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빨간 안경, 노란 안경

by 하와이 앤

남편과 참 많이 싸웠다. 싸움이 끝났다고 생각하면 또 다른 이유로 다투고, 이번엔 정말 잘 지내겠지 하면 또 싸우고... 싸움이 시작되면 남편은 방에 들어가 나오지 않는다. 나는 그런 남편을 가만히 두지 못했다. 닫힌 문을 열고 들어가서. "왜, 얘기를 하다 말고 들어가는 거야 말을 좀 해보라고" 남편을 향해 끊임없이 소리쳤다. 그러나 어떻게 될 것 같은 싸움은 그냥 흐지부지 끝나고, 우리는 아무 일 없던 듯 일상으로 돌아가기를 반복했다.


지금 돌이켜보면 싸울 때마다 방에 들어가 있는 남편을 그냥 내버려 두고 지켜봤으면 어땠을까?


시간이 흘러도 싸움은 끝나지 않았다. 싸우고, 다시 아무렇지 않게 일상으로 돌아가고, 또 싸우고...

나는 남편과는 더는 싸우고 싶지 않았다. 싸우는 순간 고통이 너무 컸기 때문이다. 그래서 문득, "내가 왜 그렇게 남편과 자주 싸우는 걸까?"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남편과의 관계를 진지하게 돌아보게 된 계기였다.


남편이 나를 이해하지 못하거나 공감을 해주지 않으면 쉽게 상처받곤 했다. 왜 나는 그렇게 쉽게 상처를 받는지 그 이유가 항상 궁금해했다. 그러던 중, 신문에 실린 오은영 선생님의 글을 읽고 나서야 비로소 깨달았다. 나는 5남매 중 장녀로 태어나 부모님의 잦은 다툼 속에서 힘든 어린 시절을 보냈다. 그때 충분한 사랑과 관심을 받지 못한 탓에 내 안에는 여전히 사랑받고 싶어 하는 어린아이가 있었다. 나는 그런 나 자신이 너무 애틋했다. 그래서 남편이 나를 알아주고 이해해주지 않으면 서운함과 원망이 커져 싸움으로 이어지곤 했다.


어느 날 싸우던 중, '우리는 같은 문제를 두고 왜 이렇게 다른 얘기만 하고 있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남편 역시 나랑 비슷한 감정을 느꼈던 것 같다. 남편은 내게 "내가 그렇게 얘기했는데 너야말로 왜 나를 이해해 주지 않는지. 너는 네 얘기만 하고 있다"라고 말한 적이 있었다. 그제야 깨달았다. 나는 내 이야기만 하고 있었고, 남편도 자기 이야기만 하고 있었던 것이다. 서로 원하는 방향을 고집하다 보니 갈등은 해결되지 않고 계속 반복되었다. 그 순간 문득 , "아 나는 빨간 안경을 쓰고 있고, 남편은 노란 안경을 쓰고 있구나. 그래서 계속 똑같은 얘기를 되풀이하고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같은 문제를 두고 서로 다른 색깔의 안경을 끼고 바라보고 있으니 결론이 나지 않았던 것이다. 이 사실을 깨닫고 나니, 내가 서운해했던 만큼 남편도 나에게 서운함을 느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싸움이란 늘 자기 입장에서만 보기 마련이니까.


우리가 다퉜던 많은 순간들, 그 시간이 너무 힘들었지만 돌아보니 꼭 나쁘지만은 않았다고 생각한다. 그 과정을 통해 내가 왜 쉽게 상처를 받는지, 남편에게 왜 그렇게 많은 것을 바랐는지를 알게 되었으니 말이다. 이제는 서로를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도 조금씩 알게 되었다. 남편에게서 기대하는 바가 충족되지 않아 서운해하기보다는, 처음부터 그 기대를 조금 내려놓는 편이 더 나을지도 모른다. 싸움을 하지 않고 살고 싶지만, 또 다투는 날이 오겠지. 그때는 좀 더 성숙하고 더 나은 방식으로 문제 해결을 하길 기대해 본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