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가 안되면 아래로 가자

<틸리와 벽>

by 민혜숙

정호 : 쌤, 저는 고등학교 6개월 다니면서 죽을 거 같아서 학교를 나왔어요.

나 : 지금은 괜찮아?

정호 : 네. 안구건조증, 허리통증, 치질이 다 나았어요.

나 : 학교생활이 지옥이었겠구나.

정호 : 근데 학교를 나왔는데 이젠 너무 불안해요.


정호는 고1, 9월까지 학교를 다니다가 자퇴하고 검정고시반에서 나와 함께 수능 영어를 준비하는 친구이다. 시골 중학교에서 전교 회장도 하고 친구들과도 아주 잘 지냈고, 그래서 지역에서 가장 빡쎈 남자 고등학교를 가기로 결심했다. 서울에 멋진 대학에서 정치외교학을 전공하는 꿈을 꾸면서 말이다.


빡센 고등학교가 집에서 멀어서 기숙사 생활을 하면서 생활이 완전히 무너졌다. 자정에 취침시간이었는데 새벽 2시까지 공부하는 아이들이 많아서 2시까지 공부하고 잠이 들면 6시에 기상을 해야 했고 수업시간에 자신도 모르게 잠에 빠지는 일이 매일 생겼다. 아침부터 밤까지 계속 앉아 있다 보니 안구건조증, 허리통증, 치질이 차례로 걸렸고 ‘학교 안’에서 고민의 시간을 거쳐 ‘학교 밖’ 학생이 되었다.


중3까지 사교육 경험 없이 시골 작은 학교를 편안히 학교를 다닌 학생에게 빡쎈 고등학교 기숙사 생활은 상상할 수 없는 감옥이었다. 마치 우리나라 모든 고등학생이 이런 감옥생활을 하고 있고 한국 교육은 쓰레기라고 말하려는 것은 아니다. 유럽의 어느 나라, 예를 들어 핀란드, 독일, 덴마크 같은 나라의 교육은 이상적이고 한국의 입시 교육은 인간 말살적이라는 대안도 없는 비판은 수십 년 동안 책, 블로그, 기사에서 읽었다. 피로도가 높아졌다.


채사장이 쓴 <시민의 교양>이라는 책에서도 덴마크는 경쟁이 없는 교육으로 행복지수가 세계 1등이라는 예가 나온다. 물론 한국 교육에서 경쟁이 내면화되는 문제를 지적하기 위한 것이고 작가의 의도를 충분히 이해하지만, 이런 이분법적인 비교는 사교육에 종사하는 나 같은 사람에게는 너무나 맥빠지는 소리다. 학생 행복지수가 1등은 덴마크고 한국은 조사 국가 64개 국가 중에 64위, 명백한 꼴찌다.


이런 선언은 학생이든 선생이든 부모든 그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는 말은 아니다. 서울대학교를 100개 만들어도, 입시제도를 아무리 바꿔도, 학술적으로 연구가 아무리 많이 되어도, 남과 비교해서 비교 우위를 중요시하는 사람들의 의식이 바뀌고, 양질의 일자리와 복지정책이 가능한 국가 경제 구조가 개선되는 일이 없이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정호의 예는 한국 고등학생의 행복지수가 전 세계 꼴찌라는 것을 대변한다. 그러나 이 비판과 규탄이 정호에게 도움이 되지는 못한다. 정호가 겪은 기숙사 생활은 대한민국에서 일부 비인간적이고 강압적인 극보수 사립학교에서 볼 수 있는 현상이다. 그리고 고1 첫 학기에는 남학생 신입생들이 경쟁적으로 잠을 안자고 효율도 없는 공부를 하며 버티는 일종의 기싸움 같은 일이 벌어져 더욱 경쟁 지옥불이 활활 타오르고 있었음에 분명하다. 지옥불을 견딘 나의 학생 중에는 올해도 의대를 가고 명문 대학을 간 학생들도 있다. 이런 경쟁을 견딘 학생들에게도 마땅히 보상이 있어야 하고 칭찬해 주어야 한다. 그렇지만 경쟁에 심신이 망가져 가는 경우에 학교를 나와도 괜찮고 학교 밖에서도 얼마든지 학생의 정체성으로 가지고 원하는 대학에 갈 수 있는 검정고시 제도와 EBS가 있다는 것은 참 다행한 일이다.


새해 첫 수업에 정호와 함께 읽어보려고 레오 리오니의 작품인 <틸리와 벽>을 다시 책꽂이에서 꺼내 들었다. 정호 같이 학교 밖에 있는 친구들은 경쟁에서의 해방과 동시에 하루 24시간의 무한한 자유가 주는 두려움과 불안을 경험한다. 학교를 떠나 좋은 성적을 내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불안한 영혼에게 이 책은 주먹에 힘을 쥐게 하는 이야기이다.


주인공인 틸리라는 생쥐는 이 불안을 새로운 가능성으로 읽도록 해준다. <틸리와 벽>에서 틸리는 끝도 없이 솟아 있는 벽을 바라본다. 다른 친구들은 벽이 있는 줄도 모른다. 틸리는 친구들가 함께 열심히 벽을 깨보려 하지만 실패하고 만다. 그러다 어느 날 작은 벌레 하나가 검은 흙을 뚫고 굴을 파는 것을 본다. 틸리도 신이 나서 파고 파고 또 판다. 열심히 파고 나서 땅 위로 나오니 눈부시게 태양이 쨍 비치고, 벽 반대 쪽에도 틸리와 같은 평범한 생쥐들이 있고 그들은 땅 밑에서 굴을 통해 올라오는 틸리를 환영한다.


기숙사에서 살며 좋은 등급을 위해 하는 공부는 아마도 정호에게는 틸리가 바라보는 벽이었을 것 같다. 학교를 떠난다는 생각, 자퇴생이라는 부정적 인식도 높은 벽이다. 정호가 그 벽 앞에 서 있기만 한다면 학교에서 도망 나온 학교 부적응자나 공교육 기피자이겠지만, 벽 아래로 굴을 파서 벽 반대쪽으로 간다면 유연한 사고로 자신의 행복을 희생하지 않고 대학에 간 학생으로 기억될 것이다. 이런 학생들이 많아지도록 잘 가르치는 것이 멘토 선생들의 역할이기도 하다.


고등학교의 내신 등급제는 청소년으로 하여금 성적이 좋아야 가는 대학과 좋은 인생을 등가로 인식하게 하는 제도이다. 대략 10% 정도의 사람들만이 안정적인 경제생활을 할 수 있다는 신념, 평균 정도 되는 성적으로 수치심을 느껴야 하는 구조는 경쟁의 정당성을 부여한다. 경쟁해서 얻은 것만이 가치 있는 것이고, 경쟁에서 이긴 사람만이 존경받을 만하다는 이 의식구조는 생쥐 틸리가 마주한 높은 벽이다. 다른 생쥐들이 있는 줄도 모르는 이 벽은 내재화된 경쟁이다.


틸리는 벽을 처음에는 기어오르거나 못으로 구멍을 내보려 한다. 정면으로 돌파하고 싸우는 태도를 취하다가 땅으로 굴을 파는데, 벽을 관찰하고 재구성하고 해법을 찾는 모습이 이 그림책의 너무나 귀여운 반전이다. 오르는 것이 아니면 내려가는 쪽을 택하는 유연함이 벽이 장애물 아니라 새로운 세계를 가기 위한 하나의 과정이 된다. 좀 지치고 힘들게 하는 시련이긴 하지만 무한 경쟁과 서열 싸움은 아니다.


틸리가 혼자서 땅을 파듯 혼자 공부하면서 수능의 벽 아래 동굴을 잘 만들어 가길 바라는 마음이다. 정호가 주인공 틸리가 땅을 파듯 수능 공부라는 노력을 하고 나면 벽 저편에서 새로운 세계를 경험하고 자신의 용기와 노력을 보상받을 수 있다고 확신하며 공부해야 불안이 사라질 것이다. 그 확신의 불꽃을 꺼지지 않게 하는 사람들이 나 같은 멘토 선생님이기도 하다.


이 이야기는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기 6개월 전에 출간되어 화제가 되었다고 한다. 자신의 환경을 벽으로 여기지 않고 유연하게 변화를 직면하고 그 안에서 성장하려는 사람들과 내면화된 경쟁에서 자유롭게 자신을 세우는 사람들이 많아지면 좋겠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등수를 매겨서 불행하다고 하면서도 행복에 대해서도 등수를 매기는 연구와 조사는 모순적으로 보인다. 행복지수 순위, 조사 국가 등수 따위는 신경 쓰지 않아도 되는 사회를 우리 모두는 간절히 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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