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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혜숙 Apr 15. 2022

5분 지각

사소한 문제의 시작

약속 시간에 5분 늦는 것은 심각한 문제는 아니다. 친구가 5분 늦게 약속장소에 나왔다고 화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런데 약속할 때마다 5분 늦는다면 좀 짜증이 날 것이다. 물론 카톡이나 문자로 5분 늦는다고 말해줘도 짜증이 완전히 없어지지는 않는다. 은근히 나는 그 친구의 인격에 대해 좀 의심을 해볼 것이다. 매사에 꼼꼼하지 못하거나 일터에서 동료들에게 불편을 주지 않을까 하고 의심을 해 볼 수도 있다. 만약 내가 사업을 시작한다면 약속 시간 마다 늦는 친구하고 같이 일하자고 제안하지는 않을 것이다. 5분 지각은 신뢰를 갉아먹는 벌레다.    

  

학생들도 5분 늦는 경우가 있다. 세 가지 부류의 학생이 있다. 5분 일찍 오는 아이, 정각에 오는 아이 그리고 5분 늦는 아이. 5분 일찍 오는 아이들은 정말 공부를 잘한다. 즐겁게 수업하는 학생들은 미리 와서 수업을 기다린다. 반면 매번 5분 늦으면 나는 정각에 오라고 부탁을 한다. 이 버릇이 고쳐지는 때도 있지만 대부분 바뀌지 않는다. 20년 넘게 과외를 해 본 경험으로 볼 때 5분 늦게 오는 아이들은 성적이 좋지 않다. 이 아이들이 아마도 학교에 매일 지각하거나 친구들과 약속을 지키지 않을 것으로 생각하지는 않는다. 게으르거나 준법정신이 없다고 판단하기는 건 좀 위험하다. 늦는 이유가 좀 무엇인지 알아보면 생각을 좀 달리 할 수 있다.      


늦는 이유는 일단 수업에 오기 싫어서 그렇다. 수업 내용이 어렵다고 느끼거나 학습 습관이 전혀 잡히지 않아 숙제할 시간을 확보하지 못한 경우다. 수업오기 직전까지 단어시험 볼 단어를 외우느라 늦는다.


아이들 표현으로 아이돌 ‘덕질’을 하느라 세월을 다 보내고 밤 11시나 돼서 공부한다고 시작하면 피곤이 군대로 몰려와서 책상에 쓰러져 이도 안 닦고 자는 게 십중팔구 분명하다. 또는 너무 많은 과외 학원 숙제를 감당하느라 지쳐서 조금이라도 쉬고 싶어서 그렇다. 5분 지각해서 90분 수업 시간의 5분이라도 줄여보고자 하는 무의식의 발로이다. 그런 아이들은 수업 시간 중간에 화장실도 잘 간다. 화장실에 가서라도 쉬고 싶어서 그렇다. 이 쉬고 싶은 아이들이 생일 선물로 바라는 것은 생일날 사교육 수업 다 빠지고 게임 24시간 방해받지 않고 하는 것이다. 나는 생일날 놀아야 해서 수업 안 온다고 하면 흔쾌히 그러라고 한다. 어른들도 생일날은 24시간 놀고 싶지 않은가?      


5분 지각생은 영어의 두 날개 중 하나가 꺾여 있는 경우가 많다. 영어를 공부에는 두 개의 날개가 있는데 하나는 단어고 하나는 문법이다. 보통 단어는 암기하는 것이고 문법은 이해하는 거라고 말하는데 나는 그 구별이 무의미하다고 생각한다. 암기와 이해는 너무 붙어 있어서 구별하기 힘들다. 암기는 잘하는데 이해가 안 된다거나, 이해는 잘하는데 암기를 못한다는 것은 잘못된 표현이다. 이해와 암기는 서로 떼려야 뗄 수 없는 쌍둥이다. 우리가 운전을 할 때 네비게이션을 보며 목적지에 도착 시간을 계산하고 페달과 운전대를 조정하고 음악을 들으면서 차의 실내온도를 조절한다. 이 모든 작용을 우리가 구별하지 않듯이 암기와 이해는 서로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돌아간다. 요즘은 단어 암기장이 너무 잘 편집되어 있어서 어원이나 접두사 접미사 설명을 해 주거나 그림으로 표현되어 있다. 그래서 단어를 ‘이해’하도록 도와준다. 또 외운 단어를 독해책에서 만나면 문맥을 통해 단어를 더욱 실제적 쓰임을 ‘이해’하게 된다.     


같은 방법으로 문법은 설명을 듣고 읽으면서 이해해야한다. 그러나 한번 배웠다고 다 장기기억으로 남는 것은 아니다. 단계를 조금씩 올리면서 반복 학습을 통해 문법은 ‘암기’해야한다. 이해는 했는데 암기를 하지 않으면 지식이 머리에 남지 않으므로 이해한 것이 아니다. 더 나아가 작은 디테일까지 ‘암기’해야한다.      

예를 들어 관계대명사를 배우면 주격, 목적격, 소유격이 관계대명사가 있다는 것을 ‘이해’한다. 그러고 나서 관계대명사의 생략, 전치사가 붙은 관계대명사, 관계부사와 차이점 구별, 관계대명사의 계속적 용법 등등 더 자세한 세부사항은 관계대명사라는 개념 이해를 통해 ‘암기’해야 하는 것들이다. 한편 암기한 문법은 실제 글을 통해 이해를 확실히 할 수 있다.     


이 단어와 문법의 중 하나가 취약하게 된 학생들은 보통 두 가지 숙제를 다 하자니 하고 싶지 않거나 시간을 내지 못해서 더 쉬워 보이는 것 한 가지만 하다가 결국 한 쪽 날개를 잃어버리는 것이다. 그리고는 5분 지각생이 된다. 날개가 없어진 5분 지각생의 성적은 떨어진다.     


‘따끔하게’ 혼낸다고. 다음과 같은  말을 하면 마음에 상처만 낼 뿐이다. 모멸감을 느끼게 해서 마음을 움직이게 할 수 없다.   

   

“너 그렇게 하면 서울 내는커녕 4년제 대학도 못 간다.”

“너 같은 아이한테 투자하는 너의 부모님이 불쌍하다.”     


그럼 어찌하면 좋을까?      

1. 너무 많은 사교육 수업을 줄인다. (하루 자습시간 3시간이 안 되면 사교육 과잉상태)

2. 스마트폰 사용으로 숙제 시작이 너무 늦어지는 것을 막아주어야 한다.

2. 감당할 수 없이 심히 많은 숙제를 내는 학원이라면 그만 다녀도 좋다.

3. 위에 적은 말을 서슴지 않고 하는 선생님은 떠나는 것이 좋다.

4. 영어 수업이 너무 싫어진 상태라면 쉬어도 좋다. 몇 개월 쉰다고 뭐가 그리 바뀌지 않는다.

5. 쉬면서 내가 왜 영어 공부를 해야 하는지 이유를 알아보고, 다시 영어의 두 날개를 만들어 비상하는 꿈을 꾸게 해주고 초심으로 다시 시작하면 된다.     


소아정신과 의사인 서천석 선생님의 말씀이 백번 옳다.

‘우리 사회에서 필요한 것은 매와 처벌이 아니다. 분노를 조절하고 진지하게 타협하는 기술의 부족이다’     


아이들은 야단친 내용을 기억하지 않고 야단맞은 감정만 기억한다. 언어폭력을 교육이라고 착각해서는 안 된다. 육아와 교육은 영어 교육에서의 암기와 이해처럼 한 몸이다. 부모는 아이가 태어나서 처음 만나는 교육자이고 사교육 선생님도 부모의 마음으로 가르쳐야 하기 때문이다. 아이가 5분 지각을 계속할 때는 서천석 의사 선생님 말씀처럼 버럭 화를 내지 않고, 어떻게 하면 늦지 않을지 아이에게 대안을 내도록 하고 아이가 할 일을 스스로 하도록 타협해야 한다. 부모는 교육자일 뿐만 아니라 협상가이어야 한다. 먹이고 입히는 것을 넘어 5분 지각생과 협상해 나가는 것이 진짜 육아이자 교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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