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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혜숙 Apr 20. 2022

공부는 재미있어야 한다고요?

고등학교 영어 내신시험준비 상세설명서

나 : 120번 답이 뭐지?

단솔 : 틀렸는데 정답이 뭔지 모르겠어요.

나 : 앞으로 틀리면 정답이 뭔지 꼭 확인해 봐!  

     (문제 풀이 진행 후)

     자 그럼 251번 답은 뭐지?

단솔: 아... 제가 채점을 못했어요.

나 : 채점을 안 하면 문제 안 푼 거와 같아. 꼭 채점해와라!

     (문제 풀이 계속 진행 후)

     자 그럼 385번 답은 뭐지?

단솔 : 아... 제가 300번까지 풀었어요. 그 뒤는 다 못 풀었어요.

나 : 아이고... 다 못 풀면 어떡하니! 시험이 열흘밖에 안 남았는데.

     많이 피곤해 보이네. 어젯밤에 잠을 못 잤어?

단솔 : 네...
 나 : 휴우! 초콜릿 하나씩 먹고 하자. 나도  좀 힘들다.

     (나는 물을 벌컥벌컥 마신다. 벌써 1시간 가까이 쉬지 않고 떠들고 있었다.)     


도대체 이 문제 풀이는 몇 번까지 해야 하나? 맨 뒤 페이지로 가보니 655번이 끝이다. 이제 막 고등학교 1학년이 된 여학생 단솔이의 하얗고 예쁜 얼굴이 더욱 하얗게 보였다. 고등학교 올라와 첫 시험인 중간고사를 준비하면서 아이들은 풀어야 하는 문제들을 보고 얼굴이 다들 하얗게 질려 버렸다. 무슨 문제가 이리도 많은가? 부모님들은 아시는지 모르겠다. 왜 이 많은 문제를 풀어야 하는지.     


고등학생이 되면 알게 되는 이상한 관행이 있다. 영어 과목일 경우 중간 기말고사에 교과서만 시험에 출제하지 않는다. 고등학생이 되면 연 4회, 3월 6월 9월 11월에 실시되는 수능 모의고사라는 시험을 보는데 이 모의고사 지문이 시험 범위의 50% 이상을 차지한다. 영어 수능 시험은 45문제로 구성되고, 1~17번까지는 듣기 문제이고 18~45번까지는 독해문제이다. 총 28문항에 해당하는 독해문제의 지문이 시험 범위가 된다. 보통 다루어야 하는 지문은 20개 정도 된다.      


그런데 교과서만 학교 수업시간에 공부하고 이 20개나 되는 많은 지문에 대해서는 학교에서 전혀 전혀 가르치지 않는다!!!!      


나는 이 사실 때문에 영어 과외 밥벌이를 할 수 있는 것이다. 사교육과 공교육의 ‘공모’가 이루어진다. 시험 범위를 나눠서 가르친다. 학교는 교과서를 과외선생은 모의고사 시험범위를. 학교에서 잘 가르쳐 주면 왜 사교육이 필요하겠는가? 학교에서 안 가르치는 것은 사교육에 가서 배우라는 뜻이 아니고 뭔가? 물론 이 많은 지문을 해설해주는 인터넷 강의들이 많이 있다. 그런데 문제는 이 시험을 3월에 보고 중간고사는 4월에 있으니 4주 정도밖에 준비할 시간이 없다. 시험 바로 다음 날 해설 강의가 나오는 것도 아니다. 보통 1주일~10일 정도 지나야 해설 강의를 듣거나 지문 분석지를 얻을 수 있다.      


3주 만에 20개 지문의 단어 숙어 암기하고, 해석을 완벽하게 한 후, 문법적으로 어려운 부분을 분석해서 문법 문제 대비를 하고, 글의 흐름을 익혀서 글의 순서 문제를 예상하고, 모든 지시사와 접속사를 관찰해서 문장 삽입문제도 준비해야 한다. 그러다 보니 모의고사 한 지문에 대한 이러저러한 예상문제를 내야 하고 주관식 문제까지 대비하다 보면 한 문제당 20~30문제는 푸는 것 같다. 얼추 계산해도 500문제 넘게 나온다.     

 

이 모의고사 지문을 다른 문제로 변형해서 예상문제가 유료사이트에 업로드되면, 나는 아이들에게 프린트해서 주고 숙제를 낸다. 그리고 답을 맞히면서 수업을 진행한다. 이제 막 고등학생이 된 아이들은 생애 첫 모의고사인 3월 모의고사 점수에 실망하고, 1주일 후 100페이지가 넘는 지문 분석지에 얼굴이 하얗게 되고, 10일 후 600번이 넘는 문제에 뒤로 넘어간다.      


이런 공부에서 어떻게 재미를 찾겠는가? 공부가 재미있어야 한다는 논리에 맞는 Fun fun English는 중학교에서 끝이다. 아니 어쩌면 초등학교에서 끝이다. 고등학생에게 공부는 재미가 아니라 ‘의미’이어야 한다. 의미는 이다지도 지루한 공부를 왜 해야 하는지 알게 해주고 이 어려움을 이겨내게 하지만, 그 의미를 가슴에 품고 공부하는 학생은 열이면 한 명이 될까 말까다.     


주관식 문제를 준비하는 건 더욱 힘들다. 흔하지 않은 표현이 있는 문장, 매우 문어적인 표현이라 도치와 삽입과 문장부호가 있는 문장은 모조리 외워야 한다. 그래야 한 문제당 5점~6점에 해당하는 영작 문제를 맞힐 수 있다. 이게 암기의 하이라이트다. 단어 암기와 해석까지는 하겠는데 이 기이한 문장들을 암기하는 것은 영혼을 갈아 넣어야 한다. 고등학교 영어 내신 시험의 가장 큰 난관은 영작 문제 3개를 맞추는 것이다. 보통 한 문제는 쉽고 2문제는 어렵다. 두 문제를 깨끗이 포기하면 되는데 그래도 해 보겠다고 낑낑 매다 보면 다른 문제를 풀 시간이 모자란다. 그래서 믿었던 객관식 문제도 많이 틀린다.      


그러다 보면 90점대 받는 소망은 달나라로 간다. 80점대까지는 자존심을 지킬 수 있지만 70점대 60점대로 내려간다. 90점은 받아야 1등급이고 80점대는 2등급 70점대는 3등급... 이런 식으로 등급이 매겨진다.

왜 고등학교에 가면 성적이 떨어지는지 설명이 된다.          

 

대충 경험으로 추정해 보건대, 90점 이상을 받는 학생의 비율은 다음과 같다.

초등학교 저학년 : 50%  초등학교 고학년 : 30%

중학생 : 20%

고등학생 4% (다시 말해 1등급)     


<공부가 가장 쉬웠어요> 라는 책이 있다. 장승수 변호사님이 2000년대 초반에 쓰신 책이다. 굴착기 조수, 택시기사, 가스배달, 공사장 막노동을 하면서 5년 만에 서울대 수석을 하신 분이다. 그런데 요즘 아이들은 육체적으로는 엄청나게 편안하다. 10~20분 걸어가면 나오는 학교도 차로 데려다주고, 나에게 과외 수업을 받으러 올 때도 아이들은 부모님 차를 타고 온다. 90분 수업이 끝나면 집에 데려가려고 부모님은 또 오신다. 육체는 한없이 편한 아이들에게 공부는 쉬운 것이 아니라 가장 어려운 것이다. 그것에 공감하지 못하는 부모님은 동네 도서관에 가서 10시간 정도 앉아서 책을 보시면 아이들이 왜 표정이 그 모양인지, 왜 말을 그따위로 하는지 이해가 될 것이다. 모든 부모는 1등급인 4% 안에 들기 원한다. 초등학교 때는 5등급에 들어도 기뻐하던 부모가 11% 안에 들어도 (2등급을 찍어도) 공부 더하라고 한다. 아이들은 정말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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