음. 그는 그 골목 너머 바깥에서 고양이가 움직임을 멈춘 채 자신을 바라보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유진은 저곳이 고양이와 자신의 목적지라는 것을 대번에 짐작할 수 있었다.
반쯤 끼어버린 골목에서 엉거주춤 간신히 빠져나온 그의 눈에 도저히 믿을 수 없는 광경이 펼쳐졌다. 광장. 광장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그가 봐왔던 형태가 아니었다. 그의 눈앞에 펼쳐진 광장의 모습은, 철저히 사각형에 도심조경 및 예산에 철저히 맞춰져 조성되는 한국의 그것이 아닌 저 구대륙에서 으레 볼 수 있는, 다시말해 봉건제라는 역사적 체제에 의하여 발달된 둥근 공터를 중심으로 건물들이 에워싸고 있는 형태를 하고 있었다.
갑작스레 인식의 장막 위로 펼쳐진 그러한 초현실적인 광경에 그는 잠시 입을 벌린 채 멀뚱히 그 모든 광경을 지켜볼 수 밖에 없었다. 분명 아까까지만 해도 그가 속해 있었던 세계는 도시라는 세계였다. 문명이라는 거인이 품은 그 회색빛 위장을 그는 떠돌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아니었다. 마치 놀이동산에 방문했을 때 얼핏 느끼는, 꿈이나 환상의 몽환적인 기류가 이곳을 둘러싸고 있었다.
그리고 이내 주변을 두리번거리던 유진의 눈에 더더욱 기묘하기 그지없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설명했던 것처럼. 그가 있던 광장은 유럽의 그것을 본따 만든 듯하였고 그렇기에 그곳의 배치된 조형물들 또한 어떠한 현대적 이기를 띄고 있지 않았다. 그래. 유진이 바라본. 광장 중심의 아케이드 센터를 제외한다면 말이다.
그 아케이드 센터. 속된 말로 오락실이라 불리는 그 건물은 광장의 한 중간 면에 지어져 있었다. 낡고 약간은 고풍스럽다 느껴질 정도의 벽돌들로 지어진 주변의 세모꼴 지붕들과는 달리 철저한 직사각형 콘크리트로 지어진 그것은 근대의 한중간에 박혀버린 현대 그 자체를 상징하는 것 같았다. 너무나도 이질적으로 장식된 센터 곳곳의 네온사인은 어느새 완연해진 어둠에 대항하는 듯 그것을 빨아들이며 대신 빛을 뿜어대고 있었다.
무언가에 홀린 듯 유진은 아케이드 센터에 점점 다가갔다. 건물 입구가 살짝 위쪽에 자리잡고 있었기에 계단을 타고오른 그는 짙게 선탠 처리된 출입문을 열었다. 문은 의외로 아주 매끄럽게 열렸다. 마치 자신이 오는 것을 기다리고 있었다는 것마냥.
그의 예상과는 달리 요란한 소음이 그를 덮쳐오지는 않았다. 건물 내의 모든 게임기들이 꺼져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의 눈이 안쪽의 어둠에 서서히 적응하든 무렵 희미하게 어스름한 불빛이 안쪽에서 뿜어져 나오고 있다는 것을 그는 알 수 있었다. 유진은 어떠한 호기심에 이끌려 불빛이 발하는 곳으로 향했고 이내 그것의 정체를 알 수 있었다.
광원의 정체는 1인용 노래 부스. 요새 젊은 이들의 말로 하면 코인 노래방이라 불리는 구조물에서 뿜어져 나오던 조명이었다. 그는 잠시 아무말도 하지 않은 채 그것을 바라보더니 이내 힘없이 문을 달칵 열고 그 안으로 들어가 자리에 앉았다.
그가 그러했던 이유는 단순히 잠시 쉬기 위해서도 호기심 때문에서도 아니였다. 유진에게 역시 이곳은 추억이 깃든 장소였고 밀려드는 감상을 주체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가 고등학생 때의 기억이다. 10년.아니 12년 정도 되었을까? 상관 없었다. 이제 그건 아무 의미 없었으니까. 그의 삶. 그의 마음이 아직 온전하던 시절 그와 가족들은 토요일이 되면 외식을 하러 나왔다. 배를 채우고 난 뒤 그들은 서로 정해둔 것 마냥 근처의 아케이드 센터로 향해 유희에 몰두하며 배를 꺼트리는 것이 일과였다.
그리고 그 유희의 피날레가 바로 이 노래부스였다. 두사람이 들어가기에도 조금 부족한 이곳. 그 공간 속에 온 가족이 들어앉아 그가 노래하는 것을 들었다. 유진의 노래실력은 형편 없었다. 그런데도 그의 부모님은 뭐가 그리도 좋은지 연신 박수를 치며 그의 가락에 맞춰 미소지었다.
상념에 젖어가던 그는 순간 두손으로 얼굴을 감싸 쥐며 그것을 애써 끊어 내었다. 그렇다. 이곳에 들어오는 순간, 아니 들어오기 전부터 그는 알고 있었다. 도저히 어떻게 된 영문인지 모르겠지만 이 건물은 자신의 기억 속 그곳이라는 것을. 그런데도 그것을 기억하기 힘들고 너무나도 흐릿하게 느껴졌던 이유는, 그 기억이 더 이상 돌아갈 수도, 떠올려봤자 아무 의미도 없다는 것을 자신부터 너무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노래부스의 문을 열고 나선 유진을 의도적으로 얼굴을 잔뜩 찌푸렸다. 억지로 품은 이 불쾌함이 자신의 마음에 사무치는 그리움을 잠재우길 바랬던 것이다. 발을 구르다시피 힘을 준 걸음으로 그가 다시 출입문을 나선 순간. 그는 그 자리에 멈춰설 수 밖에 없었다.
폐허. 폐허였다. 그 단어 하나로밖에 설명할 수 밖에 없는 풍경이었다. 이상했다. 분명 아까까지만 해도 이 자리엔 고풍스러운 광장이 고즈넉이 자리잡고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회색 빛 아스팔트 대로가 건물 앞에 야만스럽게 주저앉아 있던 것이다.
그 순간 유진의 마음과 얼굴에 나타난 감정은 어떠한 조소였다. 처음 그는 그 모든 상황이 어떠한 질나쁜 장난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왜 있지 않은가. 요즘은 뜸하지만 과거 지상파 방송에서 자주 진행했던 소위 몰래카메라 같은 것 말이다. 그렇기에 그는 피식 웃으며 조금은 경쾌하기까지 한 발걸음으로 폐허가 되버린 대로 한복판으로 나섰다. 그러고는 때때로 과장된 놀란 표정을 허공을 향해 지어보였다. 어디선가 틀림없이 그를 비추고 있을 카메라와 스태프들을 만족시켜줄 그러한 반응들을 말이다.
장난스럽게 아무렇게 널려있는 소품들을 툭툭 건드리던 그의 발걸음이 이내 향한 곳은 전면 유리창들이 완전히 박살나 버린 채 버려진 편의점이었다. 그것들 중 완전히 산산조각난 유리조각을 발로 밟자 와그작 하는 소리가 났다. 그는 생각했다. 이것들은 만들 때 돈좀 깨졌겠군. 보통 이런 깨진 유리 소품들은 설탕을 녹여 만든다고 들었으니까.
아예 내친 김에 안으로까지 들어가보자 결심한 유진이 문을 연 순간. 그는 얼굴을 찌푸릴 수 밖에 없었다. 연기에 의한 것이 아니였다. 분명 느껴지는 강도는 아주 희미함에도 강렬하게 코를 찌르는 악취에 의한 본능적인 반응이었다. 이런 악취는 도대체 어떻게 조성한 거지? 설마 진짜 오물을 가져다 놓은 건가? 왼손으로 코를 부여잡은 그는 그렇게 생각하며 자신의 의문을 해소하기 위한 발걸음을 옮겼다. 악취의 근원지는 왼편의 계산대 아래쪽인 것 같았다. 약간은 조심스레 고개를 올려 그 아래를 바라보았다. 무언가 있었다. 붉다. 그리고 군데군데는 갈색이다. 고깃덩이?.. 아니다 무언가 섬유 조각이 붙어있는 것 같다. 저것은... 눈이다. 사람의 안구였다. 그것은 시체였다.
다음 순간 유진의 입에서 헛웃음이 터져 나왔다. 이정도까지 진짜같은 소품을 준비해두다니. 허술해빠진 요즘 방송답지 않은 치밀함이었다. 분명 자신이 조금만 더 속이 좁은 인간이었다면 분명 정신적 상해죄로 고소를 들먹일 만큼 사실적인 형체였으니 말이다.
그러나 그러한 내면의 자기합리화 과정에서도 그는 사실 알고 있었다. 본능적으로 말이다. 저것은 진짜였다. 진짜 사람의 시체였다. 그것을 알 수 있었던 이유는 다름 아닌 그것 들 사이로 희끗희끗 보이며 꾸물거리는 구더기들 때문이었다. 잠시만 보더라도 욕지기가 올라오는 그 광경은 그 어떠한 인공적인 조형도 아니였다. 오로지 시간이라는 지엄한 섭리만이 만들 수 있는 부패와 쇠락의 내음이 그 주변에 어느새 진동하고 있었다.
저 시체. 이 폐허. 그리고 이 현실. 이 모든 것들이 현실이라고? 도대체 어떻게?, 아니 그 이전에... 왜 자신이란 말인가?
순간 무엇보다 먼저 그를 덮친 것은 두려움이었다. 그 어떠한 단서로도 추론할 수 없는 상황 앞에서 호기심은 사치일 뿐이였다. 떨리는 몸을 정면으로 드러내며 비틀거리는 다리로 유진은 폐허가 된 도시를 헤메기 시작했다.
“이봐요! 이봐요!!! 누구 없습니까아아!!!”
목소리가 늘어질 대로 늘어지는, 우스꽝스럽기까지 한 절규를 유진은 내질렀다. 평소의 사소한 품위와 예의를 중요시하는 그라면 절대로 하지 않았을 행동이지만 지금의 그에겐 중요하지 않았다. 도움을 청하려는 목적도 있었지만 당장이라도 그렇게 절규하지 않는다면 자기 몸 안의 두려움이 미친 듯이 부풀어 올라 그대로 펑 하고 터져버릴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유진은 얼마간 거리를 미친 듯이 헤맸다. 어느덧 그의 몸은 땀으로 흠뻑 젖었다. 그것이 두려움으로 인한 식은땀인지 아니면 오랜간만의 격한 움직임으로 인한 것인지 알 수 없었으나 그것 덕분에 단 하나의 사실은 자명해졌다. 이것은 꿈이 아니라는 것. 지금 이것은 현실이라는 것을 말이다.
그러한 혼란스러운 와중 유진은 자신의 감각. 정확히는 모든 생명이 지닌 본능이 무어라 외쳐대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것이 말하고 있는 것은 간단했다. 공포.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자신에게 적의를 품고 있는 존재가 자신을 노리고 있다는 유일무이한 기제의 경종이 미친 듯이 울려대고 있었다.
그러한 공포는 시시각각 커져만 가고 있었다. 그러면서 발걸음은 서서히 무거워져 결국 자리에 멈춰 서버리고 말았다. 문득 그는 과거 괴수영화를 보면서 우두커니 서 있는 사람들을 보며 비웃었던 것을 떠올렸다. 그러나 이제야 그들의 심정을 이해할 것만 같았다. 분명 머리와 이성으론 움직여야 한다고 아우성쳤지만 발과 다리가 일제히 그 명령을 거부한 채 굳어버렸다.
그리고 서서히 유진은 알 수 있었다. 자신이 멈춰선 이 골목. 오른쪽으로 꺽이는 저 모퉁이 너머에 그 공포의 원인이 있었다. 아니 정확히는 다가오고 있었다. 맨 처음으로 반응한 감각은 후각이었다. 악취. 정확히는 마치 수년동안 단 한번도 씻지않은 들개에서나 날 법한 누린내가 그의 코를 마구 찔러댔다.
모퉁이 너머로 무언가가 보이기 시작했다. 발? 손? 아니다. 코다. 개과 동물의 길쭉한 주둥이다. 그놈은 아까 자신을 이곳으로 인도한 검은 고양이처럼 검은색이었으나 느껴지는 질감 자체가 달랐다. 깊어질 대로 깊어진 이 밤의 어둠을 완전히 빨아들인 듯 그 검은색은 너무도 탁했다. 저 높이 휘영청 떠오른 달빛조차도 무용지물일 것 같았다. 마침내 놈의 형체가 전부 드러났다. 가축화된 개에게선 찾아볼 수 없는 쫑긋 선 귀. 길고 날렵한 몸체. 틀리없다. 놈은 늑대였다.
늑대가 어떻게 이 도심 한복판에? 그는 아주 잠시 생각했지만 금세 그 자리를 공포가 다시 메웠다. 분명 다큐멘터리에서 보았길 늑대는 어지간해선 인간을 먼저 공격하지 않는다했다. 그런데 어째서 놈은 나를 보며 저리도 으르렁거리고 있는걸까?
모든 감각이 일제히 증폭된 것 같았다. 어찌나 그것이 예민해졌는지 으르렁거리며 쭈그러진 놈의 콧잔등 주름이 하나하나 눈에 보일 정도였다. 폭주하는 감각은 강제로 그 모든 광경을 하나하나 관조하게 만들었다. 불결하기 그지없는 누렇게 변색된 이빨은 면도날처럼 예리했고 눈. 세상에 그 눈. 수백명의 인간을 잡아먹은 피가 머금어진 듯 시뻘건 그 눈은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기절할 것만 같았다.
유진의 순간 세상이 한 점으로 빨려들어가는 감각을 느꼈다. 동시에 그의 시점이 미친 듯이 수축하더니 이내 원상태로 돌아갔고, 정신을 차린 다음 순간 그 검은 늑대는 이미 자신의 눈앞까지 달려든 뒤였다.
이 세상 모든 악의를 품은 듯한 붉은 눈이 자신을 노려보며 누런 송곳니를 자신을 향해 벌리는 그 순간. 유진의 머릿속엔 한 가지 생각이 스쳐지나갔다. 어쩌면, 딱 지금 이 순가까지 모든 것이 꿈일지 모른다. 나는 사실 두통약을 먹고 침대에서 잠에 든 채 불안정해진 무의식으로 인해 악몽을 꾸고 있고 이 늑대가 내 팔을 물어뜯는 순간 난 꿈에서 깨어날지도 모른다.라고 말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의 소망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늑대는 그가 본능적으로 치켜든 왼팔을 있는 힘껏 물어뜯었다.
아팠다! 정말로 미친 듯이 말이다! 마치 수백개의 예리한 도끼날. 그것들이 자신의 팔목에 세세하게 박힌 듯한 고통이 그에게 엄습하였다. 팔이 물어뜯긴 순간엔 비명조차 비르지 못했다. 자신에게 일어난 말도 안되는 현실이 고통을 압도한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지엄했다. 그가 틀렸다. 고통 앞에선 꿈이든 현실이든 의미 없었다. 고통은 모든 것에 공평했다.
유진은 뒤늦은 비명을 미친 듯이 지르며 놈을 떼어내려 안간힘을 지었다. 물고 있는 팔을 흔들면 흔들수록 고통은 심해졌으나 솟아오르는 아드레날린 덕분에 당장의 그는 알지 못했다. 그나마 자유로운 오른팔로 유진은 늑대를 사정없이 후려쳤고 그것이 운좋게 놈의 눈알에 적중했다. 으르렁거리는 포효 속에 깨갱거리는 소리가 섞여 들며 놈은 잠시 물러났다.
그 틈에 유진은 필사적으로 도망치기 시작했다. 몸을 일으키며 왼팔에서 뜨끈한 피가 흘러나와 자신의 얼굴을 적셨지만 개의치 않았다. 달리면서 더욱더 흘러나온 피는 임시방편으로 갖다대고 있는 상반신의 셔츠를 흠뻑 적시기 시작했다.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도 모른채 달리던 유진은 서서히 자신의 몸에 힘이 빠지고 있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돌아가지 않는 머리로 그는 그것이 과다출혈로 인한 쇼크 증상이라는 것을 간신히 유추할 수 있었다. 그러나 지금 그것이 문제가 아니였다. 지금 저 멀리서 아까보다 3배는 흥분하고 화가 난 듯한 예의 그 놈이 으르릉거리며 자신에게 다가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폭주하는 이성과 달리 그의 몸은 말을 들어주지 않았다. 다음 순간 그는 그대로 바닥에 넘어져버렸다. 몸이 마치 물에 젖은 행주마냥 그 어떠한 힘도 들어가지 않았다. 사냥감이 지쳤다는 것을 대번에 알아챈 그놈이 달려들었다.
그러나 유진이 생각한 최후는 오지 않았다. 전혀 예상 밖의 일이 일어났기 때문이다. 그가 드러누웠던 뒤편으로 정체 불명의 섬광, 이후 약간의 시간차를 두고 귀가 찢어들 듯한 파열음이 그와 늑대를 덮쳤기 때문이다. 근원지를 등지고 있던 유진에 반해 늑대는 그 엄청난 자극에 고통스러운 듯한 낑낑거리는 신음과 함께 이내 꽁무니가 빠져라 저멀리 줄행랑을 쳐버렸다.
유진은 자신도 모르게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정작 자신 역시 최후가 머지않았다는 것을 알고 있었음에도 말이다. 그의 팔에서 흘러나온 피는 어느새 얼굴 옆면까지 닿아 입가에 비릿한 맛이 느껴졌다. 그의 눈앞이 서서히 희부애졌다. 그러고는 마치 이 세상을 비추던 전등이 꺼지듯 시야가 암전되기 시작했다.
그가 마지막으로 느낀 감각은, 등 뒤쪽으로 정체모를 무언가가 자신을 잡아당겨 어딘가로 데려가고 있다는 것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