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상혁이 지우개를 보았다. 지우개는 많이 써서 지우개는 짧아지고 겉을 싸고 있는 종이가 길게 늘어져있었다. 늘어진 종이의 앞뒤를 가위로 잘라 주었다. 종이가 지우개의 2/3 정도만 감싸도록 만들어주었다. 나는 지우개 종이가 구깃구깃해진 꼴은 못 본다고 하면서. 깔끔한 지우개로 공부 열심히 하자고 하면서. 이 지우개는 수능 지우개라고도 할 만큼 거의 모든 학생이 가지고 있는 지우개이다. 지우개 감싸는 종이에 ‘부드럽게 지워지는 타입’이라고 앞면과 뒷면에 쓰여있는데, 내가 가위로 종이 앞뒤를 자르는 바람에 ‘부드럽게 지워지는 타입’이라는 문구가 ‘드럽게 지워지는 타입’과 ‘부드럽게 지워’라는 말이 돼 버렸다.
이것을 간파한 상혁이는 나와 같이 히히 웃으려고 보여준 것이다. 함께 웃다 보니 뭔가 동지의식을 느꼈다. 상혁이는 그날따라 문법 진도가 늦었다면 더 공부해야겠다고 의지를 보여주었다. 내가 아이를 웃기는 경우보다 상혁이와의 이야기처럼 아이들이 나를 웃기는 경우가 더 많다.
학생을 엄히 가르치는 것과 엄격히 가르치는 것은 차이가 있다. 엄한 선생님하고는 이런 농담을 하지 못한다. 서로 친해지려면 농담이나 잡담을 해야 한다. 친해져야 교육이 이루어진다. 친하다는 말은 마음을 보일 수 있다는 뜻이다. 인터넷 강의로는 느낄 수 없는 쌍방의 소통. 친하게 지내는 학생들인데도 불구하고 요즘 코로나 확진으로 못 오는 학생은 줌으로 수업을 하는데 컴퓨터 화상으로 보이는 학생에게는 이상하게 농담을 건네지 못하겠다. 내 목소리는 더 커지고 경직된다. 비대면 수업은 내 스타일이 아닌 것 같다.
반대로 엄격한 선생님 이런 선생님이 아닐까 한다. 공부하고 있는 교재가 끝나면 맛있는 것 함께 먹기로 한 약속을 잘 지키고, 숙제 검사를 절대 안 까먹고, 수업시간에 늦는 것을 바퀴벌레만큼 싫어하고, 선생님 사정으로 수업시간을 변경하는 일이 없고, 학습자료 카톡에 올리는 것을 잊지 않고, 화내지 않고 잘못된 점을 지적해 주는 선생님. 나는 같이 있으면 불편하고 농담하기 힘들고 눈치를 봐야 하는 엄한 선생님이 아니라, 실수 없는 엄격한 선생님이 되려고 노력한다. 그래서 학습 일지를 쓴다. 아이들에게 모든 것을 기억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서다. 엄격한 선생님은 엄한 선생님과 달리 목소리가 부드럽고 간식도 많이 주고 많이 웃어주어야 한다. 부드러운 카리스마라고 해야 할까. 두 가지 상반되는 요소가 하나에 들어 있는 역설을 감당한다는 건 에너지가 많이 드는 일이다.
엄격한 선생님이 되려고 하는 건 자신에게 엄격한 좋은 사람이 되는 것과 상통하다. 아이들은 키가 자라듯 인격과 학업 역량이 자라야 한다. 그래서 살아가면서 성장을 의미하는 향상심을 유지하는 것을 항상 생각한다. 아이들 학습 역량 향상을 책임지고 있는 선생님 본인이 성장하지 않는다면, 교육이라는 일을 해내기 힘들다. 목표지향과 성취를 가르쳐야 하는 나는 이 꼬맹이 친구들과 얼굴에 여드름이 난 친구들 때문에 향상심을 유지할 수 있다. 그래서 늘 감사하다. 어떤 사람과 함께 있느냐에 따라 인생이 달라진다.
친한 친구 하나가 이런 말을 카톡으로 보내왔다. 향상심의 반대말은 퇴굴심 退屈心라고도 가르쳐주었다. 퇴굴심은 수도인이 정진하지 못하고 타락하는 마음이라는 뜻의 불교 용어이다. 뒤로 물러나 굴복한다는 한자어가 마음을 친다.
인연에는 좋은 인연과 낮은 인연이 있나니, 좋은 인연은 나의 전로를 열어주고 향상심과 각성을 주는 인연이요, 낮은 인연은 나의 전로를 막고 나태심과 선연을 이간하는 인연이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