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민혜숙 Apr 29. 2022

파닉스로 훤해지는 세상

영어의 첫 걸림돌

  영어의 첫 걸림돌은 파닉스다. 어린이가 즐거운 마음으로 영어 스펠링을 외우고 재미있는 영상으로 영어를 듣고 말하고 하다 보면 영어는 흥미로운 과목으로 자리 잡는다. 초등학교 3학년이 되면 영어 교육이 시작되고 원어민도 선생님도 만나고 게임도 하고 신나는 시간이 된다. 문제는 교과서에 글이 나타나기 시작하면 문자를 읽어야 하니 힘들어지기 시작한다. 이 상황은 학교에서 체계적인 파닉스를 가르치지 않기 때문에 생겨난다.


  고등학교 학생들이 보는 모의고사가 시험 범위이지만 학교 수업에서 다루지 않는 것과 비슷한 일이다. 먼데이 스테이지라는 라이브 강연에 출연한 공신 즉 공부의 신으로 알려진 강성태 작가님에 의하면 서울시 교육청 영어 과목 예산이 국어 과목보다 무려 160배 많다고 한다. 160배! 이 예산은 부모님들이 낸 세금이니 제발 파닉스 좀 제대로 가르쳐주면 좋겠다.      


어린이들의 간단한 영어는 이렇게 시작한다.      

학생 : Thank you.

선생님 : You’re welcome.     


  이렇게 쉬운 영어일지라도 th 발음과 철자를 인지시키는 것은 세심한 주의가 필요하다. 처음 잘못 배우면 이상한 버릇이 오래가고 그 버릇 때문에 듣기가 잘 안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게다가 모음 중에 o 는 한술 더 뜬다. 아니 왜 ‘오’가 아니고 ‘아’인거야라는 질문이 생긴다. 자음보다 모음은 더욱 알 수 없는 미스테리다.  a의 경우 애, 어, 아, 이 라는 발음이 가능하므로 오 라는 모음 빼고 4가지 소리를 내고, 장모음이 되면 에이라는 것까지 알아야 한다. 또 a가 o, u, w 등 친구를 만나면 더 복잡하다. 아이들은 머리가 너무 아프다. 이거 왜 이러냐고 성질을 내면 나도 한껏 더 소리 높여 화를 낸다.    

  

“진짜 영어는 이상해. 세상에 이렇게 엉터리가 다 있어! 발음 규칙이 엉망이야!”      

그래도 파닉스를 배워야 하니 아이를 달랜다.     

“근데 영어는 다른 언어에 비교해 배우기 쉬워. 중국어나 프랑스어가 세계 공통어가 되지 않았으니 정말 다행이야. 발음 규칙은 좀 이상해도 파닉스 더 배우면 글씨가 더 많이 읽히니까 재미있을 거야. 그러니까 오늘 진도는 여기까지 나가야해!"


  아무리 초등학생이라도 공부를 재미로 할 수 없는 것이 이 파닉스라는 난국 때문이다. 충남 예산군에 처음 이사 와서 지역 아동센터에서 영어 자원봉사를 했다. 초등학교 5~6학년 아이들과 수업을 했는데 파닉스가 되는 아이들이 거의 없었다. 영어는 가장 싫어하는 과목이었고  아이들은 나를 냉담하게 대했다. 놀고 싶은데 제일 싫어하는 영어 공부를 하라니.  많아야 세 명 정도의 아이들과 학습 의지를 불태우며 공부하던 내가 영어를 최악으로 여기는 열 명의 아이들과 60분을 보내는 일은 참으로 힘들었다. 아이들이 날 미워한 게 아니고 파닉스를 미워한 것인데, 나는 자원봉사로 나와서 스트레스를 이렇게까지 받을 필요가 있을까 해서 그만둘까 하다가 아이들 파닉스에 대한 스트레스가 나의 스트레스보다 심할 것 같아 수업을 계속 진행했다.


  초등학교 5학년 아이가 단어를 전혀 읽을 수 없으니 교과서를 읽을 수 없고 설명도 이해가 안 됐을 것이다. 그런 감정을 나도 일찍이 경험한 바가 있다. 프랑스에 어학연수 갔을 때 나는 프랑스어를 거의 알아듣지 못했다. 그런 나에게 지나가는 프랑스인이 길을 묻는다. 아니 왜 나 같은 외국인에게 길을 묻는지 의야 했지만, 그들 눈에는 내가 이민 와서 정착한 베트남 여자로 보인 것이다. 아무 말도 못 알아듣는데 원어민 선생님이 어쩌고 저쩌고하면서 말을 걸면 얼마나 난감했을까. 아이들과 초등 3학년 파닉스 교재로 시작해서 거의 1년 동안 수업을 하면서 아이들이 파닉스를 이해하고 영어 성적이 오르고 영어를 좋아하게 만들어 주었다.     

 

  파닉스는 비단 아이들만의 문제가 아니다. 이건 중등 고등 검정고시를 치러야 하는 어른들과 노인 복지관의 어르신들에게도 마찬가지였다. 영어 선생님을 하다 보면 지역사회 기관에서 일할 기회가 많아진다. 지역 아동센터에서 자원봉사하다 보니 센터의 선생님들을 알게 되었고 그분들의 지인 중에 검정고시를 준비하는 어른들이 있었다. 한국에서 초등학교 졸업이라는 학력을 가지고 살아간다는 것은 출생의 비밀을 간직하고 사는 그것만큼 조마조마하고 슬픈 일이다.     


  한번은 보험설계사로 일하시는 중년의 부인이 나에게 연락이 왔다. 10년 전 쯤 일을 시작할 때 이력서에 고등 중퇴라고 적고 일하기 시작했는데, 업무상 영어로 쓰여 있는 걸 읽어야 하고 학력을 부풀린 것이 마음에 걸려서 고등과정 검정고시를 보겠다고 마음먹고 사이버 중학교에 등록하셨다고 한다. 다른 과목은 다 잘 되는데 영어는 읽을 줄 모르니 무슨 소리인지 하나도 모르겠다고. 이 분도 영어 파닉스를 나와 같이 공부하고 영어를 읽게 되셨다.   

   

  정말 학교 문턱에도 가보지 못한 중증 장애인이신 분과도 수업한 적이 있다. 휠체어를 타고 움직이셔야 하고 척추, 다리, 팔이 많이 휘어져서 일상이 매우 불편했던 이 분은 학교에 가지 못하고 마당에서 밖을 내다보면서 중학교 교복을 입고 등하교하는 동네 또래를 보면서 많이 우셨다고 한다. 파닉스와 단어 암기를 위해 매주 1회의 수업을 1년 동안 하고 나서 중등 검정고시에 합격하셨다. 합격 소식이 있던 날 나와 그 분은 서로 손을 붙잡고 너무 기뻐했다. 세상을 다 얻으신 것 같았다고 했다. 영어가 읽히면 검정고시를 패스할 수 있고, 감추고 싶었던 초졸이라는 딱지를 떼어 버리고 자유를 얻는다. 세상이 훤해진다.     

 

  아이들의 뇌가 영어를 나쁜 놈으로 인식하면 영어와 싸우게 되고 결국 파닉스라는 걸림돌을 잘 넘지 못한다. 50년대 60년대 가난한 시골을 배경으로 하는 영화를 보면 6학년이 된 여자아이가 동생을 업고 수업을 듣는데 한글을 읽지 못한다. 21세기에 파닉스를 못 하는 아이들은 그 영화의 동생 업은 소녀와 같다. 소외된 아이들은 학습을 제대로 받은 적이 없어서 대체로 학습 속도가 느리다. 이런 아이들에게 파닉스가 더욱 나쁜 놈이다. 영어에 노출이 많은 아이들은 파닉스 속도가 빠르다. 그러나 취약 계층 아이들은 교과서에 적힌 영어도 어렵다. 한글은 간판이나 동화책을 읽으면서 모국어이기에 자연스럽게 익힐 수 있지만, 영어는 그렇지 않다.


  영어 조기교육, 원서 읽기, 원어민과 유창한 회화, 수능 1등급 등등의 화려한 성취는 파닉스를 거쳐야 이루어진다. 아이가 이 파닉스의 산을 넘도록 아이 손을 꼭 잡아주고, 검정고시 준비하는 어른들이 파닉스를 배워서 영어 못 읽는 조바심을 날려 버리고 영어로 된 간판을 잘 읽어서 세상이 훤해지게 하는 영어 선생님. 매력적인 직업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