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지 어머니께 카톡이 왔다.
‘그동안 가르쳐 주셔서 감사했습니다’라는 감사의 말씀과 함께 아이를 그만 보내겠다 하신다.
마음이 무척 아프고 섭섭하다. 민지는 나와 중1부터 엊그제까지 공부를 같이 한 학생이다. 이제 막 초등학생의 티를 벗은 중학교 1학년 때부터 민지와 공부를 시작했는데 이제는 다 큰 처녀가 되었다. 3년 동안 자라나는 모습을 봤는데 이제 이별이다. 3년이나 같이 공부했는데도 민지는 나에게 그만두겠다는 언질을 주지 않았고, 수업 종료에 대한 메시지를 본인이 아니라 엄마를 통해 전했다. 회자정리 會者定離 라는 말이 있지만 헤어짐은 언제나 아쉬움이 가득하다. 학생들과 이별 방법은 두 가지가 있다.
과외 졸업과 과외 자퇴.
학교도 아닌 사교육에 이런 용어를 써도 될지 모르겠지만 졸업과 자퇴라는 말이 명료해서 쓰기로 했다. 과외 졸업은 스스로 공부할 수 있는 역량을 키운 고등학교 1학년이나 2학년 학생이 나의 도움이 더 필요하지 않아 떠나는 경우와, 중3까지 나와 공부하고 지역에서 좀 떨어진 고등학교에 진학해서 더 같이 공부할 수 없는 경우다. 과외 자퇴는 나와의 수업이 잘 진행되지 않아 스스로 그만두는 경우다. 민지는 과외 자퇴에 해당한다.
아이가 과외를 그만 다니겠다고 하면 어떻게 반응해야 할까? 선생님으로부터 여러 번 카톡이나 전화 등으로 아이가 숙제를 잘 못 해옵니다, 5분 10분씩 지각을 합니다, 갑자기 아프다고 수업에 못 올 때가 있습니다 등의 말을 들었다면 과외수업을 그만두는 것이 맞다.
한번이 아니라 두세 번 이상 교사로부터 문제가 있다는 말을 들었다면 다른 과목의 사교육에도 문제가 있다고 짐작해도 무방하다. 학습이 잘 진행되지 못하니 수업의 의미가 없다는 뜻이다. 그런 메시지를 부모에게 전할 때쯤이면 그런 행동을 교정해보려는 교사도 지쳐 있다는 뜻이다. 예전에는 숙제를 한결같이 안 혼날 만큼만 해오고 지각하는 학생은 내 쪽에서 수업을 종료하자고 제안했지만, 지금은 아이가 그만하겠다고 할 때까지 기다린다. 과외 선생님한테 그만 오라는 말을 듣는 것은 좌절감이 드는 일이라 생각해서 어머니들께 상황을 보고 드리고 아이 스스로 결정을 하도록 기다린다.
보통 수업을 하면서 숙제나 지각과 결석의 문제가 있을 때 나는 어머니께 연락한다. 이런 문제가 있으니 아이를 ‘혼내주세요’가 아니라 ‘아이와 상의해 보세요’라고 분명히 말씀드려도 아이들은 많이 혼났다고 한다. 부모님들은 일단 과외 비용을 부담하고 있으므로 아이가 뭔가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다는 말을 들으면 화가 난다. 이 분노의 상황에서 어떻게 아이와 이야기를 풀어가는지에 따라 부모님의 유형을 나눠 볼 수 있다.
1.그따위로 할 거면 그만둬! (억압형)
2.너 인생이니 알아서 해라. (방임형)
3.공부는 쉬운 게 아니야. 그래도 계속해야지. (충고형)
4.그럼 다른 학원이나 과외 알아보자. (문제축소 전환형)
5.그만둘 생각을 하느라 고민이 많았겠구나. 그런데 수업하면서 어떤 일이 있어서 때문에 그런 생각을 했니? (공감형)
좋은 답은 5번일 것이다. 부모는 선생님께서 메시지 받은 것을 이야기하고 수업 진행 상황을 잘 들어 볼 필요가 있다. 왜 숙제를 다해가지 못하는지 이유를 정확히 짚어야 한다. 선생님이 싫어서 숙제를 안 하는 경우는 없다. 숙제를 안 하는 것이 아니라 못하는 경우가 많다.
못하는 이유는 우선 수업이 잘 소화되지 않아서 그렇다. 중학교 1학년 2학년까지는 학습 난도가 높지 않아서 따라가던 아이가 중3 때부터 고등 선행학습을 하면 버거워하기 시작한다. 이 스트레스가 공부의 본질인데 이걸 잘 견디지 못하는 이유는 수업을 할수록 모르는 것이 더 많아지기 때문이다. 모르는 것을 알아가는 것이 아니라 모르는 것이 점점 많아질 때는 숙제하기가 싫어지고 결국 숙제를 혼나지 않은 정도만 한다. 이럴 때는 정말 일대일로 공부하고 있다면 과외 선생님과 상의해서 더 쉽고 천천히 하는 법을 모색하든지 아니면 수준에 맞는 곳으로 바꾸는 것도 방법이다.
두 번째는 컴퓨터 게임이나 스마트폰 이용 장애 때문이다. 성적에 대한 부담은 공부를 못하는 학생이나 잘하는 학생이나 다 마찬가지이다. 대학을 가겠다고 마음먹은 모든 학생은 공부가 불안, 걱정, 짜증의 원천이다. 이런 부정적 감정을 잠시 잊기 위해 아이들은 게임과 스마트폰의 세계에서 위안을 받는다. 자기가 해야 할 일을 다 하고 나서 자신에게 쉼이라는 보상을 주기 위해서 하는 것이 아니라 해내야 하는 공부가 싫어서 도피처로서 전자기기와 친구를 하고 있다면 과외 자퇴의 길로 가는 중이다.
민지의 경우는 아이돌에 푹 빠져있었다. 그리고 집 외에는 다른 장소에서 공부하는 것을 싫어했다. 독서실, 공공도서관, 스터디카페등이 아무래도 침대와 노트북이 있는 내 방보다 집중이 잘 된다. 게다가 성격이 소심하고 민감한 아이들은 친구도 없이 집이 아닌 다른 장소에서 공부하는 것을 꺼린다. 부모님과 함께 스터디카페나 도서관에서 주말에 함께 공부해 보면서 집이 아닌 곳의 좋은 점을 알게 해 주었으면 좋겠다. 민지는 아이돌 노래를 들으면서 잠시 쉰다는 의미로 영상을 보면서 하는 숙제를 했을 것이다. 효율이 바닥이다.
숙제를 덜 한 상태로 수업에 오니 마음이 즐겁지 않고 항상 지각을 했다. 5분이 10분으로 15분으로 늘어났다. 15분쯤 늦게 올 때는 제가 좀 늦는다는 문자를 보내왔다. 생리통 두통 감기 등으로 수업 시작 전에 갑자기 수업에 올 수 없다는 문자를 보내왔다. 자기 방에서 공부하면서 좋은 결과를 내는 학생이 있기는 하지만 나의 경험으로는 많지 않다. 전교 1등 2등하는 최상위권 학생 중에는 그런 경우를 보기도 하지만 보통 평범한 학생이라면 나는 다양한 장소에서 공부하기를 추천한다.
내가 공부에 대한 본질을 가장 잘 정리한 책이라고 생각하는 <완벽한 공부법>의 저자 고영성 작가님의 에피소드가 있다. 회사 생활 하면서 퇴근 후 경제학 독학할 때 뚜레주르라는 빵집에 매일 가서 공부했다고 한다. 빵을 좋아하지도 않는데 굳이 매일 그곳에 간 이유는 어려운 경제학책을 읽고 있는 자신을 봐줄 (실제로 보고 있지 않을 수도 있는) 주변의 사람들 때문이었다고 한다. 집에 가면 바로 쉬고 싶기 때문에 긴장을 유지하고 사람들이 있는 곳에서 수많은 책을 읽어 나갔고 작가가 되었다. 그는 상상의 청중을 만들고 잘 집중할 환경을 만든 것이다. 인간의 의지는 생각보다 나약하다. 의지로 극복이 안 될 때는 일단 환경을 바꿔주면 된다. 금연이나 다이어트가 의지로 잘 되는지 생각해 보면 금방 알 수 있다.
다시 돌아와 과외 자퇴를 선언한 아이에게 어떻게 할 것인가. 일단 아이의 의사를 존중해 주어야 한다. 나는 아이가 떠나면 혼자서 공부해 보다가 영 안 되겠으면 다시 오라고 한다. 날 마음 아프게 하고 떠났으니 다시는 오지 말라고 하고 싶지만, 혼자 공부해 보다가 불안해졌을 때, 다시 갈 곳이 있으면 마음이 편안할 것 같아서 그렇다. 퇴로를 마련해 주어야 한다. 혼자 공부하겠다고 했으니 끝까지 그렇게 해야 한다고, 약속은 꼭 지켜야 한다고 할 필요는 없다. 공부는 심리전이라 마음이 안정되고 습관이 바뀌면 다시 잘 될 수 있다. 부모님들이 고등학교 1학년 성적으로 모든 것을 판단하지 마시기 바란다. 끝까지 가야 끝난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아이를 바라보는 마음이 지구를 살리는 마음과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당신은 지구를 구할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라는 질문에 인도 출신 평화 운동가 사티시 쿠마르는 이렇게 대답했다고 한다.
“사람은 지구를 사랑할 수 있을 뿐입니다. 우리는 지구를 구하는 것에 대해 걱정할 필요가 없어요. 지구를 사랑하는 것에 대해 걱정해야 합니다.”
내 아이가 명문대에 갈 수 있을까요? 라도 바꾸어 물어보자.
“부모는 아이를 사랑할 수 있을 뿐입니다. 명문대에 가는 것에 대해 걱정할 필요가 없어요. 아이를 사랑하는 것에 대해 걱정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