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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옥자씨 Mar 04. 2021

01. 엄마, 나 임신했어

저도 엄마가 되었습니다.



2020년 10월에 결혼한 새댁이자 이제 9개월 차가 된 임산부이다.


결혼까지 우여곡절이 많았다. 이썰을 풀자면 밤이 새도록 말해도 모자라지만 어쨌든, 결혼 날짜를 여러 번 바꾸고 바꿔 드디어 확정일을 잡은 상태였다.


둘 다 결정장애가 있어 예식장을 고르는 것도 남들은 많아도 5개 정도 보는 것을 우린 도대체 얼마나 많은 예식장을 돌아다녔는지 모른다.

(예식장도 몇 번을 계약을 했다 바꿨다 했는지 모르겠다)


그렇게 예식장도 예약을 완료하고 무덥기 시작한 6월, 상견례도 무사히 마치고 스드메까지 계약을 완료했다.








우리 집안 식구들은 다 자궁이 약했다.

할머니, 엄마, 이모까지 모두 수술 이력이 있었다.

나 또한 산부인과에 진료를 받으러 갔더니 혹시 나중에 결혼해 임신 계획이 있다면 병원에서 상담을 먼저 받으라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어 늘 걱정을 하고 있었다. 행여나 임신이 안될까 봐.

내 나이도 걱정이 되었다. 30대 중반을 향해 힘차게 달려 나가고 있었고 집안 내력에 병원에서 그런 얘기까지 듣고 나니 남자 친구에게 걱정이 된다는 말을 달고 살았다.


그러니 결혼을 약속하고 난 뒤에는 임신이 언제 되어도 상관없다 생각해 특별히 조심하거나 하진 않았다.

임신이 안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더 컸으니 오히려 임신이 되면 더 좋겠다는 생각을 했었고, 피임을 하지 않은 그달엔 혹시 임신이지 않을까 생리를 하기 전까지 마음을 조리며 지냈었다.


그러다 7월,  결혼을 약속하기 전부터 남자 친구의 가족행사에 함께 참석을 했었는데, 지금의 시아버님의 생신으로 온 가족이 모여 참치집에서 식사를 하던 날이었다.

회라면 죽고 못살아 주변에서도 유명한 회 킬러인 내가 그날따라 회가 그렇게 당기지 않았다. 심지어 참치회인데! 그리고 그날따라 몸에 열감이 있었는데 심한 편은 아니라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다음날 남자 친구와 그의 동생, 사촌들과 함께 할머니 산소에 들렸다가 남한산성에서 백숙을 먹으며 동생과 함께 막걸리를 시켜먹었는데 술이라면 또 죽고 못 사는 내가 그날따라 컨디션이 별로 였고 술이 당기지도 않으면서 분위기에 휩쓸려 홀짝거리며 마셨더랬다.


사실 그 전 달에 임테기를 했는데 오류로 두줄이 떴고 새벽에 잠 한숨을 못 자며 여러 임테기를 해보았으나 한 줄- 포기하지 않고 아침에 병원 문이 열리기가 무섭게 달려가 확인했었지만 비임신이었다.


임신이 어려운 몸이 아닐까 걱정을 했지만 아직 결혼 전이니 임신에 본격적(?)이지도 않았음에도 매번 임테기에 한 줄이 뜨면 실망감이 매우 컸었다. 그러다 두줄을 보던 순간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났었고 그 뒤 한 줄에서 벗어나지 못했을 땐 마음이 싱숭생숭했었다.

그래서 그런가 앞으로는 기대를 하지 않겠다고 다짐을 했고 이번 달에도 당연히 아니겠지-했었다.


그날 저녁 집에 들어가 그럴 일은 없을 거라며 다시 한번 마음 다지기(?)를 하면서 지난달에도 증상 놀이에 속았기도 했고 지금 임테기를 해도 두줄이 나올 시기도 아니었기 때문에 얌전히 생리 때까지 기다려봐야겠다고 생각했지만 이미 머릿속에 임테기를 떠올리자 마자 나도 모르게 쿠팡 로켓 배송으로 임테기를 주문하고 있었다.


역시 쿠팡.

월요일 아침 출근 전에 새벽 배송으로 도착한 임테기 한 뭉텅이 속 하나를 꺼내 들고 별생각 없이 화장실로 가 테스트를 해봤다.


지난달에 두줄이 뜬 건 한 줄이 뜬 임테기를 차마 바로 버리지 못하고 놔뒀다가 시간이 좀 지난 뒤에 확인해보니 두줄이 나타난 경우였다.

물론 시약선일 확률이 높긴 했지만 한참 뒤에 두줄이 떠서 병원을 갔더니 임신이었다는 사람들이 많았기 때문에 기대를 했었던 거였다. (그리고 두줄을 보니 일단 시약선이거나 불량이라는 생각보다 임신이 되었구나!라는 생각이 지배적이었다.)


그런데, 이번 임테기는 소변이 닿고 몇 초 후 곧바로 두줄이 나타났다.

우선 지난달의 여파가 있어서 그런가 처음엔 멈칫했다. 지난번처럼 눈물이 나거나 하지 않았다. 그냥 얼떨떨한 느낌과 머릿속이 멍해지는 느낌, 이건 뭘까라는 생각이 들면서 조금 어이없는 웃음이 났던 것 같다.

그리고 혹시 모르니 한번 더 해봐야겠다 싶어 나오지 않는 소변을 쥐어짜 곧바로 다음 임테기를 해봤다.

몇 방울 나오지도 않는 소변이라 안 되겠지 하면서.


그런데 그 몇 방울 되지도 않은 소변에 임테기는 반응하며 다시 두줄이 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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